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야의 사설시조「모사(模寫)」평설 / 박남희
모사(模寫) 류미야 일생 빛의 뒤를 쫒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홀로 밤의 우주를 유영하는 반딧불이, 건드린 허공마다 영롱히 돋아나는 그 위대한 오디세이를 따라나서 볼까요 스스로 빛나는 건 성좌를 모릅니다 별들은 제 이름을 호명하지 않아요 깨진 빛의 부스러기로 불씨를 지펴내는 두근대는 찬란을 소망이라 부를까요 남루의 골목마다 제 겉옷 벗어주는 빛이 되는 것들은 모두 맨발입니다 부르튼 뒤꿈치로 첨탑 위 올라앉으면 뿔이 돋던 어둠도 귀가 순해지지요 모사꾼의 혀끝에서 갈라져 나간 길 위엔 몰려가고 몰려오는 얼룩진 말의 한 떼, 문 하나가 열리면 다른 문이 막히는 뻔한 스무고개를 속아 넘어가면서 죽도록 베낀 것들이 한데, 죄 그림자라니요 .............................................................................................................................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은 빛과 더불어 사는 일이다. 만약에 빛이 없다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지구의 빛은 태양으로부터 오고 태양빛은 지구의 생명이 살아가는데 적당한 빛과 온도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하루의 일상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어둠을 뚫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오감(五感) 중 빛과 관계된 것은 시각이다. 인간은 빛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인 눈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판단하게 된다. 인간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빛이 있기 때문이다.
류미야 시인은 위의 시를 통해 인간의 삶의 본질이 “일생 빛의 뒤를 쫓는 일”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관심을 갖는 것은 밤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성좌가 아니라 반딧불이 처럼 “건드린 허공마다 영롱히 돋아나는 그 위대한 오디세이”이다. 시적 화자가 어쩌면 보잘 것 없이 느껴질 법한 반딧불이를 ‘위대한 오디세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작은 것에서 커다란 가치를 발견하는 시인 특유의 가치관에 기인한다. 그리하여 화자는 “깨진 빛의 부스러기로 불씨를 지펴내는 두근대는 찬란을 소망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시인은 시각적으로 환한 물리적 발광체만 빛으로 보지 않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을 빛으로 명명한다. 그리하여 시인은“남루의 골목마다 제 겉옷 벗어주는 빛”에 주목한다. 이런 빛들은 대부분 타자에게 헌신적이어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헐벗고 부르튼 맨발의 상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러한 빛의 성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이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모사꾼’을 등장시킨다. 그리하여 “모사꾼의 혀끝에서 갈라져 나간 길 위엔 몰려가고 몰려오는 얼룩진 말의 한 떼”가 있어서, 인간은“문 하나가 열리면 다른 문이 막히는 뻔한 스무고개를 속아 넘어가”는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시인은 자신이 평생 빛을 쫓으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모사하려고 애를 썼지만, 자신이 죽도록 베긴 것들이 그림자임을 알고 허탄해 한다.
사실 어떤 대상을 모사(模寫)하는 행위는 실체를 보여주는 일과는 구별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다. 하지만 인간이 평생 모사한 것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아름다움을 쫓는 행위이므로 가치가 있다. 반면에 현란한 말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사(謀事)꾼의 행동은 백해무익할 뿐이다. 이 시는 우리가 평소에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대비적으로 전경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작은 것들이 지닌 커다란 의미를 알게 해준다.
—계간 《시인시대》 2023년 봄호
박남희(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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