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만해축전추진위원회는 8월12일 인제하늘내린센터서 19회 만해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
조국 독립과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며 민족문학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스님의 ‘님의 침묵’이 깨졌다. 만해 스님의 정신을 잇는 만해대상 수상자 면면이 광복 70년 분단 70년 민족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던 아픈 역사 흐름 속 진실과 대면하는 용기와 자비를 노래해서다.
만해축전추진위, 12일 만해대상 시상 더든 교수·청전 스님 등 6명 수상 수상자들 “만해정신 다시 기억한다”
만해축전추진위원회는 8월12일 오후 강원도 인제하늘내린센터 대공연장에서 제19회 만해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시상식은 만해축전추진위원회와 동국대,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조선일보, 인제군 등 주최로 8월14일까지 인제 동국대 만해마을 일원에서 펼쳐지는 만해축전의 백미였다.
시상식에 앞서 만해 스님 영상이 흘렀다. 종교 사회단체를 망라한 신간회 결성을 비롯해 만당을 결성해 당수로서 치열하게 일체침략에 맞섰던 흑백사진 속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의 눈빛은 형형히 빛났다. 스스로 서릿발 같던 시대의 칼날 위에 올라 자유와 평화의 춤을 췄던 기백도, 문학인으로서 ‘님의 침묵’, ‘복종’, ‘알 수 없어요’ 등 당대의 감성을 흔들었던 시심도 흑백영상으로 재현됐다. 가곡 ‘선구자’가 영상에 감성을 불어넣었다.
대회사, 법어 그리고 축사가 이어졌다. 만해축전 총재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포교원장 지원 스님이 대독한 법어에서 “만해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해 비폭력 평화주의로 제국주의에 온몸으로 저항했다”며 “올해 수상자들은 정의와 인권, 평화를 사랑하며 가난하고 핍박받은 이들과 함께하고 문학과 예술로 희망과 행복메시지를 전한 현대의 선구자이자 만해의 현신”이라고 축하했다.
만해축전 명예대회장 동국대 총장 보광 스님은 “불교종립대학 동국대 1회 졸업생인 만해 스님은 한국불교 근대개혁에 앞장섰고 조국독립, 민족계몽을 위해 식민지 어둠과 정면 대결을 벌였던 지도자”라며 “궁핍한 시대에 어둠 밝힌 연꽃 등불”이라고 축사하며 만해대상 수상자들을 치켜세웠다.
실제 광복과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만해대상 수상자들은 한반도의 뼈아픈 역사적 진실과 직접 마주하고, 평화와 자유를 사랑한 만해 스님의 정신을 세계와 나누고 있는 실천가, 문학·예술인들이었다.
| | | ▲ 세계 역사학자의 성명을 주도해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을 비판한 알렉시스 더든 교수가 만해대상을 수상했다. |
만해평화대상 수상자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학 교수는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정부에 진실 담은 글로 죽비를 쳤던 인물이다. 종군위안부에 대한 책임회피를 질타하는 세계 역사학자 187명의 집단성명을 주도했다. 지난 2월 일본 아베 정권의의 미국 역사교과서 왜곡시도를 고발하는 미국 역사학자 19명의 성명을 이끌어낸 뒤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두 번째 용기였다. 미국 내 대표적 동북아 전문가인 더든 교수는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연구가 전공분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만해 스님의 ‘님의 침묵’이다.
더든 교수는 “만해 스님 시와 첫만남을 기억하는 것은 물 한 모금 마시는 일처럼 그의 언어가 이미 내 일부가 됐다”며 “그의 언어처럼 정의롭고 순수한 노래에는 깊은 휴머니즘이 있다. 오늘 시상식에서 다시 한 번 우리 시대 가장 평화로운 사람이었던 만해 스님을 기억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 | | ▲ 히말라야 오지마을에 생필품을 나눠온 청전 스님은 만해실천대상을 수상했다. |
실천대상은 청전 스님과 발달장애인 공동체 무지개공동회(대표 천노엘)가 수상했다. 청전 스님은 ‘히말라야 빈민구제활동가’, ‘산타멍크(산타클로스 스님)’라는 별칭을 얻은 수행자다. 27년 동안 히말라야 오지 마을을 다니며 빈민에게 약품과 생활필수품 등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조계종 스님이면서 달라이라마 제자인 청전 스님은 인도에 머물면서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보시행을 이어오고 있다.
청전 스님은 “한국 떠나서 히말라야 작은 곳에서 29년째 지내면서 히말라야 아름다움의 이면에 가난과 어려운 삶을 저절로 알게 됐다”며 “어려운 사람 돕고 소외받고 병든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바로 자신을 위한 수행임을 믿고 해온 작은 실천으로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스님은 “저를 만든 히말라야 오지의 사찰스님들. 어린 사미승, 또 절 주위 마을주민들에게 더욱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 | ▲ 만해실천대상을 수상한 무지개공동회 대표 천노엘 신부. |
무지개공동회는 발달장애인들의 공동체다. 1981년 국내에 첫 그룹홈을 개설, 발달장애인들이 집과 수용시설에서 사회로 발걸음을 내딛도록 이끈 천노엘(83) 신부가 대표다.
그는 수상 직후 “만해대상 수상을 기쁨 속에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만해 스님 독립투쟁은 사회의 냉대와 편견 속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투쟁하는 이 시대 장애인과 닮았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까지 충분히 수용시설에는 비장애인처럼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며 “그 친구들을 해방할 수 있다는 꿈과 소망을 갖고 있다”는 희망을 꺼내 보여 참석자들의 열띤 응원박수를 받았다.
문예대상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인간과 생명, 평화와 공존의 참뜻을 전달해 온 신영복(74) 성공회대 석좌교수, 가야금 명인 황병기(79)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현종(76) 시인 등 3명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신영복 석좌교수는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20년 간 수감생활한 뒤 동양고전의 독서와 사색의 결과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펴냈다. 황병기 명예교수는 창작음악 1세대로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후학을 지도하다 2001년 정년퇴임했다. 신라음악을 되살린 ‘침향무’,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은 ‘비단길’ 등 50년 넘는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은 정현종 시인은 ‘사물의 꿈’부터 ‘그림자에 불타다’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시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 정진규는 축시 ‘만해 선생 슬하에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선생은 언제나 감옥을 가두는 더 큰 빛의 감옥을 지으셨다. 열림의 감옥을 지으셨다. 모두 다 놓아주셨다. 방생하셨다. 이별은 이별이 아니여, 이별이 아니여 맨날 중얼거렸던 그러나 좀체 알 수 없었던 그 귀한 말씀을 이제와 비로소 듣는다. 귀가 열린다. 청맹과니 내 눈이 다시 트인다. 별소나기 몸으로 맞는다.”
‘님의 침묵’ 알 껍질 깨고 나온 진실의 힘과 자비의 귀한 말씀이 별소나기처럼 인제하늘내린센터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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