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누가 애 낳으래?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20 00:28
김창우 기자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비행기·기차서 “시끄럽다”며 폭언·폭행
반려견만도 못한 대접에 출산 늘겠나
지난 14일 김포발 제주행 항공기에서 40대 남성이 갓난아이의 부모에게 “누가 애 낳으래?”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아이 아빠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는 다른 승객의 증언도 나왔다. 이 남성은 제주공항에 도착한 뒤 경찰에 인계돼 조사를 받았다. 그는 “아이가 울어서 시끄럽다고 했더니 아이 아빠가 ‘내려서 좀 보자’고 협박성 발언을 한 게 발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제주서부경찰서는 16일 이 남성을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같은 날 KTX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열차에서 30대 남성이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 2명과 엄마에게 “시끄럽다”고 고함을 쳤다. 역무원이 엄마와 아이를 다른 칸으로 옮겼지만 이 남성은 “그만하라”고 말리는 여성 승객에게 좌석 위로 뛰어 올라가 발길질까지 했다. 그는 천안아산역에서 승객의 신고로 출동한 철도사법경찰에 넘겨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020년 기준 1.59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15~49세 가임여성 1명이 평생 아이를 채 1명도 낳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돼야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4명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은 일단 결혼 자체를 잘 하지 않고, 결혼 후에도 아이를 덜 갖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만 33세인 1988년생 중 기혼자는 36.9%에 그쳤다. 지난해 결혼 건수는 19만2509건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3년(41만건)의 절반 이하다. 첫 아이를 출산한 엄마의 평균 연령은 32.6세로 20년 전과 비교하면 4.6년 늦어졌다. 첫 아이를 늦게 가질수록 둘째를 낳기 어려워진다.
정부는 육아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을 벤치마크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올 들어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쓸 경우 첫 3개월 동안 통상임금의 100%(상한 200만~300만원)까지 지급하는 ‘3+3 부모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내년부터 월 35만~100만원의 부모급여도 2년간 지급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4촌 이내 친인척에게 아이를 맡기거나 민간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에 월 30만원의 돌봄수당을 지원하는 방안을 18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도 지원으로 아이를 더 낳을까. 현실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이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16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1단독(부장판사 백주연)은 전남 여수의 자택 화장실에 낳은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여성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미혼인 상태로 원치 않는 아이를 낳게 된 이 여성은 부모와 남자친구 등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것만 247건이라고 집계했다. 피해 아동의 평균 연령은 8.4세였다. 최근 임신과 출산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한 10대 부모들을 다룬 TV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0대 미혼모 1106명 가운데 직접 양육을 선택한 경우는 268명에 그쳤다. 464명은 보육원으로 가고, 237명은 유기됐다.
낳기도 어렵지만 기르기는 더 어렵다. 최근 아이와 함께 제주도를 찾았던 30대 여성은 “바닷가 카페에서 ‘노키즈존’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서는데 반려동물은 막지 않더라”며 “아이가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구나 싶어 울컥했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민권 운동가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한 사회의 영혼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기르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