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계 3대 동계전투 흥남철수작전 3인의 영웅
(1)해병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1893∼1977)
1.성장배경
올리버 스미스는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서 변호사를 하던 아버지와 독일계 이민자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빨리 사망해서 어머니는 캘리포니아의 산타 크루즈로 이사했고, 스미스는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천성이 근면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방과 후에 일을 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버클리)에 입학허가를 얻어 단돈 10달러를 들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대학에서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부잣집 정원을 가꾸게 되어 나중에 정원 가꾸기를 취미로 갖게 됐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부전공으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타이핑과 속기를 배웠다. 타이핑과 속기에 능한 그는 나중에 전투를 겪으면서도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버클리에 다닐 때 나중에 아내가 된 에스터를 만나게 됐고, 졸업 후에는 석유회사에서 일할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중 해병대가 버클리 졸업생을 상대로 장교 후보생을 모집하자 그는 서슴지 않고 지원했다. 왜냐하면 임관 된 후에 연봉 1,700달러를 받을 수 있을뿐더러, 버클리에서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같이 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해병대 장교 근무
스미스는 훈련을 받고 임관되어 괌에 있는 미군기지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괌에서 근무 중에 태평양을 건너 온 에스터와 만나 결혼했다.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스미스는 괌에 있었는데, 전쟁이 끝날 때는 대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대위 계급장을 17년 동안 달게 될 줄은 몰랐다. 전쟁 후 해병대도 인력을 줄이는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그러나 해병대를 좋아한 스미스는 진급에 관계없이 해병대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
그는 1919∼21년간의 센프란시스코 남쪽의 메이 아일랜드 해병훈련소에서 근무했고, 1921년에는 전함 텍사스호에 파견된 해병대를 이끌었고, 1924년에는 워싱턴의 해병대 본부로 발령을 받았다. 워싱턴에 근무하는 동안 그와 에스터는 처음으로 중고차를 사서 버지니아의 남북전쟁 전적지를 두루 방문했다. 그는 또한 1928∼31년 기간 동안은 아이티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를 이끌었고, 아내와 두 딸은 처음으로 외국 생활을 경험했다.
1931년에는 스미스가 조지아 주 포트 베닝에 있는 육군 보병학교에 입학해서 고급 전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곳에서 스미스는 교무부장이던 조지마샬과 교관이던 오마 브래들리, 조지프 스틸웰 등 나중에 미 육군을 이끌던 인물들을 만났고, 가장 친한 후배가 된 루이 풀러도 만나게 되었다.
이듬해 스미스는 버지니아 주 콴티코 해병기지에 교관으로 발령을 받아서 육군 보병학교에서 배웠던 전술을 해병대의 특성에 맞추어 가르쳤다.
이어 프랑스 전쟁대학원에 유학을 가게 되어 1934년 초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향했다. 거기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학업에 열중해서 미 해병장교로선 최초로 프랑스 전쟁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그런데 전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는 프랑스 군의 전술은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또한 프랑스 장교들은 합의하고 협의하는데 노력을 너무 많이 기울여 결정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2년간의 프랑스 체류 후에 귀국한 그는 프랑스 군의 특성과 단점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해병대 사령관에게 제출했다.
미국으로 돌아 온 스미스는 소령으로 진급했는데, 그 때에 비로소 시대착오적인 진급제도가 바뀌어졌기 때문이었다.
진급 후 그는 판티코 해병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당시 해병대 사령관은 존 르쥰 대장이었다.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르쥰은 해병대의 새로운 과제가 상륙작전임을 알고 있었고 태평양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일본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콴티코 해병학교에서 스미스를 비롯한 교관들도 일본과 태평양에서 전쟁을 할 것이라는 가정을 세워 놓고 전략을 개발했다.
1938년에 스미스는 중령으로 진급하여 샌디에고 함대 해병단에 발령을 받았다. 샌디에고 기지에는 훈련을 할 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해병대는 샌디에고 근처의 산타 마그리타 랜치를 새로운 기지로 구입하고자 했는데, 2차대전이 발발하자 이 넓은 땅을 사들여 기지로 만들었다. 이 기지가 바로 캠프 펜들턴이다.
1941년 스미스는 해병 6여단 소속으로 전함 풀러호에 승선해서 아이슬랜드로 향했다. 스미스가 떠나자 샌디에고에 혼자 남겨진 에스터는 두 딸이 공부하고 있는 버클리로 이사하여 전쟁기간 동안 딸들과 함께 살았다.
아이슬랜드에 머무는 동안 스미스는 대령으로 진급했고, 1942년 육군 병력이 아이슬랜드에 도착하자 해병대는 본국으로 돌아왔다. 스미스는 워싱턴의 해병대 본부의 기획정책처로 발령을 받았다. 이즈음 큰 딸 도로시는 버클리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와 결혼했다. 작은 딸 버지니아는 웨스트포인트 사관생도와 교제하다가 결혼했다. 그런데 육군 항공장교가 된 남편 찰스 베네딕트는 불행하게도 1944년 12월 남부 중국 상공에서 B-29를 몰고 폭격임무를 수행하던 중 실종 사망했다.
첫댓글 성장배경 및 군경력을 보니
우와 서두르고 조급하지 않은 성실한
대기만성형 장군이군요
지덕용인을 두루두루 갖춘 솔선수범
모범적인 멋진 해병장군 입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인정과 의리의 사나이
올리버 스미스장군의
6,25 한국전쟁
특히 야간 인해전술 중공군과 영웅적
전투 활약상에 기대만발 흥미진진 함니다
하하하
속도감있고
세세한 이야기가
흠미를 부릅니다.
스미스 장군의 행로가
궁굼해집니다.
에스터와 결혼도 잘 했고
두딸도 똑순이인데
변호사와 결혼한
큰딸은 좋은데
공군인 둘째사위 사망이 안됐습니다.
이리 가족사까지 겨ㄸ들이니 인간적으로도
재미집니다.
일본의 해군최고시절
진주만 공격
미국과 전쟁도 나올텐데
다음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