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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3: 18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 포도주(wine)
(2) 포도주(wine)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는 구약 · 신약시대를 거쳐 교회의 중요한 음식물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구약시대에는 번제(燔祭)의 희생제물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졌다.
과월절 식사에 중요한 식품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치유제(治癒劑)로 사용되기도 했다.
* 딤전 5: 23 -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 눅 10: 34 -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최후의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도주를 들고 사례하신 후 포도주를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흘리는 자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후부터 포도주는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의 상징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이 맺는 새롭고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찬 예배 포도주를 함께 먹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
포도주는 이물질(異物質)이 섞이지 않은 순순한 포도로 빚어 발효, 산화시킨 것으로 소량의 물(포도주와 물)을 섞은 것이 사용된다.
포도주에 물을 섞는 데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인 물과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인 포도주를 혼합함으로써 인류와 하나님 사이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나아가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 위로 흐르는 피와 물로도 암시된다.
그리스도의 단성론(單性論)을 주장하는 아르메니아 교회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섞지 않는다.
한편 포도주를 빚는 포도는 성경에서 비유의 대상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포도밭은 하나님의 교회로, 포도나무는 그리스도로, 포도덩굴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로 비유되는 것이 보통이다.
(3) 포도송이와 포도주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마지막 추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새겨 살펴보자. (욜 3: 13)
* 계 14: 14-20 – 마지막 수확(곡식과 포도송이 추수) –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14-20절은 의인들과 악인(해 입은 여자와 음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젖과 꿀의 땅 가나안(Canaan)
뜻 : 자색
가나안 사람들은 당시에 염색 기술이 발전했으며, 옷감에 염색하는 자색이 당시에 유명했다.
좁은 의미로는 가나안 사람은 가나안 정복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단 서쪽의 땅을 의미한다.
또한 넓은 의미로는 시리아 지역의 일부를 말한다.
가나안 족속의 조상으로 성경에는 함의 아들이며 노아의 손자이다.
* 창 9: 18 -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 창 10: 6, 15-19 –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 대상 1: 8, 13-16 – 8 함의 자손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13 가나안은 맏아들 시돈과 헷을 낳고 14 또 여부스 종족과 아모리 종족과 기르가스 종족과 15 히위 종족과 알가 종족과 신 종족과 16 아르왓 종족과 스말 종족과 하맛 종족을 낳았더라.
함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사용했다(창 9:19, 22, 10:6).
후에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틴(페니키아를 제외하고)으로 불린 땅의 이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점령하기 전의 그 땅 주민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나안 사람은 다음과 같은 여러 족속을 포함한다.
"아모리 족속",
기르가스 족속(거주지 위치는 알 수 없음),
"헷 족속"(거주지는 알 수 없음. 어떤 경우에는 가나안 사람들을 일컫는 일반적인 호칭으로 사용되었음),
히위 족속(팔레스틴의 중앙부),
여부스 족속(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 거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의 후손들),
갓몬 족속(창 15:19에서만 언급됨),
그니스 족속(창 15:19),
겐 족속,
브리스 족속(팔레스틴 중앙부에 거주),
르바 족속(창 14: 5. "거인"이란 뜻).
(1) 명칭과 지역
가나안 사람의 조상 이름으로서 창세기 9:18, 10:6에 이 @['n'K] (Kna`an) `가나안'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있다.
이 이름은 아마르나 문서(TheAmarna Lettess)와 봐스교이(Boghzky) 문서에 Ki-na-ah-ni, Ki-na-ah-na, Ki-na-ah-hi, Ki-na--a-an-hi, Ki-na-hi로 나와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나, 애굽, 알랄락(Alalakh) 문서에는 각각 Kjnnw, kn`n로 나와 있다.
누시(Nuzi) 점토판(粘土板)문서에서 Kinahhu는 자주 물감을 나타내는 말인데, 상술한 Knn는이 말로부터 된 말이며, 따라서 원래는 누시의 주된 언어였으며, 후르리어(Hurrian,hurri의 말)라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학적으로도 무리가 있다.
구약성경에는 kna'an(i)이 상인을 나타내는 별명으로 쓰이고 있는 예를 보는데(습 1:11, 장사하는) 이 Kn'n 자체는 kinah-hu(자주 물감)을 나타내는 후르리어에서 온 말이 아니고, 오히려 `가나안'이라는 본래부터 이름이 있던 곳, 즉 베니게나 우가리트(Ugaritie) 문서에서 볼 수 있는 두로, 시돈, 우가리트 등의 자주 물감의 산지로서 알려져 있던 이 지명 자체가 이것을 거래하는 상인의 대명사로도 쓰이게 되었다.
또 자주 물감을 나타내는 말로서 누시 따위로 후르리어화(語化) 되어 쓰이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나안'과 `자주물감'과의 관계는 이와 같이 깊은데, 희랍어로도 이것을 나타내고 있다. 는 `자주물감'을 나타내는데, 선문자(線文字) B에는 이미 ponika로 나와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으며, 이것은 오래된 말이다.
그런데 희랍어로 `베니게'를 이 말에서 유래한<로 표시하고 있다.
이 `베니게'야말로 이사야 23:11 등에서 보면 분명히 시돈 두로 등을 가리키고 있으며, 또 이 곳 주민을 `가나안 사람'이라 부르고 있다.
한편 창세기 12:5, 민수기 33:51에 `가나안'은 요단 강 서쪽의 땅을 가리키고 있으며, 민수기 13:29, 14:25, 여호수아 11:3에는 동지중해 연안의 땅 내지는 평야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이 `가나안'이라는 땅은 경우에 따라서 요단 강 서쪽의 지역 전체 중에서 상당히 한정된 지역에 대해 쓰이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관련하여 우가리트(Ugarit) 문서의 Kn'n도 마찬가지로 한정된 지역에 대해 쓰이고 있다. 그리고 후에 `가나안'이라는 명칭은 요단 협곡에, 다음에 요단강 서쪽 전체에 확대되었다.
히브리인 거주지의 일반적 명칭으로 되었다(창 11:31,민 13:2).
이스라엘 사람의 정복 후의가나안 언어는 히브리어, 즉 하나님의 백성의 말이었다(사 19:18).
히브리인은 모세의 사후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가나안을 정복하였지만, 출진 계획에서는 길갈에 장막을 고정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 유적은 요단 저지(低地)의 여리고 동쪽에 있다(수 4:19, 5:10). 여기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와 기브온으로 올라갔다(수 7:3, 8:1,3, 10:10).
이 길갈은 전략상 많은 이점이 있었다.
즉, 이 부근은 후방에 적이 없고, 물이 풍부하며, 요단 강 동쪽에 정주한 두 지파 반으로부터 조달을 받을 수 있었고, 또 노획품 저장에도 안전하였다.
여기에는 회막(수 6:24→9:23, 18:1, 22:19), 언약궤(수 3:17, 4:11, 7:6등), 제단(수 9:27→ 22:19, 28, 29), 요단 강 도하 기념으로서의 열두 돌(수 4:20)이 있고, 또 제사장 엘르아살(수 14:1→16:6)과 다른 제사장(수 6:5,12, 8:33)들이 있었다.
여호수아는 여기서부터 가나안 공략의 요충인 여리고를 점령하고 즉시 서진하여 산으로 들어가 아이를 전멸시켰던 것이다. 아이는 길갈과서로 대하여 계곡의 산정에 있었으며, 거기서 적군이 진영으로 쳐내려 올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모세의 명령에 따라 에발 산에 제단을 쌓았다(수 8:30-35, 신 27장).
여기에 기브온에서 대표자들이 나타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그들과 조약을 체결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
이와 같이 확고한 거점을 얻었으므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진행시켰지만, 이들 다섯 왕들은 동맹하여 대항했으므로 남부 토벌에서 그들과 접전하게 되었다(수 10장).
결국 예루살렘 왕은 기브온을 치기 위해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및 에글론 왕을 소집하였다. 여호수아는 조약을 맺은 기브온 사람들을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나안 다섯 왕은 벧호른을 지나 도망쳤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을 추격하여 해변의 평원과 막게다를 공략하여 거기에 임시로 장막을 치고 평원에 있는 립나와 라기스를 점령하였다. 라기스에서는 원군인 게셀 왕도 격파하였다.
또 에글론을 점령하고 거기에 다시 일시적인 장막을 치고 헤브론을 점령했다.
헤브론에서 철군하여 산지인 드빌을 침으로써 기브온, 가사, 가데스바네아를 포함하는 전 지역을 토벌하고 여호수아는 길갈로 돌아왔다.
그가 태양에 명하여 머물러 서게 했던 것은 이 싸움에서였다(수 10:12-15).
중부와 남부를 정복했으므로 여호수아는 북부 동맹과 싸우기 위해 블레셋 사람의 북쪽 작은 성을 무시하고 북상하여 인구가 많은 유력한 성읍을 치기로 작정했다(수 11장).
하솔 왕이 이 땅의 약소한 왕들의 우두머리였으나, 남쪽에 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승리에 대한 소문을 듣자, 그는 다른 왕들과 연합하여 여호수아를 분쇄하려고 하였다. 연합군은 북쪽의 메롬 물가(湖畔)에 모였다. 여호수아는 그 부근에서 그들을 격파하고 패주자들을 서북쪽 시돈까지, 또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였다. 그리고 그는 되돌아서서 하솔 성읍을 점령하고 이를 불사르고, 동맹을 맺었던 약소 왕국의 도성들을 점령했다(수11:16-12:24).
가나안 사람의 세력은 이것으로 분쇄되었으나, 주민이 완전히 멸절되지는 않았다.
많은 주민이 남아 있었으며, 또 중요한 성읍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수중에 남아있었다(수 11:13, 15:63, 16:10). 그리고 가장 심하게 파괴된 곳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숨어 있다가 이스라엘군이 철수하자(수 10:43) 그들은 돌아와 폐허된 성읍들을 재건하고 황폐된 들을 다시 갈아 일구었다. 후에 이스라엘 제족속이 각지에 산재했을 때 가나안 사람들의 저항이 각지에서 속발하였다(삿 1장→헤브론인 여호수아).
가나안 정복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수 11:18,19).
즉, 출애굽기 제 2년에 척후병을 보내고서부터(→ 민 10:11, 13:20, 신 1:2) 토지 분할을 하려고 했을 때 갈렙에게 헤브론의 재 정복 임무가 부여 되었는데, 이때까지 45년간이었다(수 14:7,10).
척후병 파견으로부터 세렛 시내를 건널 때까지는 38년간이었다(신 2:14).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의 동쪽과 서쪽의 정복을위해 6, 7년 걸렸다. 여기서부터 동방의 땅 정복과 싯딤에서의 사건에 소비된 시간을 빼야할 것이다. 아론의 죽음은 출애굽 제 40년의 5월 1일이며(민 33:38), 요단강 도강은 정월 10일이었다.
그러면 시혼과 옥의 땅 정복과 싯딤에서의 사건은 약 8개월 9일이 되며, 그 기간 중 싯딤의 사건이 약 2개월을 차지하고 있다(신 1:3,4, 수 4:19, 신 34:8, 수 2:22). 그러므로 서쪽 팔레스틴 정복에 소요된 연수는 5, 6년이 된다.
여호수아는 세 가지 정치적 실책을 했다.
즉, 기브온 사람과 조약을 체결한 것(수 9장), 여부스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지 않고 거주를 허락한 것(수 15:63), 블레셋 사람을 추방하지 않음으로써 바다에 이르기까지의 땅을 지배하지 못한 것 등이다. 이들 과실의 결과 유다와 시므온의 양 지파가 다른 이스라엘 사람으로부터 고립되어 버렸다. 그 고립의 결과는 중대한 것인데, 분명히 그 후의 역사 코오스에 영향을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은 가나안 사람을 전멸시켜야만 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신 7:2-4). 하나님은 그것으로 가나안 사람의 사악(邪惡)을 벌하고(창 15:16, 레 18:25, 신 9:3,4, 18:12), 또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더럽히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출 23:31-33, 34:12-16). 이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공의의 그릇이었다.
요단 강 서쪽의 정복지 분배는 일부는 길갈에서, 또 일부는 장막이 옮겨진 실로에서 행해졌다(수 14:1,2,6-18:1,2). 그것은 제사장 엘르아셀, 여호수아 및 10지파에서 뽑힌 방백들에 의해 행해졌는데(수 17:4→ 민 34:17,18), 제비를 뽑아 정해졌다(수 18:6). 분배 방법은 이미 제정되어 있었다. 즉, 큰 지파에는 많은 기업을 주고 누구에게 어디가 뽑히건 뽑힌 곳이 그의 소유로 된다는 것이다(민 26:52-56, 33:54).
그러나 이 일은 그 경계를 정확히 한정하지 않고, 어떤 지방을 골라 제비에 따라 어느 지파가 그것을 소유할 것인가를 결정했을 것이다.
① 사사기 1:1의 물음의 형식 참조.
② 이 설은 민수기 33:54을 만족시킨다.
③ 여호수아 18:1-10을 참조. 거기서는 땅이 먼저 일곱 부분으로 나뉘어져 그 후 여호수아가 제부족을 위해 제비를 뽑았다.
④ 이 설은 또 여호수아 19:1 등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후의 분배에 있어서 두번째 제비가 시므온에게, 세번째는 스불론에게 뽑힌 것이 기술되어 있다.
⑤ 제지방은 마치 제비로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순서 바르게 배당이 진행됨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긴밀히 구성하여 여기 저기 뛰지 않고 거주지가 확정되었다.
⑥ 분명히 많은 것이 지도자나 감독자들의 사려(思慮)에 남겨졌다.
유다족의 주요 부분의 제비가 그들을 그 부근에 정주하는 것을 허용하건 안하건 갈렙은 헤브론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야곱의 마지막 소원은 제비의 범위 안에서 정해졌을 것이나(창 49장) 그의 기업은 틀림없이 조상의 소원에 가급적 가깝도록 조정되었다. 그러나 잘못도 있고 수정도 있었다. 분배를 끝맺기에 앞서(그것은 하루나 한 주일에 완료되지 않았지만) 유다족이 받은 땅이 너무 많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과잉 분은 아직 분배되지 않는 땅에 부가되었다. 이에 반하여 요셉의 아들들은 여호수아에게 그들의 땅을 너무 작다고 고하여 더 줄 것을 소청했다. 야곱의 소원에 맞도록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나란히 살게 되고, 그 때문에 제비를 따로따로 뽑지 않고 요셉의 아들들로서 합하여 뽑았다(수 16:1,4).
이리하여 백성은 긴밀히 짜여졌으며, 장막에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부터 먼저 분배 되었다. 남부 구릉지대는 레아의 네째 아들 유다에게, 중앙 산지는 라헬의 맏아들 요셉,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중간에 있는 구릉지대는 라헬의 둘째 아들 베냐민에게, 유다가 반환한 남부 구릉지대의 잉여 부분은 레아의 둘째 아들 시므온에게, 중앙 산지의 북부 경계지는 레아의 여섯째 아들 스불론과 다섯째 아들 잇사갈에게, 인접 해안 지대는 레아의 여종의 둘째 아들에게, 잇사갈과 스불론의 북쪽 지역은 라헬의 여종의 둘째 아들 납달리에게 분배되었다.
유대의 잉여분의 나머지 부분은 라헬의 여종의 맏아들 단에게, 레아의 장자 르우벤, 레아의 여종의 아들 갓과 라헬의자손 므낫세의 반지파는 요단 강 이동에 땅을 받았다. 레아의 아들 레위에게는 분배가 없었다(수 13장-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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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철길은 왜 하나가 아니고 둘인가?
길은 혼자서 떠나는게 아니라는 뜻 이랍니다.
멀고 험한 길일수록 둘이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구요.
사랑을 한다는 것은 둘이 만나 행복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알맞은 거리가 필요 해서 라고도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하여 건강하게 행운이 가득한 주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잠 23:1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