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일차 (서울 → 쿠알라룸푸르 → 페낭 → 쿠알라룸푸르)
밤늦은 인천공항
에어아시아 항공기로 00시 20분 쿠알라룸푸르로 향한다. 밤늦은 시각 공항 분위기는 묘하다. 모든 차가 거의 떠나고 마지막 한두 차를
남겨 놓은 버스터미널 비슷한 우수(憂愁)가 깃들어 있다. 에어버스 A-330 기종은 메이저 항공사에서는 보통 좌우 2-4-2 좌석 배치를
하지만, 에어아시아는 좌석을 하나 더 끼워 넣어 3-3-3 좌석 배치를 만들었다. 좌우 공간이 협소하지만 저렴한 항공 요금을 생각하면 참아야
한다.
페낭 당일 왕복
6시간 40분, 짧지 않은 비행 끝에 현지시각 새벽 6시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아침 식사 후 8시 30분
페낭(Penang)행 에어아시아 국내선 항공기에 오른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당일 연결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쿠알라룸푸르에 하루 묵는 대신 평소 가보고 싶었던 페낭에 당일 왕복하기로 한 것이다. 에어아시아의 매우 저렴한 요금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쿠알라룸푸르-페낭 왕복 한화 약 4만 원). 항공기는 끝없는 열대 평원을 50분 날아 페낭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페낭 섬 남쪽 귀퉁이에
위치한 작은 시골 공항이지만 많은 승객들로 붐빈다.
▲
콘월리스 요새 도착 전 로터리에 위치한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 시계탑. 18m 높이로, 1786년 영국인 프란시스 라이트가 지었다.
사진 = 김현주
▲
페낭 거리. 겹겹이 쌓인 페낭의 역사가 다양한 건축 양식 속에 녹아 있다. 사진 = 김현주
다인종 다문화 도시
페낭
페낭은 말라카 해협 남쪽 입구에 있는 말라카(Malacca)나 싱가포르처럼 말레이, 중국, 인도, 그리고 유럽의 영향이 섞인 다인종,
다문화 도시다. 그런 이유로 페낭은 말라카와 함께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페낭은 말레이어, 타밀어, 중국어, 영어가 뒤섞인 언어 융합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계 이민자가 널리 사용했던
페라나칸(Peranakan)은 중국어와 말레이어가 융합한 크리올(creole, 두 언어의 요소가 혼합된 언어가 제1 언어로 습득된 것) 언어로서
오늘날 페낭 호키엔(Penang Hokkien)으로 변화했다. 여러 인종 집단은 다른 집단의 언어에도 관대해 중국계는 말레이어를, 반대로
말레이계와 인도계는 호키엔을 어느 정도 구사한다고 한다.
페낭은 원래 케다 술탄의 통치 지역이었으나 1786년 영국인 프란시스 라이트가 현재 페낭 섬 중심지인 조지타운에 요새를 짓고 영국
동인도회사에 할양되도록 주선함으로써 말라카, 싱가포르와 함께 영국의 지배권에 편입됐다. 페낭을 얻음으로써 영국은 말라카 해협 전 지역을
통제하면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진출과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통치 확장을 견제했다.
▲
멀리 페낭 대교가 보인다. 총 길이 13.5km, 그 중 해상 구간은 8.4km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다. 1985년 페낭 대표 완공
전까지는 페리가 유일한 해협 횡단 교통수단이었다. 사진 = 김현주
▲
해협에서 바라본 페낭 전경. 아름다운 경관이 절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 김현주
다시 뜨는
페낭
공항 터미널 바깥에서 401E 버스로 페낭 시내 중심 조지타운으로 간다. 이곳에 진입한 최초의 영국인 프란시스 라이트가 당시 영국 왕
조지 3세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다. 페낭 섬 북쪽 해안을 따라 리조트가 즐비하다. 과거와 현대의 조화 속에 도시 외곽 신시가지에는
신축 고층 고급 아파트와 다국적 기업들의 사업장이 계속 이어진다.
최근에는 중국 내 임금 상승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이곳으로 사업장이나 공장을 옮기고 있다니 번창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1969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페낭의 자유무역항 지위를 갑자기 취소했지만 이후 페낭은 관광과 다국적 사업장 유치로 다시 발전한다.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바닷길
도시 외곽을 종횡으로 지나는 고속도로가 끝나자 페낭 올드타운의 좁은 길이 나타난다. 중국, 인도, 아랍, 영국의 영향을 모두 받은
오래된 건물들은 해협 남쪽 입구 말라카 옛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올드타운의 골목길을 구불구불 누빈 버스는 버터워스(Butterworth)행 페리 터미널에 닿는다. 버터워스는 페낭섬에서 말라카 해협
건너에 위치한 도시다. 페리 터미널에서 페낭의 상징 노란색 도선으로 해협을 건넌다. 멀리 페낭 대교가 보인다. 1985년 페낭 대교 완공
전까지는 페리가 유일한 해협 횡단 교통수단이었다. 페낭 대교는 총 길이 13.5km, 그 중 해상 구간은 8.4km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다.
▲
페낭의 상징인 말라카 해협 둑 부근의 모습. 해협의 바닷물은 검붉은 흙탕물이지만 동양과 서양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자 중요한 길목이다. 사진 =
김현주
▲
콘월리스 요새 앞 에스플러네이드 광장 건너에서 타운 홀을 발견했다. 깔끔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사진 = 김현주
동양과 서양의 경계선 말라카 해협
이 중요한 길목을 페리로 건너는 감회가 크다. 비록 해협의 바닷물은 검붉은 흙탕물이지만 여기가 바로 인도양과 태평양, 아니 서양과
동양을 구분 짓는 경계선 아닌가? 이 해협이 아니었다면 배는 수마트라 섬 외곽으로 수천 km를 우회해야 인도양에서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갈 수
있다. 세계 물류의 1/3, 세계 원유 물동량의 40%가 이 해협을 지난다. 공연히 건넌 해협을 다시 건너 페낭 섬으로 돌아온다. 좁은 해안
지역, 섬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높은 산, 그리고 페낭의 상징인 중심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백인들의 무덤 페낭
페리에서 내려 콘월리스 요새(Fort Cornwallis)로 걸어간다. 여긴 매우 덥다. ‘백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렸을 만큼 무덥고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라서 백인 이주자들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콘월리스 요새 도착 바로 전 로터리에는 빅토리아 여왕 기념 시계탑이 있다. 18m 높이의 시계탑은 1897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 통치
50주년을 기념해 지역의 부호가 세웠다. 콘월리스 요새는 1786년 영국인 프란시스 라이트가 지은 것으로,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린 대포 여러
문과 요새 안마당 작은 영국 교회당이 인상적이다. 서구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땅을 찬탈한 서구 제국주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이다.
▲
콘월리스 요새 안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 무덥고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려 백인 이주자들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이민자 도시 페낭
요새 앞 에스플러네이드 광장 건너에는 시청사와 타운 홀이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근처에는 세인트조지 교회(St. George
Church)와 어섬션 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등 식민지 시대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한낮의 뜨거운 태양 빛을
반사한다. 페낭 박물관은 페낭 이민사를 잘 보여준다. 유럽, 말레이, 중국, 인도, 버마, 태국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유대인까지 전 세계에서
이민자가 몰려 왔던 역사를 강조한다.
페낭 이민자의 다양성은 세계 각국 인명과 지명이 모두 등장하는 거리 이름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박물관은 말레이 풍습과 복장, 주거
전시에 이어 2층에서 페낭 역사를 소개한다. 프란시스 라이트가 케다 술탄으로부터 페낭을 획득해 가는 과정 역시 묘사한다. 특히 1941~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페낭 통치에 관한 기록이 상세히 전시됐지만 표현은 덤덤하다.
박물관을 나와 중국 사원과 모스크 등 역사적 건축물들로 넘치는 거리를 지나 페리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오니, 저녁 8시
30분 출발 예정인 쿠알라룸푸르행 에어아시아 여객기가 심각하게 지연되고 있다. 어수선한 공항 대합실에 앉아 오늘 여행기를 정리해 보지만 시간은
무척 더디게 간다.
▲
페낭 박물관(Penang State Museum)은 유럽, 말레이, 중국, 인도 등 전 세계에서 이민자가 몰려온 역사를 소개한다. 사진 =
김현주
튠 호텔에서 피로를 풀다
예정보다 두 시간 늦게 출발해 쿠알라룸푸르에 돌아오니 밤 11시 30분이다. 예약해 둔 튠(Tune) 호텔은 공항에서 걸어서 7분
거리로 매우 가깝다. 이른 아침 출발 혹은 늦은 밤 도착이 빈번한 저가항공 스케줄의 특성을 감안하면 안성맞춤의 호텔이므로 적극 권장한다. 전
세계 어디든 공항 청사와 맞붙은 호텔은 매우 비싼데, 이 호텔은 가격도 착해서 하룻밤 113링깃(한화 약 4만 원)이다. 페낭의 덥고 습한
날씨에다가 지난밤을 비행기에서 힘들게 보낸 터라 침대에 누우니 세상이 내 것 같다. 여행 중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첫댓글 여행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