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맞다
- 정영선
냉동실 문을 여는데
순간, 아찔하다
묵직하고 단단한 것이 발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발을 움켜쥐고 절뚝거리다가
가만히 들여다본 물체
비닐봉지에 담긴 주먹만 한 고깃덩이다
물렁물렁하던 살점도 화를 내니 무섭구나
냉동실에 쑤셔 넣고 까마득히 잊고 있던
한심한 주인에게 호된 매질을 하는구나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냉동실을 정리한다
모처럼 환한 세상으로 나온
나물 뭉치 생선 뭉치 떡 뭉치가
산더미처럼 쌓여 나를 나무라고 있다
―계간『불교문예』(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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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세계에서 사재기 열풍이 분다고 할 때도
우리는 평상시처럼 조용했습니다
그 원인을 분석하니, 발달한 배달체계, 원할한 공급망이 꼽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집집마다 냉장고가 두어 대 정도 다 있고,
그 속이 꽉꽉 채워져 있어서 전쟁이 일어나도 두어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서
사재기할 이유가 없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우스개같은 분석도 있었습니다
사실 냉장고 냉동실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내도 잘 모릅니다
아내가 멀리 갔을 때, 한번 정리를 해볼까 마음을 먹었다가도
검정비닐봉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 마음을 접은 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식구들에게 '바라지 말자'고 말합니다
받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살만큼은 되지 않으냐고 웃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