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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의 지팡이'와 함께 서울 가르멜 수녀원을 찾은 '빛의 길' 순례단. 사진 왼쪽부터 크리스티나 마르코스 네 푸르토스, 아마이아 알바레스, 안토니오 곤살레스 로페스 신부, 파블로 몬테시노스. © News1 |
"성녀 데레사의 영성을 중심으로 더 많은 만남이 이뤄지고 사람들 안의 많은 내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 성녀를 통해 교회 신앙과 영성을 통해 깊이있게 살아갈 수 있는 일련의 변화 과정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안토니오 곤살레스 로페스 신부)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설립한 성녀 데레사(1515~1582)가 생전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성녀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빛의 길' 순례단과 함께 지난 5일 한국을 찾았다. 성녀 데레사의 축일인 지난 10월15일 성녀가 선종한 곳인 스페인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시작된 이들의 여정은 남미와 북미를 거쳐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5개월간 5대륙 30개국의 가르멜 수도원과 성당을 순례하는 이들의 여정은 성녀의 생일인 내년 3월28일 스페인 아빌라로 돌아가 마친다.'빛의 길' 순례단에는 안토니오 곤살레스 로페스 신부(42)와 취재진인 아마이아 알바레스와 파블로 몬테시노스, 의료진인 크리스티나 마르코스 데 푸르토스가 함께 하고 있다.지난 6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가르멜 수녀원에서 만난 가르멜 수도회 로마 총본부 비서 안토니오 곤살레스 로페스 신부(42)는 이번 순례의 의미에 대해 "창립자의 정신을 새롭게 환기하고 그 분의 영적인 가르침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원천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데레사 성녀 탄생 500주년 기념위원회는 '빛의 순례'를 통해 성녀의 생애와 정신, 영성을 각 나라에 현존시키는 작업을 한다. 내년 8월 5~9일에는 성녀 데레사 500주년에 맞춰 스페인 아빌라에서 유럽교회 각 청년들이 모여 신앙대회를 연다. 이어 8월 10~15일에는 전 세계 가르멜 수도회 신부, 수녀, 재속회원들이 아빌라에 모여 성녀의 영성을 기리고 친교를 나눈다.특히 성녀가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서술한 작품을 5년 전부터 매해 하나씩 출간해 세계 가르멜 수도회 신부·수녀·재속 회원들이 나누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성녀는 '완덕의 길', '영혼의 성' 등 다수의 저서와 편지, 교회의 가르침과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안내서들을 남겼다. 스페인 아빌라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데레사는 20살에 수도원에 들어갔다. 끊임없는 박해에도 철저한 고행과 기도로 부유하고 해이해진 유럽 수도원을 개혁하고 기도와 영성(靈性), 관상(觀想·하느님을 바라봄)으로 참된 수도자가 되고자 했다. 1562년 성녀 데레사는 완화된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면서 기존 가르멜 수도회와 분리된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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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천주교 주교회의) © News1 |
17개의 개혁 수도원에서 시작한 맨발 가르멜 수도회는 현재 세계 100여 개국에 800~900개 가량의 수도원을 두고 있다. 남자 수도자는 4000여명, 수녀원 수도자는 1만여명이다. 특히 가르멜 수녀원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봉쇄(封鎖) 수녀원으로 유명하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기도·절식·침묵을 통해 사랑의 정신에 철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내는 8개의 봉쇄 수녀원과 6곳의 남자 수도회가 있다. 데레사는 1622년 성인품에 올랐으며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여성 최초로 교회 박사로 선포했다."가는 곳마다 마치 가족을 만난 듯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고 놀라운 마음"이라는 안토니오 신부는 "성녀 데레사의 생애와 영성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톨릭 신자들에게 영적인 빛을 전해준다"라며 "성녀의 영성을 통해 많은 빛을 전해주기 위해 순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무엇보다 한국 가르멜 수도회는 재속회원들의 역량이 크다"며 "나라마다 환영예절이 다른데 한국은 너무나 아름답고 섬세했다"고 했다.가르멜 수도회 한국관구(독립적인 교회 조직체·관구장 서봉교 신부)는 로마 총본부가 아시아에서 가장 기대하는 관구다. 준수도자처럼 영성을 공부하고 증거하는 평신도들의 모임인 재속회의 국내 규모는 3500명으로 세계에서 2~3번째에 드는 큰 규모다. 한국은 4년 전에 관구로 승격됐으며 중국 선교도 맡고 있다.특히 가르멜 수도회 한국관구는 내년 3월 명륜동에 한국관구 수도원 본부를 완공하며 새로운 영성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내년 10월15일 성녀 데레사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날'도 대전에서 연다.한편 500년 전 성녀 데레사가 완화된 수도회의 개혁을 부르짖고 나섰다면 오늘날 수도회 개혁에 대한 고민은 수도회가 자기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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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르멜 수녀원을 찾은 '성녀 데레사의 지팡이'와 함께 한 '빛의 길' 순례단 안토니오 신부. © News1 |
안토니오 신부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얘기한 수도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창립자의 정신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거기가 시작이자 마지막이고 완성이다"며 수도회의 개혁 과제로 "창립자의 정신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새롭게 적응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각 나라마다 문화적, 사상적 맥락에서 창립자 정신의 새로운 적응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수도 생활의 규범은 두 가지로 철저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외에 창립자의 정신을 따르는 것이 그 수도회의 카리스마가 되는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각 수도회마다 자신의 카리스마에 따른 사도직보다는 주로 본당 사목, 학교, 병원 사목 등에 몰리면서 수도회가 갖는 고유한 영성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안토니오 신부는 "각 수도회는 쇄신을 위해 무엇보다 오늘날의 맥락에서 창립자의 정신을 보다 깊이 성찰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교회와 사회를 위한 자신만의 고유한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례단은 5일 입국해 가르멜 수도회 서울 관구 수도원에서 환영예절로 한국 순례 일정을 시작했다. 6일 서울 가르멜 재속회관, 서울 가르멜 수녀원에서, 7일 경남 밀양 가르멜 수녀원에서 미사와 환영예절을 가진 후 8일 출국한다. 한국 일정이 끝나면 타이완으로 이동해 여정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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