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해설] 강변북로 / 강인한
강변북로
강인한
내 가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이 지나갔다.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저 달의 운필은 한 생을 적시고도 남으리.
이따금 새들이 떼 지어 강을 물고 날다가
힘에 부치고 꽃노을에 눈이 부셔
떨구고 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밤이면
검은 강은 입을 다물고 흘렀다.
강물이 달아나지 못하게
밤새껏 가로등이 금빛 못을 총총히 박았는데
부하의 총에 죽은 깡마른 군인이, 일찍이
이 강변에서 미소 지으며 쌍안경으로 쳐다보았느니
색색의 비행운이 얼크러지는 고공의 에어쇼,
강 하나를 정복하는 건 한 나라를 손에 쥐는 일.
그 더러운 허공을 아는지
슬몃슬몃 소름을 털며 나는 새들.
나는 그 강을 데려와 베란다 의자에 앉히고
술 한 잔 나누며
상한 비늘을 털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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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의 전체 거실 유리창은 통유리였습니다. 한강이 내 눈앞에 동에서 서로 펼쳐져 있고, 하늘 아래 저 멀리 관악산이 보였습니다. 한눈에 보이는 한강과 하늘…. 그 풍경은 실내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일망무제의 아름다운 풍광이었습니다. 셋집으로 살게 된다는 게 흠이지만, 일단 압도적인 풍경은 그림 같았고 상쾌하며 시원스러웠습니다.
이삿짐이 대강 정돈된 집에 살면서 이 풍경을 한번 내 기어이 근사하게 시로 써야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두 달 넘게 괴로워하다가 가까스로 시의 첫 연을 끌어내었습니다. 유장한 강의 흐름과 달을 곁들여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달의 운필’까지 힘겹게 끌어낸 시상이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 구경을 온 큰동서가 말해주었습니다. 저 아래 어디쯤이 옛날 ‘국군의 날’ 행사의 본부석을 설치한 한강 백사장이 있었던 장소라고. 아마 거기 어디에선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소장이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망원경으로 공군 비행기들의 곡예비행을 보았을 겁니다. 탱크를 앞세워 적지가 아닌 새벽의 방송국으로 쳐들어가 군사혁명을 선언한 그는 훗날 적군도 아닌 부하의 총에 죽게 될 운명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왼쪽(東)에 동작대교가 보이고 관악산을 오른쪽으로 끌며 한강대교(西)가 서 있습니다. 그 옛날 초대 대통령이 전쟁이 터지자 남쪽으로 피신한 다음 한강 이북의 서울 시민들은 나 몰라라, 인민군들에게 떠맡기고 부숴버린 한강철교가 있던 곳. 더 아래로 마포 쪽입니다. 거기 있는 원효로 부근 강변3로 어딘가 자기 오빠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했다고 정부가 암암리에 뒤집어씌운 정인숙 여인 살인사건의 슬픈 현장이 있습니다. 정인숙 여인의 어린 아들의 귀가 마치 누구의 쪽박귀를 쏙 빼닮았더라는 풍문이 그 당시 국회 안에서 회자되고 그런 뒤끝이었습니다.
졸시 「강변북로」는 관악구를 2011년 1월에 떠나 강 건너 용산구 이촌1동에 이사한 그해 3월에 쓰고 격월간 《유심》 5/6월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평설]
왜곡된 역사를 위한 진혼곡
길 이미지는 흔히 인생이나 시간의 은유로 사용되어 추상적이고 선형화된 개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잘 된 시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추상이나 관념을 뛰어 넘어 그 울림을 감각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준다. 강인한의 시「강변북로」는 단순한 길 이미지를 넘어서 인간의 생명과 역사성에까지 닿아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이다. 시인이 이 시의 첫 구절부터 “내 가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이 지나갔다.”고 하여 풍경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그가 ‘달’로 표상되는 시간의 울림을 내면적인 어떤 사건으로 바라보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달이 강물을 일으키고 붓을 세워서 한 생을 적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붓’은 물론 시인이 시를 쓰는 일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인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질곡의 역사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연에 오면 강을 물고 나는 새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당시 ‘강’으로 표상되는 시간이나 역사가 평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여기서 새들은 역사를 살아가는 인간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붓’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인과도 관계된다. 사실 새가 강을 물고 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고, ‘꽃노을’로 표상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역사로서의 강을 세상에 떨구고 의식 없이 살아갈 때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3연에 와서 구체적인 역사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검은 강’은 ‘검은 역사’의 은유라고 볼 수 있는데, “강물이 달아나지 못하게/ 밤새껏 가로등이 금빛 못을 총총히” 박는 일은 ‘검은 강’의 내력을 은폐하기 위해서 내세운 군사정권의 금빛 경제비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4연에 오면 보다 구체성을 얻게 된다. “부하의 총에 죽은 깡마른 군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깡마른 군인이 강변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쌍안경으로 쳐다본 것은 “색색의 비행운이 얼크러지는 고공의 에어쇼”로 표상되는 군사정권의 절대권력일 것이다. 그 더러운 허공의 역사를 아는지 새떼들이 슬몃슬몃 소름을 털며 난다는 시인의 진술은 질곡의 역사를 견뎌온 시인 자신의 고백과도 같은 것이다.
이 시의 말미에서 화자는 상처 입은 강을 데려와 베란다 의자에 앉히고 술 한 잔을 나누며 상한 비늘을 털어주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시인은 군사 독재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수많은 이들의 진혼을 위한 의식을 거행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아픔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잠시 흐릿해졌지만 강변북로는 지금도 당시의 왜곡된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시인의 진혼곡은 강변북로가 다 말하지 못했던 아픈 역사를 새롭게 환기시켜주는 살아있는 서정시라고 생각된다.
박남희(시인)
첫댓글 남향의 전체 거실 유리창은 통유리였습니다. 한강이 내 눈앞에 동에서 서로 펼쳐져 있고, 하늘 아래 저 멀리 관악산이 보였습니다. 한눈에 보이는 한강과 하늘…. 그 풍경은 실내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일망무제의 아름다운 풍광이었습니다. 셋집으로 살게 된다는 게 흠이지만, 일단 압도적인 풍경은 그림 같았고 상쾌하며 시원스러웠습니다.
이삿짐이 대강 정돈된 집에 살면서 이 풍경을 한번 내 기어이 근사하게 시로 써야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두 달 넘게 괴로워하다가 가까스로 시의 첫 연을 끌어내었습니다. 유장한 강의 흐름과 달을 곁들여 ‘강물을 일으켜 붓을 세운 달의 운필’까지 힘겹게 끌어낸 시상이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그 강을 데려와 베란다 의자에 앉히고
술 한 잔 나누며
상한 비늘을 털어주고 싶었다."
-강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