안동의 동쪽 임하댐 아래 반변천이 흐르는 곳에는 마씨성을 가진 노총각과
인어선녀의 전설이 깃들어있는 선어대가 있고, 바로 인근에는 유서깊은 안동향교,
그리고 안동대학교 안에는 퇴계 이황선생의 발의로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역동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선어대(仙漁臺)
선어대 안내판에 따르면 옛날 마(馬)씨 성을 가진 가난한 노총각과
언덕아래 소(沼)에 사는 인어소녀의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어느날 총각이 가난을 한탄하여 이 언덕에서 뛰어내려 죽으려하자 인어소녀가 나타나
총각의 사연을 듣고 내 소원을 들어주면 부자가 되게 해주겠노라고 하였다.
반변천 생태공원
소원인즉 인어소녀가 용이되어 하늘로 오르려고 하는데, 상류에 있는 임하 소(沼)의 용이
인어소녀가 용이되어 승천하려 할때마다 번번히 방해를 하여 못오르고 있으니
그 용과 맞붙어 싸울 때 큰소리로 "야 이놈아!" 라고 한번만 소리 질러주면
임하소(沼)의 용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한눈을 파는 순간 인어소녀는 승천 할수 있으니,
그렇게만 해주면 부자가 되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런일이 있은 후 소녀는 승천하였고, 총각은 평생 소원이었던
많은 토지를 얻어 큰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전설로 마씨의 들에서 온 것이라는 마뜰이라는 지명과,
인어가 사람으로 변해 올라왔다는 선어대(仙漁臺),
그리고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의미의 용상동(龍上洞)의 지명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떨어진 배롱나무꽃이 영산홍 꽃인양...
선어대 옆의 송제 비각
송재(松隄)비와 송제사적비
송제(松堤)라는 말은 하천의 범람을 막기위해 소나무를 심은 제방을 뜻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홍수의 피해가 컸던 곳으로 치수(治水)를 한 2개의 비석이 있다.
하나는 1605년에 부사 김륵(金玏)이 제방을 쌓은 후 세운 송제(松隄) 비(碑) 이며,
다른 하나는 1778년 부사 김상묵이 18만여명의 일꾼으로 몇달만에 제방쌓기를
완료했다는 내용으로, 그 3년 뒤인 1780년 9월에 세웠다고 기록한 사적비이다.
안동향교의 정문이며 누각인 청아루(菁莪樓)
안동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하였으며, 1567년(명종 22) 안동 명륜동에
중건(重建)하였는데 그 규모가 성균관(成均館)과 동일하여 영남지방에서 가장 컸었디.
그러나 6·25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으며, 1986년 지금의 송천동에 다시 중건하였다.
명륜당과 동재(문이 잠겨있어 담 너머로 본 풍경)
현존하는 건물은 1곽 6동으로 정전(正殿)인 대성전과 명륜당,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그리고 청아루(菁莪樓)와 부엌을 뜻하는 주사(廚舍)로 구성되어 있다.
서재
안동향교 전경
역동서원(易東書院, 안동대학교 구내)
약동서원 전경
역동서원은 1570년(선조3)에 퇴계(退溪) 선생의 발의로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안동지방 최초로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했다.
1684년(숙종10)에 역동(易東)이라는 사액이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9년 현 위치에
이건 복원하였는데, 1991년 안동대학교가 들어서면서 학교 구내에 위치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손수 써서 걸었던 "역동서원’, "광명실" 등 현판들이 남아있다.
역동서원 정문인 입도문(入道門)
역동서원 강당과 동.서재
역동(易東) 우탁(禹倬,1262~1342)선생은 충북 단양에서 태어났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향공진사로 뽑혔으며, 1290년 충열왕 16년 29세에 문과에 급제
영해사록(寧海司錄, 지금의 영덕 영해)으로 임명되었는데,
이 곳에 요망스러운 귀신이 있어서 성대한 제사를 지내곤 하였는데,
부임하자마자 그 신사(神祠)를 불태워 버리며 미신을 타파하는 강직함이 있었다.
역동서원 강당
1308년 8월 충선왕이 즉위하고 곧 부왕인 충열왕의 후궁인 숙창원비(淑昌院妃)를
범간하는 패륜을 저지르자 1308년 10월 24일 흰 옷을 입고 도끼와 거적때기를 들고가
왕에게 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임금의 잘못된 과오를 직간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며,
특히 이러한 행동은 가져간 도끼로 맞아 죽어 거적때기에 싸이겠다는 각오의 징표이다.
결국 우탁은 파직당하고 낙향하게되며, 낙향 길에 탄로가를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명교당(明敎堂)
동재인 사물재(四勿齋)
서재인 삼성재(三省齋)
상현사(尙賢祠,우탁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우탁선생의 시 "잔월(殘月)"
푸른 저 하늘 저 멀리에 낫을 걸어 놓았는가?
푸른 산 높은 절벽에 빗을 달아 놓았는가?
활 시위를 당겼는가?
산새들은 두려워하고 낚시바늘 굽었는가?”
사당앞의 비비추
우탁 선생 시조비 (역동서원 입구)
탄로가(嘆老歌)
봄의 산에 눈녹인 바람, 잠깐 불고 간 곳이 없다.
잠시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게 하고 싶구나.
귀 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 잡고
늙는 길은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은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白髮)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관리동
월영교
갑자기 소낙비 내리는 월영교
첫댓글 아름다운 전설과 향교와 서원 등이 산재한 임하댐 주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역동서원이 안동대 안에 있다는 것 처음 알았습니다.
특히 우탁 선생의 탄로가는 엤날부터 친근한 시조인데
그 글귀가 우리들 바로 앞에 다가왔습니다.
열려있지 않은 상현사(尙賢祠,우탁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현판을
문틈으로 찍은 사진은 최고의 수준급입니다.
어딜 가더라도 사당은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잘 압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안동댐 밑 월영교에서 길가는 나그네가 쉬고 왔군요.
감사합니다.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하세요.
안천 님! 정말 정말 감사드리고 싶네요.
안천 님의 노력과 사진의 예술성은 날이 갈수록 그 한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지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통상 사찰이나 향교, 서원 등 고건축을 사진에 담을 때 제한된 엥글 규격에 어디를 어떻게 재단해서 잡아야 할지. 애매하다는 것은 아마추어 촬영자 대다수 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천님의 멋진 재단과 명암은 볼수록 대단합니다.
작은 틈이지만 핵심부분을 잘 잡에 내는 기술, 선명한 영상, 완벽한 명암, 빛 처리 등, 그리고 주변 일대를 넓게, 또 작은 미세한 꽃 한 송이 까지 클로즈 업해서 작품화하는 영상 기술,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국을 무대로 한 안천님의 영상작품들이 우리 행정동우회의 홈카페의 위상을 올려주는 큰 역할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요즈음, 더위가 무척 심하네요.
오가는 길 운전 조심하시고, 늘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암 올림
좋은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수고 덕분에
가보지 못한
안동향교와 역동서원 구경잘했읍니다
고맙습니다.
날씨도 무더운데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의 영화는 1989년에 개봉되어 서구
국제영화제 대상을 처음 수상한 한국 영화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영화는 안동 봉정사 영산암이 촬영 무대로 '易已東矣(역이동의)'
~역이 이미 동으로 갔다~ 는 중국 한나라 때 역학에 능통했던 정관(丁寬)의
고사에 나오는 구절로, 고려 말 역학에 뛰어난 禹倬(1263~1342) 선생의
학문을 높이 숭상한 말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민족의 전통 문화재가
국립 안동대학교에 보존되어 있어 모두가 마음 든든합니다.
좋은말씀 고맙습니다.
즐거운 한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