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키가 170cm이다. 작년까지 그런 줄 알았는데 올해 봄 정기검진 때 내 키는 169.5라고 했다.
요즘 신장 측정은 신발 벗고 올라가 서 있기만 하면 자동으로 뭔가가 스르륵 내려 왔다 올라 가면 끝, 키와 몸무게까지 즉석에서 표시된다.
"어? 이 기계 잘못된 거 아녜요? 내 키는 170인데,,"
의사에게 항의(?)를 했더니 웃으면서 그랬다.
"나이 들면은 키가 점점 줄어요."
내가 의사 말을 잘 믿는 편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나중 한 선배한테 물었다.
"맞어, 나도 2센치 가까이 줄었단다."
의사 말로는 늙으면 3센티 넘게 줄어 드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내가 170이라는 신장 때문에 열등감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국민학교 때 작은 키로 인해 겪은 아픔이 있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 배구 선수로 활동했다.
같은 반 절친이자 키 큰 친구가 함께 하자고 권한 것도 있었지만 배구부에 들어 가면 빵을 줬기 때문이다. 큼지막한 옥수수빵,,
수업 마치고 학교 정구 코트에서 배구를 했는데 키가 작은 나는 세터를 맡았다.
공격수인 6학년 형과도 호흡이 잘 맞아 지도 선생님한테 배구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해 가을 전체 면 대항에도 출전했다.
우승하면 면 대표로 뽑혀 군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경기였다.
여섯 개 학교가 출전했는데 결승전에서 져서 준우승을 했다. 준우승도 어딘가 싶었으나 대회가 끝나고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되겠다. 다른 얘한테 주전 맡길 테니 너는 그만 나와라."
이렇게 나는 배구 선수 생활 1년 만에 조기 은퇴를 해야만 했다.
선수 생활은 접었지만 배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80년대 인천 계양산 예비군 훈련장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다.
점심 시간에 오합지졸 예비군끼리 동네 배구로 하는 담배내기 경기였지만 내가 뛰는 팀이 이겨 엄청 기분이 좋았다. 내가 넣는 강서브에 상대팀은 쩔쩔맸다. 뻥이 아니라 진짜다.
## 오늘 왕년의 배구 스타였던 조혜정 선수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점심 먹으러 가려다가 이 뉴스를 보고 내 과거가 생각났다.
이 분은 한때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선수였기에 많이 놀랐다. 조혜정 선수가 1953년 출생이니 향년 71세로 영면한 것이다.
지금이야 스포츠가 즐기는 것으로 바꼈지만 내 어릴 적만 해도 죽기살기로 경기에 임했다. 반공 시대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북한이나 일본한테는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시대였다. 조혜정 선수를 애도하며 잠시 내 가슴 속에 담긴 스포츠 풍경을 꺼내 본다.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화단에는 이순신 장군과 이승복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승복 노래도 배웠다.
<원수의 총칼 앞에 피를 흘리며 마지막 주고 간 말 공산당은 싫어요>, 이런 가사였던 것 같은데 당시 비장했던 노래 선율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조혜정 선수는 작은 키로 유명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 메달을 따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라디오에서 조혜정과 여자배구 대표팀의 활약상을 다큐멘터리처럼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전에 탁구 선수 이에리사가 한국 스포츠 역사를 쓰기도 했지만 내가 처음 운동 스타로 가슴에 담은 사람이 조혜정이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양정모 선수가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서 더욱 의미가 있는 올림픽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스포츠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는데 북한과의 경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때 북한은 스포츠에서도 한국보다 우위였는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올라가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북한 축구의 최전성기였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게 질까 봐 일부러 북한이 출전하는 대회에는 불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림픽 금메달도 북한이 한국보다 먼저 1972년 뮌헨에서 땄다.
북한의 스포츠 두각에 자극을 받은 한국은 축구뿐 아니라 각종 스포츠를 집중 육성하기에 이른다.
한국의 동메달에 앞서 조혜정 선수가 국가대표로 뛴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이 한국보다 먼저 여자배구에서 동메달을 딴다.
그것도 한국을 꺾고 동메달을 땄으니 한국에서는 보도 자체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북한이란 말도 없고 북괴라고 불렀던 시대다.
한국 정부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선수 육성을 했는데 결국 여자배구가 동메달을 땄으니 얼마나 큰 국가적 경사였겠는가.
당시 세계 언론으로부터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라는 찬사를 받았던 조혜정 선수다.
당시의 영웅 조혜정과 양정모는 공교롭게도 1953년생 동갑으로 둘 다 부산 출신이다.
그들은 귀국할 때 커다란 꽃목걸이를 걸고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페레이드를 벌였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나는 1970년대 기억 중에 조혜정과 고상돈이 스타로 각인되어 있다.
연예인, 문학인, 체육인 중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내겐 한동안 두 사람이 맨 앞이었다.
조혜정 선생이 너무 일찍 떠난 것이 안타깝지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이 한 사람을 애도하기에도 좋은 날이다. 세월도 인생도 이렇게 흐르는가 보다.
조혜정 선수가 현역 때 강타를 날리는 모습. (퍼온 사진)
현역 스타 김연경과 과거 스타 조혜정, 신장 차이가 엄청나다. (퍼온 사진)
첫댓글 대한민국 여자 배구가 1976 년에 올림픽에서 최초로 동메달을 땄었구
그 주역중의 한분이 조혜정 씨 였습니다
아직은 더 살수 있는 분인데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평성대님께서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군요. 제가 유난히 스포츠를 좋아했던지라 그때를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배구가 단체경기라서 한 사람만 잘 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조혜정이 없었다면 동메달은 따지 못했을 겁니다.
그때 땄던 동메달이 지금까지 한국배구가 남녀 통틀어 유일한 올림픽 메달이고 앞으로도 영영 메달 따기는 요원할 걸로 보입니다.
조혜정 부산여중 1 학년때. 우리반 이었죠
배구 특기자로 들어온
박은실도 있었고
배구선수들은
수업시간에는 거진 안들어 오고
배구연습만 하더군요
조혜정 얼굴. 너무 잘 알지요
체장암 투병으로 영면했네요
나르는 작은새 였죠
배구. 하면 조혜정이었죠
고이 영면 하시길 바래요
중딩때
저가 167 이었어요
초등5때. 제 키가 160 정도 되어서 인지
학교 배구 셈 눈에.
띄어서 일년간 여자 배구선수로 뛰었는데
9인조 극동식 이죠
초등학교. 대회에 모조리 져서요
그만 두었는데
배구선수 시절은 잼있어요
옥수수떡도 주고요
아하~ 리야님이 중학교 때 167이었으면 웬만한 배구선수 신장입니다. 국가대표 조혜정 선수가 165였다지요.
조혜정 선수와 같은 반이셨다니 세상이 한편 참 좁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급하신 박은실은 혹시 박인실 선수가 아닌가도 싶네요.
당시 박인실은 조혜정과 함께 국가대표 거포였다는데 훈련 방식에 불만을 품고 대표팀에서 이탈해 선수 제명을 당해 올림픽 출전을 못한 것으로 압니다.
리야님이 9인제 배구를 하셨듯이 옛날에는 9인제 배구도 인기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대전에서 열린 어머니 배구대회를 직관했는데 9인제 배구더라구요.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니들의 배구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암튼 리야님과의 묘한 배구 인연에 끌림이 생깁니다.
@유현덕 아
마자요
박인실
우리시대 젊은날의 영웅이였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뜨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헤정님은 저한테도 영웅이었습니다.
요즘 71세는 한창 활동할 중년인데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깝네요.
모쪼록 그산님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새싹을 키가 작다는것 땜에
좋아하는 배구를
졸업시키다니요~~^
선생님 너무해.
ㅎㅎㅎ^^
유현덕님은
문학.미술.스포츠까지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이십니다.
저는 운동은 죽어라싫어했네요.
오재미치기. 고무줄놀이
등 배구는
배구공에 맞아 아플까봐
체육시간은
배아프다하며
땡땡쳤구요.
ㅎㅎㅎ~
바다사랑님, 제가 유독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서 일찍부터 스포츠 신문 구독자이기도 했답니다. 신문 연재소설도 열심히 읽었지요.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밀려난 것이지 선생님 잘못은 없습니다. 나중 들은 얘긴데 당시 지도 선생님은 준우승을 했음에도 교장 선생님한테 엄청 깨졌다고,,
연습 끝나고 집에 갈 때면 선생님이 슬쩍 옥수수빵 하나를 더 건네 주기도 했답니다. 저는 달음박질로 집에 와 엄니한테 막 자랑을 했지요.
운동도 억지로 하면 되레 스트레스 받는다데요. 바다사랑님처럼 쉬엄쉬엄 다니면서 풍경 구경하는 것도 멋진 일상입니다.
언제나 좋은 날 되세요.ㅎ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주위에 편 인식이지만 우리가 아는 분들이 떠나는 아쉬움을 함께 느끼는 세대입니다.
유현덕님은 재주가 많으시네요.
작은 키였지만 배구 까지...
저도 초딩 때 까지 학년에서 젤 컷었습니다.
그 후 2센티 밖에 자라지 않아서 아쉬워요.
160에 겨우 턱걸이, 이젠 그마저 줄었 더라구요.ㅎㅎ
뼈가 약하고 유연해서 체조 하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만
운동은 정말 어지간한 의지로 해 낼 수 없을 듯 해요.
운동 해서 성공 하신 분들의 피 땀은 인정 해 드려야 합니다.
예전엔 카 퍼레이드 많이 하던데...
옛 이야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아내도 초등학교때까지 반에서 제일 커서 맨뒤에 앉아 남자아이들
많이 때렸다고 합니다. 162에서 멈췄는데 또래중에선 큰편이라 합니다
커쇼님 말씀처럼 아는 분들이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 저는 쓸쓸함이 밀려 옵니다.
일상에서 사람 죽고 나는 거 자연의 순리이건만 초연해지겠다는 다짐은 겉마음이고 속마음은 나이들수록 더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스타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겠지요. 타고난 자질도 있어야겠지만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이 있었을 겁니다.
운동 스타든 예술 스타든 박수를 보내야 할 이유입니다.
키가 크는 시기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이데요. 초등 때 작았던 사람이 중학 때 훌쩍 크기도 하고 땅꼬마 소리 듣던 아이가 고등 때 훌쩍 커서 역전을 하기도 하구요.
인생도 우리들 키 크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앞서거니 뒷서거니, 초반은 성대했으나 정체 구간에서 멈추기도 하고 대기만성도 있구요.ㅎ
고딩때 배구부가 있었는데..
특히나 고 1, 2때는 배구부 시합 나갈 때면
잠시 학교 수업 접고 응원 나갔던 생각이 납니다..
높이 올라 강 스파이크를 날려
상대의 혀를 찌르는 ...
그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리고 함성~~~
배구부 애들중에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집이 같은 방향이다 보니 같이 다닐때가 많았어요
헌데 그친구랑 다니면 저는 고목나무에 매미..ㅎ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답니다.
신랑의 키는 183 지금은 줄어들어 182
예나 지금이나 남편키가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눈~~ ㅎ
참고로 내키는 157 ~ㅋ ^^::
유현덕님은 양파같은 그런사람,,,ㅎ
와우~ 칼라풀님처럼 활달한 이런 댓글 읽으면 하늘로 점프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확 올라갑니다.ㅎ
우리 학교 배구부에서도 고목나무의 매미가 저였답니다. 최장신 공격수와 최단신 세터인 제가 나란히 서면 딱 그짝이었겠지요.
예전에 배구와 야구가 인기 스포츠일 때 응원전이 대단했습니다. 동대문에 있는 서울운동장에서 야구 경기를 할 때면 동문들의 응원전으로 불꽃이 튀었답니다.
나야 아무쪽도 아닌 일반 관람객이었어도 덩달아 엉덩이가 들썩들썩,,ㅎ
저 양파 같은 사람 맞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알맹이는 속이 텅 비었다네요. 아담한 칼라풀님은 키 큰 신랑에게 사랑 받을 자격 충분합니다. 행복하세요.ㅎ
@유현덕 다른이야기 이긴 하지만
초딩4학년때 남시친 진섭이가
있었어요..
진섭이는 여자애들 한테 동네북
그러던 어느날~~
진섭이누나 진미언니랑 한판
붙었는데 언니가 힘이좋고
키가 커서 게임 상대가 안됐지만
육탄전이 안먹혀서 팔목을 힘껏
물었더니 진미언니 엉엉~~~~
울면서 집으로 ㅎㅎ
갑따기 생각나네요
진섭이 별명이 재떨이 였는데
그아이는 시방 무얼하고 있을까
ㅋㅋㅋㅋㅋㅋ
네~덕분에 스포즈 알고 배구 선수를 알고,오늘 아침에 들었습니다.
천국에 가세요.
네, 자연이다님도 스포츠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저도 오늘 낮에 영면 소식 듣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답니다.
부지런한 님을 응원합니다.
아 돌아가셨구나
ㅠ 코트의 작은 거인이라고 유명하셨는데 그나저나 현덕님께서 배구하셨다니 운동신경도 좋으시고 문학도 심취하시고 재능이 많습니다
스포츠에 관심 없는 여성들도 몬트리올 올림픽은 많이들 알고 있더군요. 워낙 뉴스에 자주 나와서 그런가 봅니다.
제가 운동 신경이 좀 있단 소리를 듣긴 했어도 선수로 뛸 정도는 아니랍니다. 잠시 빵 얻어 먹는 재미에 선수 흉내를 낸 것뿐이지요.
오늘 해가 넘어 가면서 남긴 노을 색깔이 참 고왔습니다. 운선님도 늘 고운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세터였다니 배구에 소질이 많은 분입니다.
국가대표 세터였던 김호철도 키가 아마 170아니었던가~~ 생각도 들고..
그랬지요..
북에서도 유도영웅이라던 이창수가
우리선수에게 패배하여 아오지탄광까지 가서 채굴하고..
그게 귀순동기였다는 이야기 듣습니다.
가을님이 배구를 좀 아시는 분이네요.ㅎ
야구는 투수놀음이고 배구는 세터놀음이라고 하듯이 배구는 세터가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공격수도 세터 잘못 만나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하지요.
김호철도 단신 세터였으나 178로 알고 있습니다. 남자로는 아주 단신임에도 배구 강국 이탈리아에 진출해 명세터로 이름을 날렸지요.
북한의 유도선수가 남으로 귀순했다는 소식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우리 선수들도 북한이나 일본에 지고 오면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참 좋은 가을입니다.ㅎ
김호철선수
단신이지만 안정감. 있던 좋은 선수로 저도 기억에 남네요
엣 추억 상기시켜 주십니다
와우~현덕 친구가 배구 선출이었다니~ ㅋ
탁구나 베드민턴도 아니고..
조혜정 선수도 떠나고 며칠전 일용엄니 김수미 배우도 갑자기 떠났는데~~
누구나 가는 길이긴 하지만..낙엽따라 사람은 가고 추억만 남네요.
ㅎ 무슨 배구 선수 출신 씩이나,,
그래도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잠시 보여줬으니 조기 은퇴가 그리 섭섭하지는 않답니다.
예전에는 배드민턴뿐 아니라 탁구, 볼링 등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몸이 굳어 흉내만 내는 실력이랍니다.
손으로 하는 것은 그나마 흉내를 내는데 발로 하는 축구나 족구는 완전 젬병이라 공을 차면 신발이 멀리 날아 가지요.ㅎㅎ
남동 친구님 말대로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시대의 스타들이 하나 둘 떠나니 더욱 쓸쓸한 가을입니다.우리는 건강해서 가능한 오래오래 살다가 갑시다.
화이팅!!
김연경선수와 비교해 보니
조혜정 선수가 정말 단신이었군요.
유현덕님도 키만 좀 컸더라면
혹시 배구선수로~ㅋㅋ
그랬더라면 이렇게 좋은 글을
못 봤을 뻔 했으니 배구선수 안 하시길
정말 잘했어요.
저는 배구에 관심이 없어서
조혜정선수를 알지 못 하는데
덕분에 그 시절 스포츠스타들에 대해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앗! 반가운 제라님이시네요.
조혜정 선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파워 있는 공격수로 유명했답니다. 실제 경기를 직관한 적은 없지만 예전의 중계 화면을 보면 정말 대단하데요.
제가 배구 선수를 했더라도 후보로 있다가 은퇴했을 겁니다. 딱히 뭐가 되겠다고 목표를 정하고 살지 못했기에 이렇게 비리비리하게 사는 모양입니다. ㅎ
여성들한테 스포츠는 아무래도 관심이 덜하지요. 제라님이 스포츠 영역까지 공감을 해주시니 글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평온한 가을 밤 되시기 바랍니다.
조혜정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합니다..
아주 어릴 적 부터
깊은 인연이 있던
지인이지요..
오랜기간 연락도
못하고 지냈는데
허망한 일이
다가왔네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조감독의 어머니가 눈 앞에
선연하네요..
오늘 현덕님..
유난히 옛일을 많이 떠오르게
하네요..
조문을 가야하나
망설이고 있습니다..
세상에~~
요석님 댓글에 제가 놀랍니다.
조혜정님과 요석님이 깊은 인연이 있으시다니 저도 작은 추억을 꺼내 소환해 봅니다. 예전에 조선생님이 GS 감독 할 때 관람하러 갔다가 인사한 적이 있어요.
GS가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을 때라서 감독님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였지요. 제가 오래전부터 열혈 팬이라며 힘내시라고 응원을 했더니 고맙다면서 하트 손모양을 보내셨답니다.
귀한 두 딸을 두고 어찌 눈을 감으셨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인연이란 이렇게도 묘한 것, 저도 좋아했던 분을 깊이 애도합니다.
요석님 힘 내시길요.
꿈은 이루어진다.
실버 배구팀에서 다시 한번 남은
열정을 불태워보는게 어떠한지 ?
나는 고교때 아이스하키를 돈이 없어
포기한 트라우마에 한동안 슬펐지...
우리 같이 실버팀에 합류해볼까나 ? 앗싸~!!
그리고 김연경과 조혜정 선수 사진이
있으니 나도 사진 한장 첨부~ (^_^)
정말 실버 배구팀이 있다면 함 해 보고 싶긴 합니다. 내가 올려 주는 공을 형이 팡팡 때리면 더 좋구요.ㅎ
배구가 점프를 하는 종목이라 관절이 약하면 쉽지 않은 운동이긴 합니다.
나는 흙수저 출신이라 주로 마당쇠들과 놀았는데 형은 고급 스포츠를 했던 모양입니다. 아이스하키는 잘 몰랐어도 아이스케끼는 아주 좋아했답니다.
실버 탁구팀이나 함 만들어 보심이,,ㅎ
@유현덕
금방 나도 사진 한장 첨부했다네...
스케이팅 실력은 좋았는데 돈이 없으니
관두고 열 받아서 산악부 가입해서 산으로...ㅋ
@적토마
옴마야~
이 사람 얀재형 아닌가요?
옛날에 양영자 선수와 환상의 복식을 이뤘었는데,, 암튼 적토마 형 대단해요. 무조건 건강해야 오래 볼 수 있겠지요.ㅎ
@유현덕
맞아~ 부인은 중국선수였던 쟈오즈민선수...
여자국가대표 감독도 했었지^^
그려 늘 건강하세~ 우리 술 먹을때는 안주도
잘 챙겨먹자고라...(^_*)
조혜정선수 사망소식
들으니 참 안따깝습니다
유현덕님 덕분에. 국가대표 배구선수들 추억을 떠올리게 되네요
지인 운영자님 오셨군요.
밥벌이 하느라 점심 먹을 이제서야 딜다보고 반가운 댓글 답니다. 한때는 선망의 스타였던 분이 너무 일찍 떠나서 안타까운 마음이지요.
지인 선배님께서 조혜정님도 알고 역시 우리 카페의 든든한 알뜰 살림꾼 맞습니다.ㅎ
조현정 모습을 오랜만에 봅니다.
오늘 댓글은 점 하나만 찍습니다.
갑자기 안질이 와서요.
10월 마지막 날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곡즉전님께서 점 하나만 찍으셨다는데 제겐 점이 네 줄로 보이니 저도 노안이 심해진 모양입니다.ㅎ
안질이시면 얼마나 불편하실까요. 모쪼록 빨리 나으셔서 멋진 가을 풍경 만끽 하셨으면 합니다.
님도 좋은 날 되시길요.
덕성-대신
중앙-인창
저의 학창시절은 4개교 배구경기를 위해
장충체육관에서의 응원전도 추억입니다
대만여행중 날으는작은새 조혜정선수의
부고기사를 접하고 대농시절의 그녀를
기억합니다
조혜정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맞아요. 인창과 대신은 남고 라이벌, 중앙과 덕성은 여고 라이벌이었지요. 제가 장충체육관에서 응원한 적은 없지만 그때는 장충 만한 체육관도 없었습니다.
저는 조혜정님이 뛰던 대농 시절은 잘 모르겠으나 예전에 박미희가 뛰던 대농(미도파)과 현대의 실업배구 라이벌전은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장충이 리모델링해서 아주 세련된 체육관이 되었습니다. 프로배구도 서울이 연고인 팀이 남녀 한 팀씩 있어서 배구팬들이 자주 찾는 곳이지요.
배구팬이신 율리아나님이 대만 여행 중이시라니,, 멋진 곳에서 좋은 추억 많이 담아서 오시길요. 안전여행 되시구요.ㅎ
언니는 덕성여고
저는 중앙여고
장충 체육관에 가서
응원하던 기억으로 배구에 대한
기억이 납니다.
대학교 2학년때
전국 중문과 체육대회가
고려대에서
열렸었지요.
단지
여고가 배구로 유명하다는 이유로
배구 선수로 뽑혀서
출전
써어브를 넣다가
왼손에 부상을 입었는데
그때 고대로 유학을 왔던
중국 북경대 학생
이름도 아직 기억나는
조예문.
저에게 다가와 손을 치료해주었지요.
계속 편지도 보내고
저에게
호감을 보였으나
키가 너무 작아서
뺀찌를 놓았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당시에 한국으로 유학을 올 정도였으면
얼마나 깨인 사람이었을까
후회가 막급합니다.
ㅋㅋ.
키 크고 잘생긴 사람만 좋아하는
지병은 아직도 치유불능인
페이지..ㅋ
멋쟁이 페이지님 반갑습니다.^^
댓글이 한 편의 수필을 읽는 것처럼 두근두근과 반짝반짝이 넘쳐나네요.
제 친구가 추계예대 다닐 때 가끔 북아현동을 갔는데 중앙여고의 엄청 큰 교사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학생 수도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배구에 얽힌 사연에 중국 유학생이 끼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키 작은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서도,,
제가 보기에 그 학생의 이름은 曹睿文, 아마 그분도 고심혈성(苦心血誠)의 마음을 담고 추억의 한 페이지를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이지님의 아름다운 가을을 기원합니다.ㅎ
저도 지금 고백합니다
어릴때 과자 묵을라고
크리스마스 되면
교회갔거든요 ㅎㅎ
키작녀 더 작아지면 안되는데
그래서 물구나무도 서고 철봉도 매달리는
처절한 노력입니다
이 좋은계절에 한두분의 떠남 소식은
더 쓸쓸해질라합니다
시월도 마지막 날이라니ㅠ.ㅠ
올시월의 마지막밤
쨘 한잔할랍니다
ㅎ 교회와 크리스마스는 저도 정아님과 같은 추억을 갖고 있지요. 그때쯤 교회 문턱도 넘지 않았던 저도 동네 조무래기들과 사탕을 받기 위해 교회를 갔습니다.
그냥 바로 주나요? 하나님 말씀도 들어야 하고, 예수님 생애도 들어야 하고,, 교회 유리창 사이로 찬바람만 들어 오고 목사님 말씀은 귀에 안 들어 오고,,ㅎㅎ
키는 운동을 많이 할수록 덜 줄어든답니다. 늙음이야 어쩔 수 없겠으나 몸 건강 마음 건강이 우선입니다.
항상 유쾌하게 살면서 물구나무 서기 운동도 열심이신 정아님은 분명 세월이 거꾸로 갈 것입니다. 멋진 시월 막날 되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