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 얼굴을 모르고 자랐다. 모르고 자랐다가 아니라 아버지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아버지 없이 세상에 나온 사람도 있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태어나고 며칠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에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투병을 했는데 나와 아버지는 삶과 죽음을 서로 교환한 셈이다.
살면서 한 번도 아버지란 말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가슴 한 켠에는 그 소망을 담고 살았고 아버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언젠가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는 아버지 없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친구 아버지는 경제력도 없으면서 술만 먹었다 하면 마누라와 자식들을 때리고 왕처럼 군림했는데 그런 상처가 친구에게는 성인이 된 후까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원망도 없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를 나무라지는 않았으나 선뜻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며칠 전 일요일 우리집에서 가까운 홍대 부근에서 본 모습이다. 아내 심부름을 다녀 오던 중이었는데 앞에 가는 두 남자가 마치 연인처럼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다.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남자끼리 손을 잡고 걷기가 쉽지 않기에 유심히 본 풍경이다.
신체 중에서 가장 소통하기 좋은 것 중 손 만한 것이 있을까.
오랜만에 만나 악수를 나누는 것, 누군가를 위로할 때 등을 토닥이는 것도 손이고 팔짱을 끼거나 기쁘게 포옹을 할 때도 손으로 꼭 껴안는다. 이렇듯 가장 따뜻하게 접촉할 수 있는 부위가 손이다.
누군가는 손보다 가슴이 더 따뜻한 곳이라 할지도 모르겠으나 가슴은 특수한 관계가 아닌 이상 서로 맞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편 가슴보다 더 거짓말을 못 하는 게 손이기도 하다.
인류학자들도 사람이 유인원에서 고등 동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도 손을 사용하고부터라고 했다.
도둑질이나 성추행, 악성 댓글도 손으로 하지만 이건 나쁜 쪽으로 쓰는 못된 손이고 대부분의 손은 좋은 용도로 사용된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가는 모양이다. 아마도 따로 사는 손자가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만난 듯했다.
별일 없느냐,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등등, 할아버지는 묻고 손자의 대답은 아주 짧았다.
할아버지가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는지 이 식당은 뭐가 맛있고 저 집은 뭐가 맛있다는 둥 연신 손자에게 설명을 했다.
줄 지어 식당이 늘어선 일요일의 한적한 골목에서 할아버지는 열심히 메뉴 설명을 하는데도 손자는 별로 내키지가 않은 모양이다.
"여기 갈까?"
"싫어요."
"저기 삼겹살 집 있네. 고기 먹을까?"
"아휴, 촌스럽게 무슨 삼겹살이에요."
"이거 맛있어 보이지 않냐?"
"에이, 맛 없어요."
할아버지는 손자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이기 위해 안달이 났다. 나는 결론이 궁금해져서 조금 더 두 사람을 따라 걸었고 잠시 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생겼다.
"아버지, 이 집 가요."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가 아니라 부자 사이였던 것이다.
이들이 부자 관계임을 알자 뒷모습이 정말 너무 닮았다.
아버지는 70을 넘은 것처럼 보였고 아들은 30대 초반이라 마흔 다 되어 생긴 늦둥이임이 분명하다. 이 아버지에게 막내 아들은 얼마나 애틋할 것인가.
어쩌면 저리 뒷머리며 어깨 체형도 꼭 닮았을까. 이 늦둥이는 과도한 교육열로 부모 등골을 빼먹은 첫 번째 <뒷모습 증후군> 세대일 것이다.
뒷모습 증후군이란 사전적 해석은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자녀가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아이들 얼굴보다 뒷모습을 보는 것이 더 익숙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고 오직 아들이 행복할 좋은 세상을 빌었을 것이다.
위로 딸 하나와 아들 하나쯤 다른 자식들이 있을 테지만 퇴직하기 전에 무사히 자라 준 막내가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요즘 젊은이들 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캥거루족들이 많다는데 이 아들이 캥거루족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기억하는 착한 아들이 아닐까.
식당에 들어 간 아버지는 아들이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부모란 자기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자식 입에 밥 들어 갈 때가 더 행복하다.
사람이 손을 잡는 것처럼 따뜻한 소통이 있을까. 때론 열 마디 말보다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무언의 사랑이 훨씬 진하고 아름답다.
모쪼록 이 부자가 손 잡고 걷는 날이 자주 있었으면 한다. 손을 자주 잡는 부자일수록 마음도 부자일 확률이 높다.
손 잡고 걷기에도 좋은 이 가을에,,
첫댓글 제가 보기엔 할아버지와 손주같은데
아들였군요 ᆢ
민하님 안녕하세요.
저도 처음엔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었지요. 과연 손자가 어떻게 하는가 보자 했었는데 금방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고운 밤 되세요.ㅎ
결혼 적령기가 없어진 요즘 시대에는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들이 많아질 거예요..ㅎ
보통 마흔살 넘어 결혼하여 출산을 한다면
자식이 서른 즈음엔 아버지가 칠십대..ㅎ
손 잡고 가는 부자의 모습이 보기 좋으네요.^^
ㅎ 샤론님 말씀처럼 제 선배 중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답니다. 마흔이 다 된 아들이 결혼할 생각을 안 하니 죽기 전에 손자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데요.
결혼 세태가 만혼으로 바뀌고는 있지만 그만큼 부모가 오래 사니 그리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위로를 했답니다.
저도 손 잡고 가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잠시지만 마치 제 가족처럼 느껴졌네요.
평화로운 주말 되시길요.ㅎ
아버님이 60세 이후에도 살아 계셨다면...
지금 유현덕님 모습 그대로 일 듯 합니다.
리디아님, 저는 외탁을 해서 아버지 모습이 거의 없다고 하네요.
큰형은 아버지와 완전 붕어빵으로 엄니 말에 의하면 마당에 들어서는 큰형을 볼 때면 꼭 돌아 가신 아버지가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답니다.
저는 완전 엄니와 붕어빵,,ㅎ
@유현덕 아~외탁.
그러면 그럴 수도 있갰네요
형의 모습에서 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것 같습니다
마음 아프지만.....
참
따뜻한
경수필 한편을 읽은듯
금요일 하루 내내의 피로가 풀립니다
세상의 중심인 가정 그속 가족의 모습이 당연 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며
조만간 아들녀석들 만나면 억지로라도 아빠와 손을 잡고 걸어가 보라고 등 떠밀어 보렵니다
감사합니다~^^
저를 쑥스럽게 만드는 하경님,,^^
부족한 제 글로 하경님의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어진다니 다행입니다. 이 사진을 보자 그날 잠시 봤던 부자 간의 대화가 떠올라 순식간에 썼답니다.
말씀처럼 세상의 중심이 가족임이 맞습니다. 지구상의 80억 인구뿐 아니라 각 나라도 하나하나의 가족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모쪼록 아드님이 혼쾌히 엄마의 뜻을 알아 듣고 부자 간에 손 잡고 걷기를 바래 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ㅎ
마음 따뜻해지는 글과 사진입니다 .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추소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짧은 댓글로나마 이렇게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네요. 추소리님도 분명 저 사진 속 아버지처럼 손이 따뜻한 분일 것으로 봅니다.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아~
저도 주말에는
그이 손잡고 다녀볼게요
은퇴후 집안일 하느라
주부습진올까 걱정만 하는데
그 손 잡고 단풍놀이가렵니다
모녀간은 손도 잡고
팔짱도끼고 다니는데
부자지간은 참 어려운 숙제같은걸까요?
ㅎ 정아님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부부 간에 손 잡는 모습도 부자지간 못지 않게 보기 좋은 풍경입니다. 남한테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는 이상 저는 아내와 항상 손을 잡고 걷는답니다.
모녀간뿐 아니라 아무래도 여성들이 팔짱이나 손을 잡고 걷는 편인데 저는 이 모습도 참 좋더라구요.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마음 속에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남녀, 여여, 남남을 떠나서 친근함의 표시로 서로 손을 잡는 것만큼 따뜻한 행동이 어디 있을까요.ㅎ
삼강오륜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부자유친이라고
옛 부터 효자는 부모가 만들어 주지요
아비가 아들에게 잘하면 자식 또한 아버지에게 잘하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습니다
무엇을 해도 아들이 마음에 차지 않으니 말을 함부로하니 부자지간에 가슴에 상처가 남지요
장희한 선생님 댓글이 아주 귀담아 들어야 할 귀한 말씀입니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은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세상 사는 것이 어렵듯이 가족 관계 또한 평화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인생에서 모든 평화의 원천이 가족임은 분명하데요.
저는 자식이 마음에 안 들 때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기도 하네요. 평온한 밤 되세요.ㅎ
고들빼기님과 그 손자가 생각되어 지는 풍경입니다
저는 최소한 한달에 한번이상 이버님과 단둘이 대구까지 병원 진료가는데 아버지는 그날이 유일하게 저와 드라이브이고 데이트라 생각하실만큼 좋아하셔요
이글 읽으면서 문득 저희 아버님을 유현덕님께 하루 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나는군요
이젤님 댓글 읽고 생각하니 예전에 고들빼기님의 평화로운 가족 모습을 본 것도 같습니다. 그런 화목함이 저절로 이뤄진 것은 아닐 테지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자식들의 일탈로 속을 썩히는 걸 보면 자식이 부모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젤님의 아버지 사랑은 저도 알고 있지요. 아버님은 이젤님과의 동행을 데이트라 여기며 분명 당신은 딸 하나 잘 뒀다며 흐뭇해 하실 겁니다.
효도가 따로 있나요. 부모님 얼굴에 웃음꽃 피게 하는 것이 최고 효도입니다. 이젤님 아버님을 제게 빌려 주신다면 아버님 손을 꼭 잡아 드릴 겁니다.ㅎ
이젤님의 아버지 사랑을 응원합니다.
어쩜 😭 부성애가 등장하는 글 귀는 드물어서 이렇게 가슴이 찡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젤님은 복 받았지요 양 손에 언제나 원하면 모정 부성 다 잡으실 수 있으니까요
현덕님께서 지나치는 사물 일상의 한 컷에 다정한 눈길따라 멋진 감동의 언어로 엮어 내셨군요 귀한 언어들 사장시키지 마시고 꼭 책으로 만들어 곁에 두세요
자식에게 남겨줄 유산입니다
저는 제 책을 안 읽지만 자식들은 애지중지 한답니다
열마디 잔소리보다 부모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더군요 내면을 말이죠 아버지 아들의 모습
형이 남동생들에게 보이는 애정과 책임감 모습들은 항상 제 가슴을 감동시킵니다 어쩜! 저리 애틋할까 핏줄이란 저런 것이구나 뭉클하지요 인간이고 혈연이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핵가족 가족의 해체 시대로 흫러가는 추세다 보니 눈물나게
귀한 광경이 되어집니다 고맙습니다
ㅎ 운선님, 제가 아버지 없이 자란 탓에 유난히 부자관계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예전에 엄니와 누이가 무릎 맞대고 앉아 온갖 지난 일들을 꺼내 오손도손 얘기하는 걸 봤으나 모녀관계라 저런가 보다 했었지요.
며칠 전 제가 이 모습을 보고 마치 스토킹하듯이 바짝 따라가며 둘 사이에 살짝 끼어든 것도 부자간의 다정함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없는 아버지란 감정이 저런 거겠구나 했네요. 부러우면서 보기가 넘 좋아서 흐뭇하면서 그 잠시 동안에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단풍든 가을 풍경도 좋지만 사람 풍경을 가장 좋아합니다. 글로 만났지만 운선님이 살아오면서 보여주신 풍경도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지요.
가는 세월이 아쉽지만 오래 건강하셔서 자식들 무난히 익어 가는 모습 보면서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파란 하늘을 보니 산에 가기 참 좋은 날이네요.
펑화로운 주말 되시길요.ㅎ
아들이 없으니 사진속 그림은
꿈도 못 꾸지만
아름다운 모습 입니다
골드훅님 잘 지내시지요?
저도 아들이 없어서 딸을 아들이라 여기며 산답니다. 소통하기에는 딸이 더 낫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둘러 보면 사방천지가 고마워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계절입니다. 선배님도 아름다운 날들이기를 바랍니다.
손잡고 걸어가는 부자의 모습이 넘 훈훈합니다
울 아파트 초등생 딸아이를 둔 젊은엄마가 생각나네요
딸 엄마 둘다 동글한 얼굴에 통통한 체격에 걸음걸이하며 똑닮아서
가끔 볼때마다 빙긋이 웃음이 나더군요
훈훈한 글 잘읽었습니다
둥근해님 반갑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둥근해가 예쁘게 떴습니다. 요즘 햇살이 너무 좋아서 막바지 감과 사과도 익히고, 이제 피는 가을꽃에게도 사랑을 듬뿍 주고 있네요.
저도 아이를 좋아해서 초등생들 만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아이를 낳지 않은 시대에 훗날 이 나라를 지탱할 귀한 자식들입니다.
둥근해님의 멋진 가을을 기원합니다.ㅎ
유현덕님, 글속에 한동안 감상에 푹빠져
글산책 제대로 잘 했습니다.
참, 읽을만한 글 게시해 주신 노고에
독자로서 힘차게 짝짝짝~!!!
3번째 추천(推薦)드립니다., ^&^
ㅎ 삼족오님 반갑네요.
카페를 자주 안 들어오다 보니 이제서야 댓글을 읽었습니다. 멀리 계신 분이 부족한 글에 관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결석도 자주 하고 이처럼 고운 댓글도 자주 못 달고 삼족오님의 카페 사랑을 따라 갈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삼족오님의 아내 사랑 또한 사진 속 아버지처럼 따뜻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내 평안한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서울은 일요일의 아침이 참 곱네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