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장,
민희는 갑작스러운 며느리의 전화에 놀란다.
게다가 집 앞까지 와서 전화를 한다는 것이 더욱 놀라는 일이다.
민희는 대문의 잠금 쇠를 따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혜영이 대문을 들어서는데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오는 것이 보인다.
“아니, 네가 이런 것들을 들고 갑작스럽게 무슨 일이냐?”
민희는 혜영의 손에 들려진 짐들을 받는다.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다.
“어머님! 이 싱싱하고 좋은 것을 보고 갑작스럽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저런? 이것들을 들고 버스를 타고 왔니?“
”네! 두 번만 갈아타면 되는데 올만 하더라고요.“
”전화를 했으면 내가 갔을 것이 아니더냐? 아직도 성치 못한 몸을 가지고 이런 것을 들고 더구나 두 번씩이나 차를 바꿔타면서 힘들게 오다니?“
민희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시원한 차를 준비한다.
혜영은 잠시 숨을 고르며 쉬고 있다.
“애미야! 우선 목부터 축이거라!“
“네!”
혜영은 시원한 차를 단숨에 들이킨다.
“아직도 완전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그렇게 무리를 하면 어떻게 하겠니? 그리고 오겠으면 택시를 타든가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할 일이지.“
“어머님! 이제는 완전히 건강해졌습니다. 게다가 별로 무겁지 않은 것을 가지고 택시를 타고 온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요. 한 번씩 드실 수 있도록 진공포장을 해서 시일이 조금 경과되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민희는 며느리가 가져온 것들은 푸러본다.
금방 수확을 한 싱싱하고 무공해 야채와 과일들이다.
아무리 모든 것이 흔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무공해 자연식품으로 기른 것이다.
“보기만 해도 아주 싱싱해 보이고 맛깔스럽겠다.”
“하나 드셔보세요.”
“아니다. 이따 네 아버님이 오시면 그때 같이 먹어야겠다. 이 귀한 것을 혼자서 먹으면 아까워서 어떻게 하니?“
민희는 말을 하면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 먼 곳에서 땀을 흘리며 온 며느리를 위해 점심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어머님! 점심은 제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니다. 넌 어서 한숨 자거라!“
그러나 혜영은 시어머님을 대신해서 점심을 준비한다.
민희는 그런 며느리에게 슬며시 양보를 해 준다.
“아버님은 어디 멀리 나가신 것인가요?”
“멀리 나가신 것은 아니고 오늘 친구 분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란다. 이제는 모임이라고 해도 저녁시간이 아닌 낮 시간에 점심들을 드시고 오시곤 한다. 저녁시간이면 복잡하기도 하고 술을 드셔야 하지만 낮 시간에는 그냥 식사만 하시고 끝내고 오시는 모임이라 별로 늦지는 않으실 것이다.“
“네! 허긴 저녁시간이면 술 한 잔을 하셔야겠지요. 낮에 술을 드시는 것이 드문 일이지만요.“
민희는 재워두었던 고기를 꺼낸다.
며느리를 먹이기 위해서다.
간단하지만 따뜻하고 정성이 깃든 점심상이다.
“어떠냐? 대충 다 정리가 되었지?”
“네, 어머님! 그리고 모든 것을 어머님께서 거의 다 해주셨기 때문에 별로 할 일도 없어요. 매일 텃밭을 가꾸는 재미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즐거워진다. 그러나 애미야! 매사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렇게 힘들게 이런 것들을 들고 다니지 마라! 필요하면 우리가 가서 가져다 먹을게!“
“어머님! 이런 일들이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부모님께서 드실 것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즐거워지더라고요. 이런 일들이 즐거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예전에는 알지 못하던 일들이었습니다.“
혜영의 표정은 밝고 아름답게 빛이 난다.
혜영은 점심을 먹고는 다시 양수리 집으로 간다.
민희가 아무리 태워다 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버스를 이용해서 돌아간다.
그런 혜영을 보내고 민희는 그저 마음이 쨘하다.
승용차가 없으면 외출을 하지 못하던 며느리였다.
그런 며느리가 양손 가득 무거운 것을 들고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곳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마음이 안쓰럽다.
아무리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는 해도 큰 수술을 받고 오랜 투병생활을 해 왔던 몸이라 걱정이 되기도 한다.
민희는 저녁을 준비하면서 혜영이 가져온 야채와 과일을 꺼내 식탁을 준비한다.
토마토와 오이를 썰어서 냉국을 만들고 가지를 쪄서 각종 양념에 무침을 하고 쌈 채들을 잘 씻어서 예쁜 소쿠리에 담는다.
보기만 해도 식탁이 풍성해 보이고 싱싱해 보인다.
김형우는 집에 들어와 식탁을 보고 놀란다.
“당신 혼자서 시장을 다녀온 것이오?”
“아니에요. 오늘 큰애가 다녀갔어요.“
“용환애미가 혼자서 다녀갔다는 말이오?”
“네! 그 먼 곳에서 이 무거운 것들을 들고 두어 번 버스를 갈아타고 왔네요.“
“용환에미가 이런 것을 들고 버스를 타? 어허, 거 참 변해도 사람이 너무 그렇게 변하면 겁나지 않소?“
”아닙니다. 오늘 용환에미를 보니 가식이라고는 없는 진솔한 모습이더라고요. 이것을 수확을 해서 부모님이 좋아하시며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왔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반갑기도 하지만 그 먼 곳에서 승용차도 없이 고생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더라고요.“
“용환에미가 버스를 타고 이것을 들고 왔더란 말이지?”
김형우 역시 그런 혜영의 모습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여보! 에미를 보내고 나서 생각을 하니 자꾸만 마음이 안쓰러워서 안 되겠어요. 우리 에미에게 작은 승용차라도 사 주면 어떨까요?“
”허허허............ 당신에게 무언가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불쌍하게 보이면 되겠군 그래! 안 그렇소?“
말은 그렇게 하는 형우지만 그런 아내가 참으로 고맙다.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다 날리고 나서 아무리 불편하고 힘이 들어도 내색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에미의 마음이 어떨 것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김형우는 식탁에 앉아 고기를 쌈에 싸서 입에 넣는다.
참으로 향이 좋고 산뜻하고 싱싱한 맛이 입안 가득히 퍼진다.
“이번 추석엔 모두들 시간을 내어 이곳에서 하루나 이틀쯤 함께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모두 말이요?”
“네!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자신들이 추석음식도 마련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허허허........... 이제야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군! 당신이 며느리들을 데리고 추석준비를 하려면 힘이 들겠지만 난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기다려지고 가슴이 뛰도록 기쁜 생각밖에는 없소.“
”둘째도 그때는 다행스럽게 비행스케줄이 잡혀 있지 않다고 하네요. 그 전까지는 하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 잡혀 있지만 전날부터는 삼일동안 비행이 없다고 하니 이번 추석은 온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정성을 생각해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돌봐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새삼스럽게 어머니 생각이 나오. 우리 어머니가 이런 당신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애지중지 사랑해 주셨을까 하는........“
김형우는 어머니의 말을 하다 그만 목이 메여온다.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어머니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어머니의 단어만 꺼내도 그리움이 사무쳐온다.
“여보! 내일은 우리 시간을 내서 장인 장모님을 찾아뵈러 갑시다. 이제 두 분의 연세도 있으시고 언제까지 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오.“
”네, 그렇게 하면 좋지요. 안 그래도 요즘은 식사를 하시는 것이 두 분 모두 시원찮다는 말을 듣고 내심 걱정이 되던 참이었어요. 행여 두 분을 한꺼번에 떠나보내게 될까 겁도 나고요.“
벌써 아흔이 훨씬 넘으신 친정 부모님이시다.
모두들 백수를 하시겠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볼 때마다 기력이 점점 약해지시는 것을 느끼는 민희의 마음은 늘 애처롭다.
다음날 김형우와 민희는 동생 민우의 집으로 간다.
민우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처럼 그렇게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늘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죄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백화점에 들려 부모님이 드실 우족과 한과 그리고 맛깔스럽게 생긴 떡을 산다.
어머니 박윤숙은 특별히 떡을 좋아하신다.
떡이라고 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떡이다.
민희는 어머니가 잘 드실만한 종류로 여러 종류의 떡을 준비한다.
민우의 집에 도착한 것이 늦은 오후시간이다.
연락을 받은 올케 성경미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이제 성경미는 직장을 정년퇴직하고 시부모님을 모시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지만 자신이 해야할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온 정성을 다해서 모신다.
시어머니인 박윤숙은 민희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문 쪽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몇 시냐?”
벌써 수없이 물어본 시간이다.
민희가 온다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영감 역시 시간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요즘 들어 부쩍 자리 보존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우영감이다.
음식 맛을 느낄 수 없고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다.
기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쇠약해지시고 드시는 것 또한 시원치 않다.
우영감 역시 민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시계에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서너 시쯤 도착할 것이라는 민희의 말을 성경미는 시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일찍 오기나 할 것이지.........”
박윤숙은 기다리기 지친다는 듯 푸념을 한다.
“어머님! 작은 고모가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넌 자식을 기다리지 않냐?”
“네, 어머님! 온다고 하면 더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 우리 민희가 젊어서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이제는 후문이 좋아서 그런지 남들보다 더 잘 사는 모습이 생각만 해도 기쁘다.“
“네, 어머님! 작은 고모가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정말 그때는 누가 지금처럼 그렇게 잘 살게 될 줄을 꿈에나 생각을 했겠어요? 모두가 작은 고모가 인자하고 정이 많아서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 우리 민희는 다른 아이들하고 달라서 참을성도 많고 이해심도 깊었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저 꾹 참아 넘기고 너희들이 해 달라는 모든 것을 제 몸이 깨지는 줄도 모르고 싫다는 소리 한 번도 없이 다 해냈었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리도 모질게 대했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님이 작은고모가 미워서 그랬겠습니까? 유달리 고생을 하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리고 가슴이 아파서 더 그러셨지요.“
“아니야! 내 모든 것을 받아주는 그 애가 난 참으로 편안하고 만만했던 거야!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다 받아주고 들어주었으니까? 민경이나 민영이는 어디 이 애미 말을 들어주기나 하니? 그 애들은 어려서부터 이 애미 말이라면 듣는 시늉이나 할 뿐이고 저희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아왔다.“
박윤숙은 지난날들을 회상을 하는 것인지 잠시 눈을 감는다.
이젠 자신의 인생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있는 노부부는 둘째 딸의 사는 모습이 대견하고 보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이제는 전실 자식들도 모두 잘 따르고 그 집안의 어른으로 자리매김을 해 나가는 딸의 모습이 든든하기만 하다.
“아버지, 엄마!”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엄마 아버지를 부르는 민희의 음성에 노부부는 벌떡 일어나 걸음을 옮기며 반색을 한다.
“왔냐?”
우영감의 얼굴은 화색이 피어오른다.
“아버지! 많이 편찮으신 것은 아니시죠?“
”아프긴? 이 나이를 먹어서 이 정도도 아프지 않다면 욕심이지. 자네도 어서 오게!“
“장인어른, 장모님! 인사드리겠습니다.”
김형우는 큰 절로 처부모님께 인사를 올린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