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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우연히 9꿈사를 접하고 가끔 들어와 보고 있는 현직입니다.
직장 동료가 쓴 글이 보이길래 수험생 여러분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퍼 왔습니다(글쓴이의 동의는 받았습니다. ) 한번 읽어보시죠.
9급으로 입사해서 벌써 15년 가까이 수도권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중입니다. 시간 정말 빠르네요.
1997~98년 IMF가 터진 후 2000년 초반까지 지방직 9급 공무원은 서울시 외에는 거의 뽑지도 않은 시절을 공무원 준비생으로 살았습니다.
가난한 부모님께서는 열심히 자식 뒷바라지 하신다며 평생 놀러 한번 안가시고 좋은 음식, 좋은 옷 한번 경험하지 않으시면서 어렵게 돈을 모아 제가 대학 졸업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셨습니다.
(부모님 생각하니 눈물이 글썽여지네요)
이런 환경에서 공무원 준비를 장기간 하거나 다른 친구들처럼 서울 노량진으로 원정 공부를 하러 갈 수도 없었습니다.
참 난감하더군요. 가정 형편은 좋지 않고, 나라 전체를 통틀어 9급 공무원 선발 인원은 몇 명 되지도 않고...... 연고지였던 지방자치단체(광역시 단위)도 9급은 단 한명도 뽑지 않았고, 본적지였던 지방자치단체(도 단위)는 9급 행정직을 20명 미만으로 뽑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결국 평범한 지방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는 무관한 교정직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정직에 대한 정보는 정말 거의 없었습니다. 단지, 교도소, 구치소에서 제복입고 근무하고, 수용자 관리하면서 3부제 근무한다는 정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그 흔한 싸움 한번 안 해 보고, 성격도 유순한 내가 과연 죄 지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교도소, 구치소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직장 한번 옮기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닌데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 급하게 선택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에 잠시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한 지인이 교정직 9급에 먼저 합격해서 교도소 생활을 시작했고, 그를 통해 전해들은 교도소 현직의 생활 모습과 조언은 제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지레 너무 겁먹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점도 많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인근 지역 공단 중소기업에 대충 취업하는 친구들 생활보다는 낫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물론 중소기업도 급여나 복지면에서 나쁘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나이 40되면 퇴출당하는 그 당시 분위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또, 어렵게 지방직이나 정보통신직(당시 우체국), 세무직에 합격한 선배, 친구의 생활상은 저렇게 근무할 바엔 차라리 인기 없더라도 교정직이 낫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다른 직렬 9급 공무원의 일상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라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 및 친구들이 말하는 자기들의 직장은 월급받기 위해 출퇴근하는 힘들고 더러운 한 조직일 뿐이었습니다.(다른 직렬이 뭐가 힘들고 뭐가 더러운지 세세한 내용은 여기 쓰지 않겠습니다.)
공부는 집근처 도서관에서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했습니다. 제대로 된 교정학 기본서도 문제집도 별로 없었습니다.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노량진으로 가고,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기에 저는 혼자 동네 도서관 구내식당 구석에서 도식락을 외롭게 먹으며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싫더라구요. 정말 싫었습니다. 외롭고, 힘들고, 구내식당 주인 눈빛도 따갑고....
행정직 준비를 해왔던 터라 교정학만 죽어라 파고들면서 결국 이듬해 교정직 9급 공채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교도소 근무에 대한 두려움을 내팽게 친지는 오래고, 최종합격자 발표까지 제발 합격만 했으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했었죠. 결국, 합격하고 당시 경기도 용인에 있었던 법무연수원에 연수를 들어갔습니다.
연수원 생활은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취업을 못하고 수험생이나 백수생활을 하던 지인들이 주변에 널려 있던 시절이라 어엿하게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연수원에 있으니 마음이 어찌나 편하고 여유롭던지...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하지만 다시 교도소 근무에 대한 걱정도 생겼습니다. 진짜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다른 직렬보다 못한 점이 많다는데 후회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이직 준비를 할까?
걱정도 제가 하고, 결정도 제가 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않고,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연수원 교육 열심히 받고 실무수습으로 일주일간 고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도소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교도소 현장 실무수습은 자신감 반, 걱정 반으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실무수습 받던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실무수습 막바지, 막연한 걱정과 우려는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한편으론 일주일간의 실무수습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저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게 제일 중요했습니다. 결국 교도소도 사람 사는 작은 사회에 불과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신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근무복, 구두, 넥타이, 넥타이핀, 업무일지, 계급장을 지급받고 나니 더욱 실감이 되었습니다. 발령지에서 실무수습기간은 2일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구내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이런 저런 설명 듣고 윗분들께 인사하고 퇴근 후 동기들과 맥주 한잔하고...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직장 근처에 방을 구하지 못해 20만원짜리 고시원에서 몇 달 지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고시원 방이 교도소 독방보다 더 좁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근무는 3부제로 돌아갔습니다. 주간 – 야간 – 비번
주간은 09시 출근 18시 퇴근
야간은 09시 출근 다음 날 09시 퇴근(야간에는 23시부터 새벽 5시까지 잠을 잤습니다. 그 시간에는 소수의 직원들이 중번순찰을 돌았습니다. 중번순찰은 한달에 1~2번 걸렸습니다.)
비번날 아침은 소에서 밥먹고, 샤워하고 08:50쯤 퇴근했었습니다.
퇴근후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소에서 6시간 자긴 했지만 일단 고시원에 들어가 1~2시간 잠을 잤습니다. 잠이 오지 않으면 괜히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방황하기 전 은행일이나 관공서 볼일이 있으면 그것부터 하고 다른 볼일을 봅니다. 게임을 좋아해서 피씨방에서 몇시간 게임도 하고, 인근 산에 등산을 가거나 운동도 했습니다. 그런거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가 정말 길었거든요. 그래서 저녁에는 동기들이랑 일부러 모여 같이 밥먹으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밥 얘기가 나오니 이 얘기도 하고 싶어지네요. 예전 구내 식당은 여자 수용자들이 밥과 반찬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외부 조리원 아주머니들을 고용해서 식사를 제공하고 있죠. 밥값은 엄청 쌉니다. 일단 야근자의 저녁과 아침은 무상제공이고, 일근자의 점심 한끼 값도 대략 2,500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는 밥상은 밖에서 먹는 7~8천원짜리 밥보다 나쁘다고 할 수 없을정도로 괜찮습니다. 국가에서 부식비 상당부분을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예나 지금이나 혼자사는 총각들은 구내식당을 애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돈도 아끼고 식사도 간단히 해결하고...
3부제 당시 주간(윤번이라고 칭했죠)은 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 근무시간은 오전 2시간...점심먹고 쉬다가 오후에 또 어영부영 2시간정도 일하면 폐방시간이 다가 왔고 휴게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잡담 나누다 퇴근하곤 했습니다. 근무도 단순한 업무의 연속이라 오히려 지겨워서 다른 시험이나 준비해 볼까 할 정도였습니다. 야근날은 나름 힘들었습니다. 물론 야근자는 오히려 낮근무를 더 편하게 해 주는 배려도 있었지만 다음날 아침까지 퇴근 못한다는게 정말 지겹고 짜증도 났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엔 핸드폰이 사동에 들어가던 시절이라 덜 지겨웠던 면도 있었고 수용자 다 자는 동안 책읽고, 신문읽고 나름 재미도 있었습니다.
근무체계가 3부제에서 4부제로 전환되었습니다. 4부제 근무 생활은 이렇습니다.
주야비휴, 주야비윤, 주야비휴, 주야비윤.....
원래는 저렇게 되어야 하는데 각 소별로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윤번날 1/2 휴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소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달에 휴무가 4번 주어져야 하는데 어떤 곳은 3번, 또 어떤 곳은 2번, 심한 곳은 1번정도...
주간 근무는 0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합니다. 업무강도는 높지 않습니다.
18시에 퇴근하면 가족과 저녁을 먹고 잠시 산책을 하다 뉴스보고 놀다가 잡니다.
다음날은 야근, 야근날은 아침에 바로 출근하지 않습니다. 오전 오후 놀다가 16시 30분경에 소로 출근합니다. 이런 저런 준비하고 16시 50분경에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17시 30분부터 근무지로 가 근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야간 22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2개조로 나눠서 각 4시간씩 잠을 잡니다. 여기서 잠을 잘 자는 것이 중요하죠. ^^ 그리고 아침 8시 10분쯤에 교대를 하면 야간근무는 끝납니다. 구내 식당으로 가서 아침밥을 먹고 샤워하고 8시 30분쯤 퇴근을 합니다. 집에 오면 처음엔 정신이 또렷하지만 침대에 들어가면 이내 잠을 잡니다.(잠을 자지 않고 바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냥 3시간 정도 잠을 잡니다.) 오후 12시 전후로 일어나서 집사람과 밥을 먹고 그때부터 일을 보거나 놀거나 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윤번날)이 휴무조면 다음날까지 풀로 놀고, 근무조면 다음 날 아침 09시까지 출근해서 18시에 퇴근을 합니다. 주간 근무라는게 뭐 별거 없습니다. 부담스럽지도 않고 강도가 높지도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돈 벌려고 일부러 지원해서 출근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저는 근무조날 일이 있으면 휴무조 다른 사람과 순번을 바꿔서 쉬기도 하고, 그냥 돈 벌려고 출근하려는 직원에게 그냥 팔아버리기도 합니다.
근무중 중요한 것은 수용자와의 관계입니다.
신규때부터 걱정했던 것과 달리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교도소내 수용자 인권이 강조되면서 많은 부분이 허용되어 수용자들 스트레스가 적어지다보니 분위기가 더 유연해진 면도 있고, 교정당국에서도 대처하는 방법이 나날이 발전하고 세련되다보니 크고 작은 문제가 줄어드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수용자들의 잘못된 인권의식으로 교정기관 수용질서가 크게 무너졌던 김대중 대통령 정권 때가 절정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차츰 진정되는 분위기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수용자 인권 강조로 각종 부작용이 무척 많이 발생했고, 그 사이 교도관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은 예전만큼 무식하게 인권타령 하는 인간 거의 없습니다. 물론 정신질환자나 미지정사동에 있는 똘아이 수용자들이 있긴 하지만 함께 근무하는 동료직원과 팀 지원으로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대부분이고, 직원 스스로도 문제되는 수용자들 관리하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면 노련하다는 소리 듣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오히려 다른 사동보다 더 편하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사동 근무자에 대한 지원은 더 강화될 겁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 많은 교정현실이지만 교정의 발전은 앞으로 계속되고 기대할만하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여주교도소나 천안개방교도소가 시설면이나 근무면에서 괜찮다고 했는데 지금은 근무여건 좋은 소가 전국적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여주교도소, 천안개방교도소, 천안교도소 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신설 기관이 제가 입사한 뒤로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서울남부구치소, 서울남부교도소,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영월교도소, 정읍교도소, 해남교도소, 통영구치소, 밀양구치소 상주교도소가 신설 또는 새 건물로 이사 갔고, 성동구치소가 6월중 새로운 건물로 이사가며, 속초교도소가 곧 신설될 예정입니다. 부산지역 언론, 사회단체에서는 현재 대구지방교정청에 묶여 있는 부산지역 교정시설을 별도로 분리하여 부산지방교정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무부와 교정본부에 강력 요구하고 있다니 어쩌면 부산지방교정청이 신설될지도 모르겠네요.
어느덧 저도 40대가 되었습니다. 결혼 때 부모님께서는 전세금 한푼 도와주지 못해 지금도 미안해하시지만 저는 이 직장에 들어와 결혼해서 부부공무원이 되고, 아이 둘 낳고 수도권에서 33평짜리 아파트도 사고, 남한테 아쉬운 말 한 번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행복한 가정 꾸리고, 부족한 것 없이 알콩달콩 살면서 부모님 자주 찾아뵈려고 노력하는 당신네 아들이 가장 자랑스럽다 하십니다. 저와 동생들 때문에 한번도 좋은 먹거리, 좋은 옷 입지도 못하셨던 부모님께 매달 많지는 않지만 용돈도 드리고,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사다 드리면서 이제 자식 노릇 좀 하나 싶네요.
급하게 두서없이 쓰느라 글이 제대로 되었나 모르겠습니다만 읽으신 분들에게 도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좋은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모학원설명회에서 뵈었던 잘생기신분의 스토리 같아요 감동적입니다
감사합니다 ^^
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