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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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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2 단지불회 2
달리다굼 추천 0 조회 432 20.12.11 11:18 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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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12.11 13:01

    첫댓글 오직 모르기에 모든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벌어질 수도 있다) .~.

    사람은 타인과 다투기도 하고,사랑하기도 하지만

    자신과도 싸우기도, 사랑하기도 합니다~^^

    결국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같네요~

    그런데 타인에게만 엄격하고, 선악과 호불호를 들이대는 것이 분별심일까요?

  • 작성자 20.12.11 13:09

    분별심이란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향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 20.12.11 13:30

    @달리다굼 네~ 成人으로서 분별심이 안생길 수가 없겠지요~^^

    어린애처럼 되지 않는 한...
    그럼 바보가 되는 거고, 그런 취급 받겠구요

    분별심을 알고 내 생각에만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현실적이겠지요?

  • 작성자 20.12.11 13:33

    @인향만리 같은 사건에 대해 각각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할 경우
    그런 경우에 자신의 생각에 집착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0.12.11 13:55

    @달리다굼 같은 사건에 대해 각각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생각을 소통하여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12.11 14:05

    @달리다굼 네~ 그렇습니다.
    소통하면 넓어지고 커집니다~^^

  • 작성자 20.12.11 15:23

    @인향만리 같은 사건에 대해 각각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것을 존중해야 할 경우와
    다른 상황에서 그럼에도 주장하고 싸워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 20.12.11 15:42

    @달리다굼 그 때가 어느 때일까요?

  • 작성자 20.12.11 15:43

    @인향만리 그것은 또 각각 다 달라요.

  • 20.12.11 15:44

    @달리다굼 그럼 다시 싸움만 반복되는 것 아닌가요?

  • 작성자 20.12.11 15:46

    @인향만리 싸움은 때가 되면 하게 되어있으며
    싸움을 전혀 발생하지 않게 할 수는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20.12.11 15:49

    @달리다굼 모든게 다 오온이 일으키는 생각이 빚어낸 망상이 빚는 허망한 것들이라면서요...
    불교 철학이...^^

  • 작성자 20.12.11 15:50

    @인향만리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죠.
    그렇다 하여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 20.12.11 15:56

    @달리다굼 결국 인간은 깨달음을 얻을지라도 선악을 분별하며 자신과 남과도 싸우기도,사랑하기도 하면서 산다??는 말씀이신지요?

  • 작성자 20.12.11 15:58

    @인향만리 그것은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작성자 20.12.11 16:02

    @달리다굼 선악을 분별한다는 부분만 놓고 이야기 해 보면
    겉모습은 똑같이 선악을 분별하는 모습으로 같지만

    단지불회가 자각될 경우
    역시 분별하는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분별하면서 분별하고 있음을 알기에 조금 다르다 보고 있습니다.

  • 20.12.11 16:19

    @달리다굼 결국 한 쪽으로 치우치지않는 분별을 말씀하시는가 보네요?

  • 작성자 20.12.11 16:25

    @인향만리 분별하면서 분별하고 있음을 모르는 것과
    분별하면서 분별하고 있음을 아는 것의 차이를 말한 것으로
    이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별거인 것입니다.

  • 20.12.11 16:28

    @달리다굼 농담 말씀 드리자면...ㅎ

    알고 짓는 죄가 더 크다는데...^^

  • 작성자 20.12.11 16:30

    @인향만리 하여 그러한 경우를 일러
    독립군이라 합니다.

  • 20.12.11 16:31

    @달리다굼 독립군이라는 말을 이런데서도 사용하네요 ㅋㅎ

  • 작성자 20.12.11 16:33

    @인향만리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폭탄을 던지는 것입니다.

  • 20.12.11 16:39

    @달리다굼 네~ 근데 일본 왜구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했죠~

    본인과 타인의 죽음도 불사하는 분별이라~~

    전쟁 중에는 많이 발생하게 되겠네요~
    특히 우리민족 같은 경우는 더...

  • 작성자 20.12.11 16:40

    @인향만리 하여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경우엔 싸워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 20.12.11 16:42

    @달리다굼 네 감사합니다~

  • 20.12.11 20:33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깨달음이 어려운 이유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문제도 언제든지 더
    좋은 답을 만났을 때 기존의 지식과 바꿀 수 있는 용기
    가 필요하다.

    인식, 인정, 용기, 세 가지가 융합이 되어야 깨달음이라
    는 결과에 도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인식은 관심이 바탕이 되고
    인정은 겸손이 바탕이 되고
    용기는 열정이 바탕이 되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0.12.11 20:42

    자신이 모른다를 아는 것과 알 수 없음을 아는 것은 조금 그 의미가 다릅니다.

  • 20.12.11 20:54

    @달리다굼
    자신이 알수 없다는 것을 알고난 다음의 결과는 무관심
    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알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이 계속 알고자
    한다는 것이 어리석음이라는 생각이 들테니까요.....^^

    자신이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의 행보가 궁금
    해집니다.

  • 작성자 20.12.11 20:58

    @유리상자 알고 알지 않고 여부와 상관없이
    밥 들어가면 소화되듯이
    그렇게 펼쳐지겠지요.

  • 20.12.11 21:15

    @달리다굼
    그럼 아무생각 없이 살아지는대로 사는게 될텐데요.

    자신이 "아직"이라는 전제로 알지 못할수는 있는데
    앞으로도 "알지 못한다"는 너무 결론이 허무하네요.

    그렇다면 자신이 알지못하는 것을 왜 알아야 하는지
    궁금해 집니다.

  • 작성자 20.12.14 11:22

    @유리상자 알 수 없다는 것은
    생각으로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자각되면 생각하며 살면서 생각에서 조금 자유하게 되어지는 것 같긴 합니다.

  • 20.12.11 21:35

    @달리다굼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수 없다는 전제로...

    현재 알고 있는 것이 정확히 알고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이런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사실을 밝혀내는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모르는 대로 그냥 두는게 맞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데 따라 어제 맞던것이 오늘은
    틀리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궁금하네요.

  • 작성자 20.12.11 21:49

    @유리상자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 수 없음이 명확할 경우
    자신에게 올라오는 생각을 생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생각을 사실이라고 하지 않게 되지요.

    하여 사실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음도 이해되고 그리되면 자신의 생각에도 여유를 갖고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생각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지배적인 생각으로 작용되어 그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은 생각의 작용 측면에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20.12.11 22:08

    @달리다굼 네~
    자신의 생각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는 말인듯 합니다.

  • 20.12.12 00:12

    유리상자님의 궁금증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요,
    첫번째로
    알수없는데 알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혹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계속되기 때문이죠.
    이 고통은 나의 부모가 그리고 내가 그리고 나의 자식들이 짊어지고 가는것이죠. 불쌍한 신세죠.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두고
    알수없다면 할수없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무감각한 경우는 예외가 되겠지만요.

    둘째로,
    알수없는다것을 안다면 그사람은 어떻게 할까죠?
    먼저 왜 알수없는 것인지를 이해해야 우리는 알수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단지 경전에 써 있으니 나는 알수없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접근법이죠.
    행동은 다 아는것처럼 행동하면서 입으로만 알수 없다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알수없다는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자신이 왜 알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기에
    알수있는 길로 나아가겠죠.

    따라서 위의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 이론적으로 그에대한 답을 해본다면,
    기억에 의존해서 사물을 판단하는것은 어리석다는것을 알기에 , 순수한 눈으로 , 그렇기에 엄청난 에너지로 사물을 관찰하겠죠.
    그러면 말로는 설명할수없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겠죠.

  • 20.12.12 00:22

    기억 믿음 신념 이미지 없이 사물을 바라보겠죠.
    이것이
    알수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아가는 길입니다.

    내가 알수 없는 이유는
    나는 생각이고 생각은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현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과거는 즉 나의 생각은 언제나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담을수 없죠.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현재를 인식하는데 실패하는것이죠.

    지식이 많고 믿음이나 신념에 찬 사람은
    현실을 보기 어렵고 그래서 폭력적입니다.
    이 세상이 폭력과 야만으로 가득차 있는 이유죠.

  • 20.12.12 00:43

    @올빼미 나는 조건지어져 있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설명한것입니다. 기계적 반응을 하는 나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죠.
    새로운 것을 보거나 듣지 못하는 나.
    그러한 나로 부터 자유로워져서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말이
    제법무아 입니다.

    한가지 꼭 첨언해야 하는데요,
    그렇다고 기억이라고 하는 기능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억과 생각이 필요한 순간에는 민첩하고 정확하게 작용해야죠.
    왜 이런말을 하냐면요.
    수행한답시고 멍청해지는 연습하는 분들이 계시면 안되니까요.

    생각이 자기자리를 찾아 제자리에 있어서
    필요한 순간에 민첩하게 움직이고
    필요하지 않을때는 설치지 않고 고요하게 있을때
    이때 를 일컬어 진정한 침묵입니다.

    말 안한다고 침묵은 아니죠.
    멍하게 있는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 20.12.12 01:20

    연습은 위선입니다.

    집착하지 않는척 연습하는것은 또다른 집착이죠.
    다양한 측면을 보는척 연습하는것은 또다른 옹졸함입니다.
    분노를 참는것은 분노 안하는척 하는것이고
    이것으로 분노를 잠재우지 못합니다.
    뇌쇄해져 갈뿐이죠.

    온몸으로 진심으로 분노하면
    분노가 무엇인지 알게되고
    그 다음엔 아예 분노가 없게되는것이죠.
    조금씩 연습해서 조금씩 분노로부터 멀어지는 일은 없어요.
    이 모든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현상인거죠.

    수행이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안되요.
    인생은 실전이지 연습은 없어요.

    종교인만 하는것이 수행입니까?
    인생이 수행입니다.
    당신이 인생에 무슨 이름을 붙이든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고통이기 때문이죠.

    아프면 온몸으로 아파해야죠.
    아픔을 참거나 안 아픈척 하면
    정신이 망가지겠죠.
    그래서 위선은 위험한 것입니다.

  • 20.12.12 02:52


    알수 없다라는것을 알아야 알수 있다는 것은.....

    내가 보고인식하고 있는것이 본질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무엇이 본질인지 찾을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알수 없다)라는 용어보다는 (잘못알고 있다)라는
    용어가 더 적합한 용어일것 같습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본질을 둘러싼 지엽적인 부분을 보고
    그것을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곳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본질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는 많이 경험하는 것이니까요.

    옛성인들의 말씀이라 새겨들을 좋은 말씀이라 해도 현대의
    시각에서 알아듣기 쉬운말로 번역을 해서 전하면 더 쉽게
    전달될 것 같은데 그게 어려운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본질과 지엽말단은 그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내용물과 포장지의 거리만큼 붙어 있으니까 오인 할 수
    있습니다.

    물질에서 분자까지 단 한단계 더 깊이 들어가는데 눈으로
    식별하기가 어렵지요.

    분자단위는 눈으로 볼수 없는 작은 단위이지만 그게 본질
    적인 것인데 말입니다.

  • 20.12.12 02:52

    @유리상자
    제가 이해한 내용을 제 방식으로 말하면 갈릴레오가 처음
    지동설을 말했을 때 그 시대의 사람들의 관념이 천동설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갈릴레오가 미친 것으로 알았지요.

    만약에 지동설도 천동설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지동설을
    알려 줬더라면 바로 알아들었을 것이라는...

    그런 원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 작성자 20.12.12 05:39

    @유리상자 천동설을 설로 아는 것과 천동설을 사실이라고 아는 것의 차이는 그 이해에 있어 차이가 있는 이해입니다.

    이는 설령 지동설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경우에도 천동설을 설로 이해할 경우 천동설을 사실이라고 주장하지 않게 됩니다.

    경험상 태양이 뜨고 지는 것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지금도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지요.

  • 20.12.12 10:23

    @유리상자 유리상자님
    본질을 모른다는 인식이 본질을 알게 한다는 처음의 표현에서

    본질을 안다 또는 모른다라고 표현할때
    여기서 본질은 지식에 해당합니다.
    진리에 해당하는 지식을 알고 모르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미묘한 차이라고 할까요? 예를들어.
    내가 천부경의 비밀이나 진리를 알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지식으로써의 사실 자체가 의미있는것이 아니고.
    그러한 사실을 알게되는 능력 자체가 의미 있는겁니다.
    말로 표현되는 수많은 진리는 우리는 이미 충분하게 알고 있죠.
    어리석은 나도 진리의 조각들은 무수히 알고 있죠. 그러나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도달해야 하는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고 진리나 진실을 볼 수 있는 능력 그 자체입니다.

    전혀다른 두뇌의 새로운 작동방식이죠.
    진리를 알고 모르고는 별차이 없습니다.

    잘 설명이 되었나 모르겠네요.
    이것은 코페루니쿠스의 발상의 전환에 해당하는 정도의 차이 입니다.

    우리가 과하적으로 예전과는 비교할수없는 정도의 진실을 알게 되었으나
    고통과 야만은 변함이 없다는것이 시사하는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 20.12.12 10:35

    @올빼미 천동설이 사실인가 지동설이 사실인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이 중요하죠.
    코페루니쿠스의 말을 듣고
    아 지동설이 사실이구나 하는점보다는
    아 천동설을 진리로 아는 시대에
    지동설을 발견해내다니
    그 지혜로움에 감탄하는거죠.

    안다 모른다는 종교적인 차원의 이야기에서 뽀인뜨는 거기입니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내가 알고있다고 하더라도 별 의미 없습니다.

    물질의 존재양식이 진동에 있다고 알아도
    나의 삶은 변함없이 진동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 20.12.12 12:41

    @올빼미 네~
    발상의 전환...

    천동설이 맞는지 지동설이 맞는지의 사실관계의 증명이
    중요한게 아니라 증명해 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 원리가 모든 선입관을 제로상태로 즉 백지상태로 전환
    시킬줄 알아야 된다(아는것이 없어야)

    발상의 전환이라는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알고 있는 모든것을 비워야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으
    로 이해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관계의 증명이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다는
    것도 일면 이해는 됩니다.

    좋은 것이 반드시 좋기만 한것이 아니라 같은 비율로 나쁜
    것도 만들어내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그에 따른 과학이 만들어내는 폐해
    도 함께 발전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런 정도로 이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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