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태평양전쟁 참전
해병대 본부에 발령을 받았지만, 스미스는 최전선을 지원했다. 그래서 해병1사단장을 지내다가 해병대 사령관이 된 밴그라프 소장은 스미스를 해병1사단 참모장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스미스는 해병1사단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스미스가 해병1사단에 부임하기 전에 해병1사단은 과달카날에 상륙하여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 그 섬을 장악했다.
과달카날 상륙전에서 해병1사단은 1,242명 전사, 2,655명 부상, 5,601명이 말라리아로 후송되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였다.
과달카날 전투를 치르고 호주에서 휴식을 취하던 해병1사단의 신임 사단장 윌리엄 루퍼터스 소장은 스미스를 5연대장으로 임명했다.
스미스는 얼마 후 준장으로 승진 부사단장이 되었는데, 그의 나이 51세였다. 필리핀과 괌을 탈환하고 일본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태평양 작전은 맥아더가 총지휘를 했지만, 실제 전투는 할지 제독이 이끄는 태평양 함대와 해병대의 몫이었다. 과달카날을 점령한 미군은 다음 목표를 펠리우 섬으로 정해 놓았다. 1944년 9월 12일 868척으로 구성된 해군 전단과 해병대는 펠리우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첫 3일간 함포사격과 공중포격을 한 후에 해병1사단이 상륙했는데, 밀림 동굴 속에 숨어 있던 일본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해병1사단장 루퍼터스 소장은 나흘이면 작전을 완수할 수 있다면서 참모들과 함께 함정과 해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 바람에 부사단장인 스미스가 전선에서 작전을 지휘했다. 그러나 나흘이면 충분하다던 작전은 몇 주일이 걸렸고, 해병1사단은 큰 손실을 입었다. 당시 루퍼터스 사단장의 행동은 문제가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루퍼터스가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해병1사단은 펠리우에서 1,252명이 전사하고 5,274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고, 나중에 투입된 육군81사단은 3,278명의 사상자를 냈다.
스미스는 펠리우 작전을 통해, 어떠한 전투이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현장을 잘 모르는 지휘관은 부대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중요한 점은 이때에 얻은 값진 교훈으로 그는 한국의 장진호 전투에서 해병1사단이 승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과달카날과 펠리우에서 전투를 치른 해병1사단은 전력이 약화되어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래서 스미스는 1사단에 머물고 싶었지만 호놀룰루에 있는 10군의 참모부로 발령이 났다. 10군은 오키나와 상륙작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1945년 4∼6월 간 치러진 오키나와 작전에는 육군 병력 외에도 해병1사단과 새로 구성된 해병6사단이 참가했다. 여기서는 두 차례에 걸친 상륙전 경험이 있는 해병1사단이 주된 역할을 했다.
전투가 끝나 갈 무렵 10군 사령관이던 사이먼 보크너 육군 중장이 일본군의 포격에 맞아 전사했다. 전투가 종식된 후 스미스는 콴티코에 있는 해병학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귀국 길에 올랐다. 그 직후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어 전쟁이 끝났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신임 해병대 사령관이 된 게이츠가 스미스에게 부사령관이 되도록 부탁했고, 이에 스미스는 소장으로 진급되어 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해병1사단의 부사단장이었던 세퍼드는 콴티코의 해병학교장으로 발령이 나서 스미스와 미묘한 관계가 되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나중에 스미스는 결국 해병대 사령관이 되지 못하고 퇴역하게 된다. 한편 부사령관 임기 2년을 채운 스미스는 사단장이 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1950년 4월에 게이츠 사령관은 스미스를 해병1사단장에 임명했다.
스미스는 캘리포니아의 캠프 펜들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1사단에 7월 31일자로 부임하게 되어 있었고, 스미스는 아내 에스터와 함께 모처럼의 휴가를 보내려 했다. 그러나 운명의 6월 25일 북한군이 한국을 침공하는 한국전쟁이 벌어지면서, 그의 작은 소망은 무산되고 새로운 인생의 거센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첫댓글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여
악랄한 일본군과 치열한 수많은
전투를해서 승리를 하며
실전에서는 그누구보다 익숙한
해병1사단장군이 되었네요
눈앞에 적과 죽고사는 살벌한 실전이
백번 천번 만번의 훈련보디 낫지요
전투에서 강한자가 살아 남는것이
아니고 살아남는자가 강하다
앞으로 6,25 한국전쟁에서 어떤
전투 맹활약을 할지
다음 전기편이 기대되고
흥미진진 하네요
수고했습니다
전쟁 얘기는 군대도 안 가본 할매가
들어도 무신 소리 인지 잘 모르지만
지략과 용맹은 훈련이 되어지고 체험하는 사이에
성취감 이나 승리감을
느낄때는
나라에 충성하고 나아가
장군으로서 크나큰
명예 입니다
이 글을 읽고 분명 댓글을 달았는데
없네요.
다시 시간될때 쓰겠습니다.
펠리우는 팔라우공화국 소속 작은 섬
과달카날은 솔로몬제도의 작은섬 2차대전당시 일본과 치열하게 싸운 곳
작가님은 다 아시지만
저같은 무지한 백성을 잘 몰라서
처음 듣는 펠리우, 과달카날이 어디 있나 위치가 궁굼했습니다.
2차세계대전당시 미군과 연합군이 치열하게 싸운곳 스미스 장군
대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