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다녀오고 싶었던 황방산을 드뎌 2011년2월2일에 다녀왔다.
코스는 효자추모관-전주이씨 제각-방마동쪽 능선-참나무 군락지-일원사 뒤편-일원사-정상-서고사-용터-정상-공원묘지-효자추모관
황방산은 나의 청소년기 까지의 놀이터로, 여름에 개구리와 뱀을 잡고, 가을에는 감이나 밤을 따고,
겨울이면 땔감을 구하며 토끼사냥과 노루몰이 그리고 칡뿌리 캐기 등을 할 수있는 야외 학습장 이었다.
황방산이란 뜻은 여러설이 있는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방(方)를 쓰고, 북동쪽 봉우리에 있는 송계비에는 방(榜)을 쓰지만,
누룰 황(黃)과 삽살개 방(尨)이 합쳐져 누런삽살개가 앉아서 서쪽을 경계하는 형상이라는 설이 대세이다.
전주의 서쪽을 수호하는 산이다.
국립지리원이 1975년에 발행한 지도에는 홍산(洪山)이라고 돼어 있단다.
그래서 그일대가 완주군 우전면 홍산리이며 학창시절에 척동,묵어실,만절리,용수물,바위백이,여매 사람들이 많이 다녔던 홍산교회가 현재에도 있으며, 도청주변의 도로를 홍산로라 한다.
현재의 효자추모관(납골당)자리는 "황방산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자리였다.
1950년 7월에 경찰이 전북 전주시의 보도연맹원 수백명을 전주시 황방산에서 학살한 사건이었단다.
국군이 후퇴하던 7월에 경찰과 특무대원들이 보도연맹원들을 연행하여 구덩이를 팠으며 총살시킨 후 매장하였단다.
내가 어렸을 때에 길게 여러개의 무덤이 있었는데, 어른들은 빨갱이가 인민재판을 해서 총살 후에 매장했다고 들었다.
반공방첩을 하던시대라 반대로 말해준것 같고, 80년초 쯤에 무덤이 없어졌다.
아무튼 그자리는 매장이 화장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천상 묘자리인가 보다.
효자추모관 앞에 있는 만절못이다.
가락골방죽, 만지, 만절못 등 여러이름이 있는데, 내가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던 곳이다.
현재는 연이 심어져서 여름에는 연꽃이 장관이다.
멀리서 보면 얼핏 구렁이처럼 보이는 참나무.
정상에서 서남쪽으로는 참나무의 군락지가 있는데, 딱따구리도 서식하며 위사진 나무의 구멍은 딱따구리의 흔적이다.
딱따구리를 실제 촬영을 했지만 카메라의 성능이 안좋아 사진은 없다.
참나무 군락지에서 채취한 참나무 영지버섯.
참나무군락지에 있는 땅굴.
어른들은 이굴이 호랑이 굴이라고도 하고, 빨갱이 은신처라고도 했다.
어렸을적에 이근처를 지날때는 무서워서 도망치듯 지나쳤다.
일원사 뒤편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날씨가 좋을때는 서해바다가 보인단다.
만성동 들녁. 현재는 혁신도시로 개발중이다.
황방산에 오르면 우리나라의 전형적 지형인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표본을 볼 수있다.
전주의 동쪽은 만덕산을 비롯해 고지대인 진안이 있고, 서쪽은 김제평야가 펼쳐져 황방산이 전주지형 동고서저의 서쪽경계이다.
일원사 입구.
황방산 정상은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있고 그중앙에 만덕사라는 절이 있었단다.
산성은 터만 남아있고 만덕사는 일원사로 바꿔어 있다.
내가 30대까지 만덕사의 이름이 있었는데 어느샌가 주지가 바뀌고 일원사로 바뀌었다.
천년고찰이 납골당으로 변해 버렸다.
일원사에는 엄청나게 많은 석탑과 불상이 있는데 일설에는 12000개 정도로 국내최다라고 하는데 시간관계상 세어보지는 못했다.
별별 오만군상들이 진열되있어 불상과 석탑 구경만 하루가 간다.
절 텃밭의 시레기 건조.
정상 한쪽 구석에 있는 바위.
어느선비가 봄날에 황방고성을 다녀갔다고 흔적을 남긴 것 같다.
내가 아는 국민일보 기자의 대학선배 추모비.정상에 있다.
어떤 고인의 무덤울타리. 나무들 가운데가 무덤이다.
묘자리가 정상의 길옆에 있어 등산객들에게 많이 시달리고 있다.
서고사 극락보전.
서고사는 동고사,남고사,북고사와 함께 전주의 4대비보사찰중의 하나란다
후백제 견훤이 완주에 도읍을 정하고 왕 즉위시(908년)에 명덕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단다.
조선초기와 후기, 그리고 1997년에 중창하여 천년고찰의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주시내에서 먼거리에 있는관계로 다른비보사찰보다 덜 알려졌고 방문객도 적다.
서고사 가는길.
황방산 북쪽에 있어 눈길이 미끄럽다.
힘좋은 도토리나무.
도토리나무가 화강암의 틈새에서 자라다가 바위를 두쪽으로 가르고 하늘로 치솟고 있다.
몇년전에 처음보고 무척 신기하다 싶어는데 요즘은 황방산의 명물이 되었다
얼핏보면 어느 힘좋은 사내의 거시기처럼 보인다.
황방산의 등산로에는 기암괴석과 고인돌이 더러 있다.
동거일까? 투쟁일까?
나무가 자신의 몸이 패였어도 수십년을 이렇게 지내온 것 같다.
용터와 틀물방죽.
여기에서 이무기가 용이되어 승천했다 해서 용터라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용터의 좌측에 무당이 사는 초막이 있어 항상 굿소리가 들리곤 했다.
지금은 그 초막이 없어지고 체육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샘물(틀물방죽)에 고기를 풀어 놓으면 덕진연못으로 나올 정도로 깊이가 있단다.
깊고 용하다는 이물도 어느새 오염이 돼서 식수로 부적합하다고 판정이 나있다.
어느 독실한 환자의 신앙심.
얼마나 독실했으면 독에다 표현했을까?
정상에서 공동묘지로 내려가는길.
몇년전의 산불로 잡풀들만 무성하다. 산불조심!
생과 사의 갈림길.
왼쪽길은 서곡의 아파트단지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묘지가 밀집하고 있는 공동묘지이다.
터를 보는 사람들은 집터를 양택지, 묘자리를 음택지라고 말한다.
황방산은 서곡의 밀집형 양택지와 효자공동묘지의 밀집형 음택지가 공존한다.
어찌보면 삶과 죽음이 단절이 아니고 연속하거나 곁에 있는 것 같다.
생과 사의 경계선.
인생은 항상 생과 사가 공존하는 외줄타기 인듯하다.
서곡의 아파트 단지.
서곡은 황방산을 등지고 삼천천을 바라보는 배산임수형 양택지란다.
정감록이라는 고서에는 무병장수의 명당지라고 적혀 있단다.
1994부터 개발해서 현재는 많은인구 모여서 시내와는 또다른 주거와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효자공동묘지. 지금은 공원묘지라 부른다.
공동묘지란 그누구간가 묘자리가 좋아보여서 매장을 하고,그 후에 또다른 사람도 그주변의 묘자리가 좋아보여 매장을 한다.
그리고 후세사람들은 남들이 그곳이 좋다고 하니까 매장을 하고, 또 후세사람들은 거기가 공동묘지이니까 매장을 한다.
최초에 많은 사람들이 음택지-묘자리로 좋다고 하는 자리가 공동묘지가 되는 것 같다.
일반인이 봐도 먼발치로 모악산을 향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조량이 풍부해서 좋은자리 인듯하다.
공동묘지 맞은편 전주대도서관에서 해질무렵에 황방산을 바라보면 하늘과 산이 맞닿는 공제선의 형태가
한여인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서남쪽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여인은 항상 자고있는 영원히 잠을 자는 형태(죽음)를 한다.
무연고 묘.
가족이 없거나 수년간 가족이 돌보지 않은 묘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부모께 잘하고 자식들 교육 잘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에 TV 전설의 고향에서 나온 바위이다.
여인이 한을 품고 암자를 짓고 살았었다는 스토리인데 오랜애기라 가물가물하다.
공동묘지 관리사무실 앞에 있는 수돗가.
오래전에 공동묘지 한복판에 약수터가 있었는데 약초와 시체의 썩은 물이 혼합되어 만병통치의 물로 소문났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물을 떠가려고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이 보기흉해서 약수터를 매몰했었다.
일부사람들은 그 물이 관리사무실 앞의 수도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화장터.
전북에 최초이자,현재도 몇 안돼는 화장터이다.
최근에는 화장률이 높아져 당일에 예약을 해서는 화장이 어려워 졌다.
공원묘지 진입로.
가로수가 벚꽃이여서 봄날에는 주변의 복숭아꽃과 조화를 이뤄 환상적이다.
척동방죽.
일명 배앗골 방죽으로 길이 뚫리면서 예전보다 작아졌다.
이방죽은 주로 척동 애들이 즐겨 놀았고,초등학교 시절에는 방죽상류에서는 가재를 잡고 방죽 배수구에서 참게나 농게를 잡았었다.
황방산은 해발216미터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인 판단으로 산을 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등의 우리민족의 영원한 아픔인 한국전쟁의 상처가 있다.
서고사, 만덕사(일원사) 등의 천년고찰의 역사와 고인돌 등의 선사유적이 있다.
주거지와 묘자리의 공존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황방산은 절대로 그냥 산은 아니다.
첫댓글 한달에 몇번씩 오르내렸어도 황방산의역사는오늘 첨 알았습니다.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역사를느끼면서 가슴으로 산행을해야되겠습니다. 감로님 감사합니다
대단합니다.
고맙습니다.
가끔 가기는해도 아무 생각없이 다니는데
바위하나 풀한포기도 다 이유가 있고 역사가 있었네요
정말 새롭습니다.
~어후~감로 거사님 어릴적 놀이터 대단하다
왠지 있어 보여요 저 넓은 놀이터 가 감로거사님거였어?
급친해지고 시퍼 동물원,수영장.촬영지.등등 `우와`
반갑습니다~~~~~^^충성
독실한 환자에서 빵 터짐 감사합니다.
구석구석에 저런 것들이 있었다니...
다음에 갈때에 자세히 봐야겠어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아니 근데 감로거사님은 전공이 뭐여유? 사진작가? 역사학자? 수필가?
다음 기행이 기대되네요. 대단하십니다.
어중이 떼중이죠!
척동.만절리,묵거실....,감로님은 어느 동네인지요? 저는 천잠산 넘어 상림입니다. 저도 초등학교때 소풍가던 곳이 황방산이지요..
만절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