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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역사속의 지역차별?
알파카 추천 0 조회 814 14.06.01 22:14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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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02 00:14

    첫댓글 쩝 훈요10조의 제가 알기론 태조 왕건이 남겼단 것일텐데
    이건 진짜로 태조가 썼는지 불분명한걸로 알고(역사 쌤이 말하길
    갑자기 뜬금없이 어느 관리인가가 툭 태조께서 남긴 거라며 내밀
    었다든가..)

    택리지의 경우 저자가 호남쪽에 악연이 있어 의도적으로 나쁘게
    썼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정적이 호남쪽이었던가..

  • 14.06.02 00:47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전체가 차별받는 지역이었죠.

  • 14.06.02 01:02

    함경도사람들은 "조사의의 난"으로 조선 망할때까지 유무형의 차별을 받게 되죠 과거시험도 고위급은 처다도 못봄

    이때가 태종시절이죠

  • 14.06.02 02:05

    훈요10조가 좀 그런게, 왕건의 최대 지지 계파중 하나가 호남 세력들이었죠.

    왕건의 최측근이자, 4명뿐인 고려 건국 1등공신이며,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포위당해 위험에 빠지자 왕건의 갑옷을 빼앗아 입고, 왕건은 일반 병사 옷을 입게해서 도망가게 한 뒤 왕건인척 하며 견휜군에 대적하다 전사해서 후백제군이 (왕건인줄 알고) 목을 잘라간 신숭겸이 호남출신이죠. -_-

    여기에 고려 2대 왕인 혜종의 어머니가 호남 나주 출신..-_-;;

    여기에 훈요10조에 불교 행사인 팔등회와 연등회를 중시하라고 했는데, 50년도 지나기 전에 왕건의 손자인 성종이 팔등회와 연등회를 폐지하죠.

  • 14.06.03 00:58

    조선때 지역차별은 기호파(경기도+삼남 출신 양반)에 대응한 서북파(평양 중심의 평안도+함경도) 차별이 유명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지역감정은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일제 치하의 민족지도자(&친일파)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끼리, 친일파끼리 갈등 충돌하는 경우를 보면 기호파vs서북파 갈등인 경우가 많고,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끼리 친목친목하는 경우를 보면 서로가 기호파 또는 서북파인 경우가 많습니다.-_-;;)

  • 14.06.02 11:18

    기호파와 서북파가 지금은 남한과 북한이네요. ㄷㄷ

  • 14.06.02 16:41

    @신들린차지 기호파를 남한으로 보는 것은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실제 조선의 기호학파는 한성일대가 중심지이고.. 해서학파 고려초기 -중기 문벌귀족들로서 개성 해주를 근거로 해 발전한 학파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한성을 수도를 둠으로서 고려의 훈신인 개경파인 해서학파를 차별하는데 그게 최초의 지역차별의 시발점이 되고.. 조선내내 학문적 대립이나 조성의 출사를 막는등 강경책을 쓴 쪽은 오히려 기호학파입니다. 함경도의 차별은 조사의 난, 이징옥의 난으로 차별한 것이지만.. 아마도 제일 차별은 받은 곳은 경기부북와 황해도 일 것입니다.

  • 14.06.02 16:43

    @양시칠리아 그리고 조선후기로 내려 가면 같은 기호학파라고 해도 영남일대의 영남학파등은 영남기호학파의 경계의 대상이 되고 오히려 남인등 영남학파는 출사가 막히기도 하죠..

  • 14.06.03 01:04

    @양시칠리아 기득권 기호파가 서북파를 차별.. 이라생각하며 작성했는데, 서북파가 기호파를 차별한듯 썼네요-_-;

    근데, 조선말, 일제 강점기때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모습을 보면, (영호남 갈등과 달리) 기호파가 서북파를 차별하듯, 서북파도 기호파를 차별했으니 완전 틀린말은 아니네요.^^;;;

  • 14.06.03 01:15

    @신들린차지 시칠리아 말씀대로 조선 건국 뒤 한양 중심의 조선 사대부가 평양 중심의 고려 귀족 세력을 차별, 억압하는게 시초였는데,

    억압을 하면 약해져서 없어져야 하는데, 평양이 제 2 수도로 중시받는데다가 중국(명, 청)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해서 서북파의 세력이 유지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벼슬은 못한다..)

    여기에 여러 이유로 북방 지역이 차별지역으로 추가되어 차별받음으로써 차별받는 서북파는 단순 평양 중심의 평안도 출신뿐만 아니라 함경 출신도 대충.. 물론 서북파를 관서파와 관북파로 나누기도 하지만, 이 사이에는 그다지 큰 갈등은 없었죠.

  • 14.06.02 09:22

    훈요 10조의 경우 그 조항이 전라도고 아니라 왕건 즉위 직후 왕건을 배반한 충남지역을 말하는거다라는 설도 있습니다.
    훈요 10조에 차현이남(車峴以南)과 공주강외(公州江外)라고 적혀있어서요.

  • 14.06.02 10:35

    훈요십조에 해당되는 지역이 후백제지역 아닌가요 후백제의 수도였던 전주쪽 전북일대부테 충남까지

  • 14.06.02 21:42

    영조 이후의 [영남차별]을 들고오면 됩니다. '무신란(이인좌의 난)' 이후로 영남은 정계에서 아주 소외되었거덩요...^^; 오죽하면 무신란을 평정하고 경상감영이 있었던 대구에 떡~하니 <평영남비(영남역괴들을 평정한 비)>를 세웠것슈~ㅋ 60년간 일기를 쓴 것으로 요즘 재조명된 노상추 같은 이들도 문관 엘리트 코스가 안되니 무관으로 전직한 사례... 영남 남인들이 정계에서 아주 죽을 쒔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고, 대신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화사족이나 서울과 가까운 '기호사족'들이 다해먹는 것이 18세기 이후의 상황임...ㄳ

  • 14.11.06 01:17

    즌라도가 차별당할 이유는 많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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