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0년간 누명을 쓰고 있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전 국민이 배워온 역사 교과서가 통째로 조작된 기록이라뇨
천년 넘게 방탕한 군주로 몰렸던 한 왕의 누명을 한국 학자들이 비석 하나로 낱낱이 뒤집어 버리자
전 세계 역사학계 모두가 얼어붙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흔히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을 떠올리며 삼천궁녀와 술판을 버리다 나라를 기울게 한 무능한 왕으로 기억하는데요.
수많은 여인이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낙화암의 이야기는 그를 비웃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물리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백제 사비성의 인구는 고작 5만 명 내외였는데요.
조선 최고의 궁궐인 경복궁조차 궁녀가 600명을 넘지 않았는데 3000명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왕을 깎아 내리기 위해 3000명이라는 과장된 수식어를 붙여 1400년 가까이 역사를 박제시킨 것이었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2007년 발견된 비석 하나가 잠자고 있던 진실을 깨웠습니다.
비석의 주인이 백제 출신의 당나라 장수 예식진으로 밝혀진 것인데요.
당시 중국 기록에는 대장 예식진이 의자왕를 데리고 와서 항복했다는 기묘한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단어를 정밀 분석한 결과 충격적인 의미가 드러났습니다.
데리고 왔다는 표현이 사실 강제로 붙잡아 끌고 갔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의자왕은 사비성이 함락되기 전 난공 블락의 요새 웅진성으로 피신해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웅진성은 쉽게 뚫리지 않는 요새였고 의자왕은 성문을 걸어 잠근 채 닷새가 되도록 반격의 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연구진이 밝혀낸 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왕을 지켜야 했던 최측근 장수 예식진이 당나라의 고위직을 약속받고 왕을 기습해 넘겨 버린 것이었습니다.
의자왕은 묶여 끌려가는 치욕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포로가 되어 끌려가야만 했습니다.
무능아 방탕아라는 감언 뒤에 가려진 불굴의 항전가 의자왕의 진짜 모습이 1300년 만에 부활한 것이죠.
이 소름 돋는 반전에 전 세계 학계가 경악을 금지 못했습니다.
승자의 기록에 짓밟혔던 한 왕의 진실이 비석 하나로 증명됐으니
이제 교과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요.
그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했던 백제의 마지막 왕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침내 누명을 벗겨낸 한국 고고학 팀의 끈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