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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고작 20명에 불과했던 옌청 세종학당이 현지화 전략으로 200명의 수강생을 맞이하기까지의 여정을 전해 드렸다. 첫 번째 관문을 넘긴 학당은 이제 전혀 다른 상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수강생이 대학생에서 한국 기업의 회사원으로 바뀌면서다.
수강생 모집의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그에 따른 또 다른 새로운 문제도 생겼다.
첫째는 그 이전에 수강생은 모두 대학생인데다가 그 수가 많지 않아서 한국어를 습득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런데 이제 대부분의 수강생이 회사원이어서 한국어를 접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속도도 느렸다. 그래서 새로운 교수법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둘째는 수업 시간도 많이 달라졌다. 재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칠 때 주간반이나 야간반이나 주말반이 모두 가능한데 회사원은 대부분 주간에는 시간이 없고 야간에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장시간은공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 기업은 금요일 밤에 회식 자리가 많았고 토요일에 잔업 근무가 많았다. 그래서 토요일 반 또한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수강생들의 대부분은 여직원들인데, 그들은 일요일 오후 4시 이후에는 아이를 봐줘야 하기 때문에 오후 4시 이후로는 수업을 배정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수업 시간은 월수 야간반, 화목 야간반, 그리고 일요일 9시부터 16시까지의 주간반은 회사원을 대상으로 배정해 주었다. 주간 문화 행사는 주로 재학생 수강생을 대상으로 하였고, 주말과 야간 문화 행사는 주로 회사원 수강생을 대상으로 진행해 왔다. 회사원 수강생을 위해 나는 내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수준 맞게 교안과 교수법을 바꾸었다. 공부방에서는 수강생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자세히 답변해 주었다.
특히 발음 학습 단계에서는 발음 기관 그림이나 녹음을 통해 수시로 수강생들의 발음을 교정해 주려고 하였다. 매주 강의 피드백 시간을 가졌으며 받은 피드백에 따라 수업 진도나 방식을 수시로 조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과제물도 꼼꼼히 챙겨서 과제물에 대한 피드백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달아 주었다.
이런 식으로 내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은 늘 진지하고 성실하게 공부해 왔고, 수업에 빠지는 수강생도 없었다. 수료 후에 그들은 다른 회사 동료들에게 내 수업을 추천해 주어서 나로서는 새로운 수강생을 모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수강생들을 가르친 끝에 옌청 세종학당 수업은 단지 수업료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수업의 질도 높다는 이미지가 생기게 되었고, 수강생들의 입에 내 한국어 강의에 대해서도 오르게 되었다.
수강생들로부터 이제껏 만난 선생님들 중 양 선생님처럼 친절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이 처음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되었다. 그런 평들이 들려 올 때마다 왠지 모를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그 동안 받았던 온갖 스트레스와 갖은 고생들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뿌듯했다. 이러한 학생들의 좋은 평이 선생님으로서의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듯하였다. 학생들로부터 계속 이런 좋은 평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는 나의 꿈은 현재도 옌청세종학당에서 진행 중에 있다.
옌청 세종학당은 나의 꿈뿐만 아니라 수강생들의 꿈도 함께 해 왔다. 한 예로 두함로라는 수강생은 우리 학교 관광학과 학생이었다. 한류를 좋아해서 졸업 후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다. 옌청세종학당에서 내가 맡은 1A, 1B 과정을 마치고 내 학부 수업도 같이 들었고 후에 특별과정 토픽중고급반을 따라 공부했었다. 그녀는 노력 끝에 1년도 채 되지 않아 토픽 6급을 취득했고, 결국 졸업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원 합격 소식을 알게 된 그날, 그녀는 내 사무실로 찾아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그 기쁨을 나와 공유하였다.
하도라는 수강생은 회계사로서 더 좋은 한국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이유로 내 강의를 들었다. 외국어라고는 영어를 조금 배웠을 뿐인데 그마저도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하였다. 그녀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취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였다. 외국어에 대한 기초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 내 수업을 들었을 때 매우 힘들어 하였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를 가르치려고 했는데 하도 양은 힘들어서 배움을 포기해야겠다고 여러 번 밝혔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전화나 문자로 그녀가 포기하지 않도록 한국어 배움을 독려하면서 시간 될 때 복습도 해 주곤 하였다. 그렇게 1년간 꾸준히 공부한 끝에 본인이 목표했던 SK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한 그날 특별히 나에게 전화로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내 도움이 아니었다면 한국어를 배울 자신이 없었을 것이고 이제는 한국어의 매력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팬이 되었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옌청세종학당을 통해 꿈을 이루었던 에피소드 너무 많지만 이쯤에서 줄여야겠다.
어느덧 우리 옌청세종학당이 설립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었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멀겠지만 그동안 현지인의 한국과 관련된 꿈과 함께 달려 오면서 이제는 현지인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많이 받는 한국어 교육의 대표적인 기관이 되었다. 앞으로도 나의 꿈과 수강생들의 꿈이 하나로 얽혀서 깊은 감동을 만들어 낼 것이고, 지역 내 한·중 문화 교류나 경제 발전에 보탬이 되는 연결 고리로서의 더 큰 역할을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더 고심하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