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병사 20cm 넘는 회충 수백마리… 北참혹한 실상 알려
북한군 ‘자급자족’ 식량보급체계가 문제…“기생충도 옥수수 지겨웠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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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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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SA로 귀순한 북한군 병사를 치료하고 있는 이국종 아주대 병원 교수가 지난 15일 브리핑을 하는 모습. 뒤로 보이는 것이 북한군 병사의 소장에서 나온 기생충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13일 오후 3시 15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는 5~6차례의 총격을 받았다. 당시 수원 아주대 병원으로 응급후송 돼 1차 수술을 받았고, 지난 15일에는 2차 수술을 받았다.
2차 수술 이후 북한군 병사의 치료를 맡은 이국종 아주대 병원 교수는 이날 밤 환자 상태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가졌다.
이국종 교수에 따르면,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2차 수술은 1차 수술 때 절개했던 복부를 통해 시행했다고 한다. 탄환으로 훼손된 장기 등을 봉합하고, 급성 담낭염 징후가 있는 담낭 일부를 절제했다고 한다. 또한 복강 내부에서 탄환을 제거한 뒤 대량의 세척을 실시했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의 브리핑 가운데 국내 언론의 관심을 끈 내용은 “복강 내 분변과 총알로 훼손된 장기에 들러붙은 수많은 기생충 때문에 감염 위험이 컸다”는 대목이었다.
‘중앙일보’ 등에 따르면, 이국종 교수는 “기생충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면서 “한국인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이상 소견이 있어 미국 논문을 연구하며 치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국내 환자에게서는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기생충”이라면서 “책에서만 봤을 뿐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는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소장에서 20~30cm 길이의 기생충 50여 마리를 잡아냈다고 한다. 가장 큰 기생충은 길이가 무려 27cm에 달했다고. 때문에 이국종 교수팀은 북한군 병사의 손상된 소장을 40~50cm 가량 절제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소장 속에 기생충이 수백 마리 남아 있을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판문점 일대에 근무하는 북한군 장병은 4촌 이내에 전과자가 없고,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만 뽑아 배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평양 최고위층 엘리트 집안 자녀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권력과 가깝고 신체 건강한 사람만이 배치된다고 한다.
귀순한 북한군 병사 또한 그렇게 보인다. 이국종 교수가 브리핑에서 밝힌 데 따르면, 귀순 병사의 키는 170cm, 몸무게는 60kg으로, 최근 한국 남자 고교생 평균 키와 체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북한에서는 꽤 건장한 체격에 속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심각한 기생충 감염이 있는 이유는 뭘까. 탈북자들은 “북한의 식량공급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이나 가축의 분뇨를 거름으로 쓰면 기생충 알이 농산물에 붙는다. 이를 수확해 사람이 먹으면 기생충 감염이 심해진다.
북한에서는 농사를 지을 때 화학비료가 모자라 인분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 많다. 지난 3월 ‘자유아시아방송(RFA)’은 “北노동당이 주민들에게 가구당 1톤씩의 인분을 당국에 내라고 해 원성이 자자하다”는 북한 소식통의 이야기를 전했다. 구충제마저 구하기 어려운 북한에서 인분을 농사에 사용한다면 기생충 감염이 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강요한 '거름 밀어내기 전투'의 한 장면. 김정은 정권은 지난 3월 주민들에게 가구당 1톤의 인분을 상납하라고 지시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北선전매체 화면캡쳐.
장마당을 통해 중국산 비료를 구매해 사용할 수 있는 민간인들은 그나마 낫다. 가장 심한 곳은 바로 군대다. 북한군은 한국과 달리 식량이나 피복 등의 생필품은 제대로 보급하지 않는다. 특히 식량의 경우 ‘자급자족’을 하는 부대가 대부분이다. 한국 측 GOP에서 바라보면, 평일 일과시간에 농사를 짓는 북한군 병사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료 없이 인분으로 농사를 짓는 북한군 내에 기생충 감염률이 높은 것은 당연지사다.
북한의 기생충 감염이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인지는 국내 의료계에서도 제기한 바 있다. 2015년 11월 18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협신문’은 “북한의 높은 기생충 감염률이 통일 이후에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는 세미나 발표 내용을 보도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창립 107주년 기념으로 2015년 11월 14일에 개최한 세미나에서는 북한 의료 서비스의 실태를 조명했다고 한다.
당시 홍성태 서울대 의대 기생충학 교수는 “1950년대 60% 이상이었던 한국의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1990년대 1% 이하로 줄어든 반면, 북한에서는 여전히 57.6%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통일 이후 북한에 기생충 관리사업 전담기구를 만들어 검사와 투약 규정을 만들어야 사업 수행 5년 이내에 감염률을 10%대로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홍성태 교수는 북한의 기생충 감염률을 낮추기 위해 전담기관 구축비 370억 원, 기관 운영 및 인건비 40억 원, 구충제 비용 30억 원, 검사 소모품 비용 10억 원에다 사업 운영 등에 연간 100억 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패널을 맡은 심서보 건국대 의대 교수는 “향후 남북한이 통일되면 3년 이내에 2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한국으로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북한의 높은 기생충 감염률이 한국 사회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의사협회가 나서서 북한 의료 현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홍성태 교수나 심서보 교수와 같은 주장과 지적은 이때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대거 넘어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DJ정부나 盧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기생충 구충사업보다는 김정일 정권과의 ‘협력’에 더 큰 관심을 둬 별 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08년 7월 故박왕자 씨 총격 살해 사건과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로 대북지원이 사라진 이후로도 정부는 북한 주민들의 기생충 감염 문제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JSA 귀순 북한군 병사의 기생충 감염은 통일이 그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도 품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