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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을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일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책이다. 문화유산을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시민의 눈높이로 끌어내렸고, 전국의 산과 절, 오래된 건축물과 유적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책 한 권이 사람들의 여행 방식을 바꾸고 문화유산을 대하는 마음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친일파 유묵 오인 전시와 관련한 논란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애국지사의 글씨로 소개한 작품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로 확인됐고, 해당 작품이 유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작품의 검증 과정과 공공기관의 책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유 관장은 국정감사에서 거듭 사과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독자들 사이에서는 그의 책을 반납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감동했던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한때 존경했던 저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그가 쓴 책의 모든 문장이 갑자기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책의 명성과 저자의 사회적 책임을 별개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여기서 저자와 저서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좋은 책을 썼다는 사실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서는 아니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정의롭게 사는 것은 아니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언제나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사상을 남긴 사람도 자신의 삶에서는 그 사상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글과 삶 사이에는 때로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 저서는 저자의 생각과 지식, 경험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저자의 인격 전체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책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잘못은 잘못대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저자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공공기관의 수장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지식인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이 요구된다. 그가 말하는 지식과 교양은 단지 책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적인 판단과 행동에서도 그에 걸맞은 신중함과 책임감을 보여 주어야 한다.
더구나 문화유산은 개인의 명예를 높이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역사이며,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공동의 자산이다. 문화유산을 설명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박한 지식만이 아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엄격함,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공적인 권한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책을 반납하는 독자들의 마음도 헤아려 볼 일이다. 그들은 단순히 책 한 권을 돌려주려는 것일까. 어쩌면 책을 통해 믿었던 저자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 사이에서 느낀 실망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저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책에 담긴 모든 가치까지 폐기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책의 가치는 저자의 명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저자의 잘못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책을 버릴 것인지, 다시 읽을 것인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 선택에 앞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우리는 그동안 책을 읽으며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저자의 명성을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책 속의 진실을 믿었던 것일까.
저자는 책을 쓰지만, 책이 저자의 인격까지 완성해 주지는 않는다. 훌륭한 책을 쓰는 일과 훌륭한 사람으로 사는 일은 다르다. 그러나 자신이 쓴 글의 무게를 삶에서도 감당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더욱 깊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저자의 손에서 태어나지만, 독자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저자의 이름이 흔들린다고 해서 책의 가치까지 서둘러 판단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책이 훌륭하다고 해서 저자의 잘못까지 눈감아 주어서도 안 된다.
책은 읽되, 저자는 냉정하게 평가하자. 그리고 지식인의 명성보다 그가 지키는 원칙을, 화려한 문장보다 그가 살아가는 태도를 살펴보자.
누구나 훌륭한 책을 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쓴 책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그 차이가 저자와 저서를 넘어, 한 인간의 진정한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