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지난 7월부터 군산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결혼한 지 20여년이 되고 보니 주말부부로
지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남편이 출장을 간다거나 저녁 먹고 온다
면 어떤 기분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도 주 5일 근무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이틀은 집에서 함께 지
낼 수 있다. 마트 근무라 주말엔 휴무를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크리스마스때 자정 미사참례를 하고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출출하기도 하고 한 잔 생각이
나는데 혼자서 술집에 가긴 처량맞아 집에서 라면 하나 끓여 먹었다던 남편의 말이 얼마나 쓸쓸
하게 들렸는지... 새해 첫 날에 따뜻한 떡국도 못 먹고 출근할 남편을 생각하니 안쓰런 생각이 들
어 아이들과 작당을 하여 남편을 위한 깜짝쇼를 하기로 했다.
31일에 아침부터 딸과 함께 떡국 끓일 양지국물을 끓이고, 전도 지지고, 연근도 졸이고, 나물
두어 가지를 준비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만두는 전날(30일)에 미리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걸 꺼내 타파통에 담았다. 남편이 덮을 두꺼운 이불 호청도 다시 꾸몄다. 2~3일 묵게 될 것 같아
옷가지도 준비했다. 그러고 보니 완전 이삿짐처럼 짐이 많아졌다. 생각보다 출발이 늦어지고 보
니 평상시 과천까지면 20여분 걸릴 거리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평상시 남편은 서울서 군산까
지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날이 날이니만큼 4시간정도 걸릴꺼라 예상은 했는데 출발부터
길이 밀린다. 남편에게 승용차 몰고 간다고 하면 절대로 오지 말라고 야단야단 할 것 같아서 아
이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켰다. 강아지 에바를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떠났는데 그 녀석이 얼마
나 불안해하는지 계속 끙끙거리고 헐떡거리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발안을 지나면서 속력을 좀
낼 수 있었다. 화성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출발 했다. 승용차를 운전하고 군산을 가기는
처음이라 조수석에 앉은 아들놈에게 표지판 잘 보고 알려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들녀석이
그날(31일) 운전 면허 시험에 합격을 한지라 속력이 좀 난다 싶으면 제한 속도를 알려준다. 운전
대를 잡아 보고 싶어 몇 번 사정을 하다가 치사하다며 포기 한다. 춘장대를 지나면서 아이들을
시켜 남편에게 전화를 걸게 했다. 연말연시를 아빠 혼자 지내서 쓸쓸해서 어떡하냐구 하면서 아
빠를 떠보게 했다. 엄마랑 위문공연 갈까요 하니까 괜찮다며 잘 지내라고 한댄다. 그쯤에서 군산
에 거의 도착했다니까 정말이냐구 몇 번이나 묻는댄다. 톨게이트 들어간다고 중계방송을 하니
까 예상대로 남편이 걱정을 하면서 톨게이트 나오자마자 우측 갓길에 비상등 켜고 기다리란다. 5
분 정도 기다려 남편을 만났다. 여기가 어딘데 차를 몰고 왔냐며 야단을 하면서도 반가워한다.
남편이 앞서서 에스코트를 하고 근무지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9시 반쯤 되었다. 남편이 사무실
에서 우리랑 통화 하는걸 들은 직원이 어느 새 식당에 식사를 준비해 두었단다. 끝없이 나오는
쓰끼다시를 골고루 한 점씩 먹다 보니 어휴~... 쓰끼다시 대부분이 해산물을 날로 먹거나(전복,
게불, 성게알, 해삼, 석화, 오도리) 양념 없이 삶거나 찐 것들(홍어, 소라, 오징어, 홍합, 게..)이었
다. 서울에서는 양념을 해서 조리과정을 거친 것들이 많은 반면 군산에서는 양념을 거의 안한
채 먹게끔 한 음식들이 많았다. 함께 자리했던 두 명의 직원이 어찌나 농담들을 잘하던지 아이들
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잠깐 잠깐씩 남편과 그 직원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직원들이 남편에 대
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남편의 일에 대한 열정들을 느낄 수 있어서 남편에 대한 생각을 다시
금 하게 되었다.
남편의 집(?)에 도착하여 내 승용차 트렁크를 열어보고는 웬 이삿짐이냐며 입을 벌린다. 내일
아침은 밥 한술 먹을 수 있겠다며 좋아하며 웃는다.
1일날 아침, 장거리 운전은 처음인지라 피곤해서 눈도 잘 떠지지 않는 걸 겨우 일어나 떡만두국
과 따뜻한 밥과 준비해온 몇 가지 반찬으로 아침상을 차렸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도 깨워 가족
이 함께 아침을 먹었으면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너무 무리 인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남편은
출근을 하면서 언제 집에 갈꺼냐구 물었다. 2일에 간다니까 군산엔 가볼 곳이 없다며 그냥 올라
가란다. 쩝~ 점심때 남편이 왔다. 왠지 쫒겨 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떠밀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남편 집을 나왔다. 남편이 편지 한 장을 내민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을 자세히
적은 것이다. 남편이 아들 녀석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자지 말고 엄마한테 길 잘 알려주라고...
남편이 일러준대로 서산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려니 웬걸. 도로가 주차장이
네. 당진까지 시속 20킬로도 못되게 가다 서다 반복하고 허리도 아프고 등도 아프고... 남편은 20
여분 간격으로 전화를 한다. 집에 도착하니 8시가 다 되었다.
깜짝쇼는 그렇게 끝났다. 한 나절 음식 준비로 바빴고 4시간을 운전대 잡고 가서 몇 시간 못 자
고 다음 날 다시 4시간 운전하고 왔더니 힘들었다. 깜짝쇼를 하면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
각을 했고 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내일이면 남편이 오는 날이다. 우리 남편은 마치 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음식 먹는 걸 너무 좋
아한다. 어떤 음식으로 남편에게 기쁨을 줄지 고민할 시간이다. 이런 사소한 고민들을 하며 사
는 내가 행복한 사람인지.....
올 한해도 가족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어머니들의 손에 축복 있기를...
카페 게시글
모놀가족 이야기
깜짝쇼
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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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02 23:39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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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복한 모습이 보입니다...잘 계시죠? 넉넉한 모습만큼 사람사는 아름다운 행복이 가득해 저역시 기분 좋습니다.음식 드시기를 좋아 하시는 아빠께 새벽일찍 부터 일어나셔 준비 하세요..늦밤 주무시지 말고..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남편께서 무척 행복하셨을 겁니다.저도 그런 비슷한 생활 해봣거든요... 건강 하세요~````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이네요^^
행복한 시간들 였네요~..음식만들고 이불단장하고 차를 몰고 하는 순간순간 넘쳤을 사랑의 감정들이 얼마나 좋았을지...쿠가님~..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남편분도 모놀에 가입시키세요..저희 비단들녁 가족수좀 늘리게..ㅎㅎ 감동이 파도를 쳤을것 같은 식탁이 상상이 가네요..새해에도 쭈~~욱 감동넘치는 가족이 되시길...
쪽지에 전해주는 연애편지는 아니래도, 고속도로 자세히 써준 남편의 편지는 곱게 보관하세요.. 나중에 읽어보면 그 또한 추억이 될터이니... 남편 음식 만드는 사소한 고민을 하는 당신은 멋쟁이!!
소금인형님! 제 남편은 빨강 날짜엔 휴무를 거의 못한답니다. 거의 평일에 휴무를 하거든요. 그래서 모놀 답사 여행도 딱 한번 밖에 함께 하지 못했답니다. 토끼여행님 말씀처럼 남편의 길안내 편지 잘 보관중입니다. 모두모두 행복하세요.^^*
구카님! 안녕하세요? 그림이 보입니다. 단란하고 건강한 가족의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합니다. 늘 그 마음 그대로 화평한 가정을 이루십시요....전 은마로 들어와서 2성당에 다닙니다. 언제 한 번 얼굴 봅시다......*^^*
아낙수나문님! 반갑습니다. 이사하셨군요. 어쩐지 성당에서 통 뵐 수가 없더라구요. 언제 한 번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