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실제인물들과 실제 사건 및 견해와는 상관 없습니다.

889년, K-Yas의 영지 노르드가우에 롤라드교를 믿는 이단자들이 늘어나자
K-Yas 백작은 궁정사제 고르하르트를 파견하여 그들을 교화하게 하였다.
고르하르트는 치킨과 찍어먹는 탕수육으로 이단자들을 회유하는데 성공했고,
이 소식을 들은 교황과 로타링기아왕은 깊은 감명을 받고 평생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탕수육을 부어먹는 것을 진리로 알고 있던 일부 이단자들이
전 노르드가우 백작을 추종하는 불순한 귀족들과 야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로타링기아왕과 교황,K-Yas는 반역자들을 맹렬히 비난하였고
진압은 K-Yas 백작이 맡게 되었다.

반역자들을 소탕하러 출전하기 직전, K-Yas 백작은 사냥터에서 사냥한 기러기 고기를 구워먹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사냥한 기러기를 누군가 가져갔다.
하지만 어설픈 기러기 도둑은 기러기 털을 흘려놓았고,
그 털들을 따라간 K-Yas 백작은 수보타이의 숙소에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기러기 털을 벗기고 있던 수보타이와 그의 하인을 만나게 되었다.
수보타이는 자신도 기러기를 사냥했다고 하였고 그의 하인도 동조했다.
그러나 10살짜리 어린이가 기러기 사냥을 할 수 있을리 없었다.
그날 수보타이의 하인은 해고되었고 수보타이는 매를 맞았다.
하지만 K-Yas 백작은 수보타이의 기만적인 모습에 인상을 받아 기러기를 그에게 주었고,
수보타이 또한 이정도 일에 기죽지 않았다.

이후 K-Yas의 진압군은 노르드가우로 진격했으나,
반란군은 교활하게도 국경을 넘어 독일왕국령으로 달아나버렸다.
K-Yas 백작은 군대를 물려 반란군을 기다리기로 했고,
그동안 차남 고구려가 태어났다.

891년, 독일로 도주했던 반란군은 독일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다시 로타링기아로 진입했다.
그러나 라인강에서 대기하고 있던 K-yas의 진압군이 그들을 맞이하였고
도강중이었던 반란군은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몰살될 운명이었다.
K-yas 백작이 직접 지휘하는 기병대가 발악하는 반란군에게 돌격하여 반란군을 라인강으로 쓸어버렸고
전투가 끝난 뒤, 라인강을 뒤덮은 수많은 반란군 시체와 '용감백 K-Yas'라는 명칭이 남았다.

개선한 K-yas 백작은 수도원에서 공부하던 수보타이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학우들에게 Total 가문의 위대함을 떠벌이는 수보타이를 보게 되었다.
K-yas 백작은 수보타이를 불러 말하길 'Total 가문이 위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네가 그 위대한 가문에 걸맞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가문을 네 동생 고구려에게 맡길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보타이는 위대한 Total 가문의 장자에 걸맞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하였다.

892년, 로타링기아왕위를 두고 이탈리아왕과 로타링기아왕이 3년째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왕을 지지하는 제후들이 많아서 로타링기아왕이 점차 불리해지고 있었다.
비록 K-Yas 백작도 공작위 문제로 로타링기아왕에게 기롱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탈리아왕을 로타링기아왕이 되는 것도 유익한 일은 아니었다.
퀄른에서 종군하고 있었던 K-Yas 백작은 보급품을 공급하러 온 우르줄라 여남작에게 마음이 동하였다.
그래서 우르줄라 여남작의 침소에 몰래 잠입하여 우르줄라 여남작에게 접근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힘과 지혜를 짜내어 침대 위의 하모니를 이끌어냈다.

한편 K-Yas는 이번 종군에 장자 수보타이도 종자로 참전시켰다.
12세의 수보타이는 이번 종군에서 종자에서 기사까지 하는 일들을 직접 배웠고,
전장의 격렬한 폭력과 전투 후 방치된 수많은 시체들을 목격하였다.
어느날 전투를 끝낸 K-Yas는 혼자 밥먹는 수보타이를 목격하였다.
수보타이는 전쟁에 지쳐서 낯선 이의 접근을 꺼리고 있었다.
이에 K-Yas가 말하길
'어리석은 사람은 혼자서 영광을 만들려고 하지만
영리한 사람은 함께 영광을 만들고 오롯이 가진다.
앞으로 네 밥은 너의 숙소가 아니라 종자들과 향사들의 식당에 둘것이니, 그들과 친해지거라.
그들은 너를 위해 전장에서 죽이거나 죽을 것이다.
허나 혼자 군림하고자 한다면, 그들 중 누군가가 너를 죽일 것이다.'
라고 하였다.

893년, 우르줄라 여남작과 K-Yas 사이에서 저능아가 태어났다.
그러나 K-Yas와 우르줄라 여남작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우르줄라의 남편 니콜라스 남작은
자신의 아이로 여겨 기뻐하고 있었다.
물론 K-Yas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인정할 생각이 없었고
우르줄라 여남작에게도 함구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K-Yas백작은 우르줄라 여남작와 종종 침대 위의 하모니를 했는데
베네치아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돼지껍질로 제작된 콘돔을 이용하여 피임하였다고 한다.

893년, K-Yas 백작은 나사우에서 로타링기아왕의 기사로 종군하여
이탈리아왕을 지지하는 바르도비크 시장의 군대를 격멸하였다.
바르도비크 시장의 군대는 비록 K-Yas 백작의 군대보다 수는 많았지만
도시에서 징집한 시민군이었던 그들은 기수와 고수 몇 명이 쓰러지자 일제히 달아나버렸다.
이 전투에서 K-Yas는 엄정한 대열과 군율이 군대의 전개와 이동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깨달고,
자신의 아들들과 기사들에게 이 전투의 교훈을 가르쳤다.

그러나 K-Yas 백작의 종군 기간이 끝나고 영지로 돌아가자,
이탈리아왕 루트비히와 그의 무리들은 군세를 재정비하고 다시 로타링기아군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오랜 전쟁에 지친 로타링기아 귀족들은 로타링기아왕에게 양위를 요청했다.
그리하여 893년 12월, 이탈리아왕 루트비히는 로타링기아 왕위를 얻었다.
그러나 루트비히는 로타링기아 왕위를 얻어내는 이 지겨운 전쟁에서 불구가 된 상태였다.
그에겐 아들도 없었기에, 그가 죽으면 룩셈부르크 공작이 된 전 로타링기아왕이 다시 왕위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왕이 로타링기아왕을 겸한 소식을 들은 K-Yas 백작은
로렌 공작위에 대한 계획이 끝장났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51세의 노백작은 공작위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한편, 수보타이는 종자들과 향사들은 물론 기사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려지내고 있었다.
종종 수보타이는 그들이 처한 곤란을 경청한 다음, K-Yas 백작에게 청원하기도 했다.
이에 K-Yas 백작은 '사랑하는 자들은 사랑의 보답을 받을 것이로다!' 라 하고 수보타이를 칭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K-Yas 백작은 수보타이의 친절함에 불안함을 느꼈다.
로타링기아 왕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롱당했고
강대한 이탈리아왕에게 억눌린 노백작이 바로 자신이 아닌가?
친절함을 배신당하는 쓰라림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K-Yas의 공작위를 향한 열망은 더욱 커져갔다.

894년 정월, 아퀴탱 왕국에서 명성을 날리던 음류시인 부부가 K-Yas 백작의 초청을 받고 찾아왔다.
그들은 K-Yas의 가신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풍자와 노래로 사람들을 웃기거나 울렸다.
그런데 그 부부가 읊은 궁정연애시 중에는 어느 노백작과 여남작의 불륜 이야기도 있었다.
K-Yas 백작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약간 불편했지만,
연회를 즐겁게 한 음류시인 부부에게 후한 보답을 하였다.
얼마뒤, 이탈리아왕과 로타링기아왕을 겸하던 루트비히왕이 상처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룩셈부르크 공작으로 강등된 전 로타링기아왕이 다시 로타링기아왕으로 복위되었다.
로타링기아왕은 K-Yas 백작에게 예전에 보여준 충성을 다시 기대하면서
한편으로 지금까지의 충성에 대한 보답을 해주겠노라고 하였다.

몇개월 후, 가신 레이나우드가 선가우 백작 리우트프리트에 대한 클레임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선가우 백작은 원래 로타링기아왕의 봉신이었으나 이탈리아와 로타링기아가 싸우는 동안 독립하였고,
교황과 로타링기아왕이 탕수육을 찍어먹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불만을 표출했다.
K-Yas와 레이나우드는 상당한 돈을 들여 레이나우드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고,
K-Yas가 선가우 백작위를 획득한다면 알자스 공작위를 만들 수 있었다.

K-Yas가 선가우 백작을 징벌하기 위해 출정하려는 순간,
로타링기아 왕국에서 칙사가 당도했다.
칙사는 로타링기아왕이 K-Yas 백작의 오랜 충성과 봉사를 치하하여
하로렌의 공작으로 임명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하여 하로렌 공작 K-Yas는 선가우 백작위와 알자스 공작위를 획득하러
출전할 수 있었다.
첫댓글 ㄷㄷㄷ 재미있어보이네요. ..전 사놓고 할줄몰라 방치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