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레어 하우스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바로 맞은편, 라파예트 공원 건너편에 자리한 건물이 있다.
이름은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
겉모습은 단정한 벽돌 건물이지만 그 문턱은 세계 정상 가운데서도 아무나 넘을 수 없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국빈’을 예우할 때만 허락되는 일종의 외교적 침실이기 때문이다.
블레어 하우스는 1824년 워싱턴 변호사 조지프 러브조이 블레어가 지은 사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방정부에 매입을 지시하면서 ‘공식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블레어 하우스가 ‘국빈 숙소’라는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규모도 만만치 않다.
인접한 건물 네 채를 합쳐 방 119개, 욕실만 35개를 갖췄다.
연회장과 회의실, 사교 공간까지 있어 사실상 ‘작은 백악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곳에 묵을 수 있을까. 원칙은 간단하다.
미국 대통령이 국빈(State Visit)으로 초청한 외국 정상만이 블레어 하우스의 손님이 된다.
초청 격이 ‘국빈급’이어야 하고 미 의회와 국무부가 함께 정하는 외교 의전의 최상위 단계에서만 문이 열린다.
이재명 대통령이 워싱턴을 찾았을 때 블레어 하우스에 묵지 못했다면 이는 ‘한미 정상회담의 형식’이 국빈 방문이 아니었음을 뜻한다.
백악관이 준비한 의전의 무게, 미국이 동맹국 지도자를 대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블레어 하우스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다.
세계의 권력자들이 잠시 머물다 간 미국 외교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누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는 미국이 해당 지도자를 어떤 위치로 평가하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결국 문제는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미국이 우리를 얼마나 크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블레어 하우스의 침대가 비어 있든 차 있든 그 그림자 속에서 외교의 냉정한 현실이 드러난다.
참고로 블레어하우스에서 머문 한국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이다.
반면 머물지 못한 대통령은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현재)이다.
우연이지만 좌파 대통령들만 숙박하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이재명이 머물지 못하는 것은 블레어하우스가 공사중이어서 미국측에서 양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레어하우스는 공사를 하지 않고 있다.
거짓말이다.
<茶江>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