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속 숨은 감정 스스로 날개달고 훨훨 경기도 화성 석천초등학교 사택에서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이원(44)의 본명은 이정은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아버지는 학교 설립을 목적으로 교사를 그만두었으나 몇 년 동안 꿈이 이루어지지 않자 다시 초등학교 교원 시험에 합격해 부임했던 것이다. 집은 산 밑에 있었고 울타리가 낮아서 집안에서 집밖이 훤히 내다보였다. 아버지가 삼남매의 숫자대로 대문 밖에 심은 세 그루의 오동나무는 삼남매보다 더 빨리 자랐다. 아버지는 마루의 전축에 LP판을 걸고 자주 음악을 들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아리조나 카우보이’를 기억하는 이원은 가끔 막막해질 때 그 노래를 웅얼거린다.
“황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아버지는 얼마나 달리고 싶었을 것인가. “초등학교 때 오빠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어요. 세계가 일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죠. 나는 순간주의자예요. 인생 계획을 3개월 이상 잡은 적이 없어요. ‘미래는 없다’ 주의죠.”
이원은 순간적으로 휘발되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마루에 누워 뜻도 모르는 노래를 따라하다 보면 옆에서 그 노래를 신명나게 부르던 아버지도 사라지고 가족도 사라지고 길도 사라지고 다만 전축의 바늘이 살짝 긁고 돌아가는 소리와 괘종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만 말의 발굽처럼 남았다. 길은 사라졌는데 계속 말은 달려가는 그 스릴이 좋았다.
“뿌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날 밤부터 잠이 오기 시작했다 두 다리는 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길이 확인시켜준 다음날부터 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꿈의 뿌리는 몸에 있고 몸의 뿌리는 꿈에 있다는 사실을 다리가 말한 다음날부터 먼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다 세계는 푸르거나 검다는 것을 인정한 다음날 아침 신발을 신었다”(‘실크 로드’ 부분)
중학교 1학년 겨울, 그는 서울로 옮겨오지만 아버지 없는 현실에서 발을 떼고 싶었다. 썩어가는 사과 사진을 찍었고 한동안 하늘 사진만 찍었다. 남산 시절의 서울예대에 진학한 그는 명동 거리의 쇼윈도에 서 있는 마네킹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표정 없는, 아니 표정을 안으로 감춘 마네킹은 그 시절 이원 자신의 모습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스승인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의 원고를 정서하며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한 그는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데뷔한다. 이원의 초기 시는 건조했지만 5년 전 오규원(1941∼2007) 스승의 죽음 이후 그의 시는 문장 밑에 가라앉혀 두었던 감정을 위로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 게 고통의 윤리일지도 모른다. 그는 비명(悲鳴)을 지르고 싶은 시간들을 너무 오래 참고 살았다. 반대로 그런 세월이 없었다면 그는 비명이 자신의 날개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고통에서 더 깊이 들어간 감정은 스스로 날개를 단다.
“다만 나는 오늘의 정원사. 한때 인간이 되고자 했던 것은/ 태양 속에 설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 태양 아래 서게 되었을 때 내내 꼼짝할 수 없던 것은/ 불빛처럼 햇빛도 구부러지지 않았기 때문.// 오래 아팠다고.// 잘라버린 가지는 나의 두 팔이었던 것.// 끝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끊어진 두 팔을 뚫고 이제야 나오는 손. 징그러운 새순./ 허공은 햇빛에게 그토록 오래 칼을 쥐어주고 있었던 것.// 어쩌자고 길부터 건너놓고 보니 가져가야 할 것들은 모두 맞은편에 있다”(‘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부분)
이원이 탄 역마차는 아리조나 황야로 가지 않는다. 그가 몰고 있는 역마차의 이름은 시(詩)이고 목적지는 영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