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gWVczI8spc?si=3o611_ym34nm-um7
Cesar Auguste Franck 1822 ~1890
벨기에 태생인 프랑크는 20세기 초 프랑스의 기악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쌓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작고가입니다. 그의 선조는 파리에서 앙리 3세를 섬긴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그 피를 이어받은 프랑크도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질을 보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프랑크를 음악가로 성공시키기 위해 14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 곳에서 여러 가지 파란도 있었으나 1842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성 클로틸드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생을 보내며 작곡에 정진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인정을 받은 것은 69세 때 작곡한 <현악 4중주곡>이 발표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노력한 성실한 사람으로 성자와 같은 자세로 조용한 것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는 바하와 베에토벤을 연구하여 그것을 밑바탕으로 자기의 음악 세계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그가 살던 19세기 후반은 화려한 낭만주의 시대였습니다. 더구나 프랑스에서는 순음악보다 오페렛타 같은 것이 성행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프랑크는 세속의 영광을 바라지 않고 경건한 태도로 그 조류에 휩쓸리기를 거부했습니다. 그야말로 고전주의의 순음악을 프랑스에 부활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를 존겨하는 젊은 작곡가들이 프랑크의 주위에 모이게 되었는데 이 일파에 대하여 “프랑키스트”란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같이 순음악을 프랑스에 부활시키는 데 공헌한 외에도 침체된 프랑스의 실내악을 재건 시키기도 했습니다. 1890년 4월에 합승 마차에 가슴을 부딪친 것이 원인이 되어 늑막염과 다른 병이 겹쳐 세상을 떠났습니다.
Albert Schweitzer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G.)
독일의 오르간 주자, 바하 연구가, 신학자. 복음교회의 목사의 아들오 태어나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움. 1893-99년,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배운 다음, 파리에서 비도르 (Widor)에게 오르간을 사사. 1897년 박사학위를 취득, 목사견습, 슈트라스부르크 대학 강사, 파리 바흐협회 오르간 주자로 일하는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의료와 전도에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의학을 배웠으며 1911년 국가시험에 합격, 1913년 구 프랑스 령 콩고의 람바네레로 가서 원주민을 위한 병원을 개설하였습니다.
그 후 몇차레 유럽으로 돌아가서 연주회를 하였습니다.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 바흐 연구가로서 알려졌으며 저서로는 '음악의 시인 바흐 J.S. Bach, le musicien-poete' (1905), '르랑스와 독일의 오르간 제작술과 오르간 주법 Franzosische und deutsche Orgelbaukunst und Orgelkunst' (1906 단행본), '오르간 제작의 개량 Die Reform unseres Orgelbaues....' (1909 잡지 논문) 등이 있으며 비도르 등과 더불어 바흐의 오르간곡 전집을 편집하였습니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iZTQ5z_9RZ8?si=aQeGgBGlYHWkHwn
Trois chorals pour orgue: No. 1 in E Major, FWV 38 · Albert Schweit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