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과 김윤아가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한 부분을 따서 부른 노래가 있다고,
친구가 '어느 날' 내게 말했습니다.
그 친구와 나는 막 갈등을 겪고난 뒤였고
나는 그 친구가 들어보라는 노래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달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 들어보았습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짧은 소설입니다.
어느 항구도시에 안느라는 젊은 부인이 삽니다.
안느는 무료한 한낮 아이의 피아노 교습이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시내로 나가 한 카페에 들릅니다.
그리고 거기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매일 마주치는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해질녘 부두거리를 따라 집으로 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칼로 찌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녀는 그 뒤로도 산책을 계속합니다.
살인 사건을 함께 목격한 그 남자와 카페에서 살인에 대해 줄기차게 질문을 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산책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죽은 여자에 대한 얘기를 계속 나누는 동안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무엇인가가 서서히 일어나 움직이고 있습니다.
왜 남자가 여자를 죽였을까요, 안느가 묻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죽은 그 여자의 행동, 그 여자가 술에 취해 지껄이던 말, 그 여자가 만났던 남자,
그것들을 통해
그 남녀는 이곳에 자주 왔었으며
어쩌면 아주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다는 것을 아주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토록 뜨겁게, 영혼을 질리게 한 사랑이
시간이 지나 일상에 매몰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림을 견디지 못한 여자가
남자에게 부탁을 합니다.
사랑이 아주 사라지기 전에 날 죽여달라고.
남자는 여자의 뜨거운 피로 손을 적십니다.
안느는 사건은 결국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건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아주 서서히 일어나고
어느 순간 절정을 맞게 되며 결국 파국을 맞지만
아무도 그 진실의 전모는 알지 못하며
기껏해야 조각조각 알 뿐입니다.
그건 안느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는 그녀 가슴 속의 이야깁니다.
이적과 김윤아의 노래 '어느 날'은 가사가 아주 짧습니다.
너의 뜻대로, 너의 뜻대로, 그의 뜨거운 피로 내 손을 적시고.
작은 떨림도 마침내는 멈추고.
무슨 일이든 큰 일일수록 '어느 날' 벌어집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 영혼과 육체의 괴리를 틈타고 스며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어찌된 일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거겠죠.
노래가 시작되기 전 괴이한 음이 흐릅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그 괴이한 음이 흐릅니다.
이적의 목소리는 굵고 단호합니다.
김윤아는 관능에 취한 높고도 나른한 음성입니다.
이 노래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죽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군요.
이 노래를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좋아하는 나는
이 노래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이적의 목소리가 아주 좋군요.
김윤아, 노래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노래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