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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20.11.15.) 말씀/ 데살로니가 전서 5:18 일상의 감사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추수감사절이 되면 우리는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감사제목을 찾아보았습니다.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나 개인에게 주신 은혜, 우리 가족들에게 주신 은혜, 우리 교회에 베푸신 은혜 등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 왜 당연한 일입니까?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도 하늘도 땅도, 바다도 공기도, 나를 나아주신 부모님도 먹을 것, 입을 것, 일상의 모든 것들이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의 선물들입니다. 설령 내가 수고 하고 애써서 재물을 얻었다고 해도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을 통과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또한 광야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많은 기적들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 했습니다. 뱀과 전갈이 우굴거린 거친 광야에서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도 어디서 사서 먹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때에 따라서 하늘에 만나를 내려주셨고, 목이 마를 때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셨고, 만나에 질려 고기가 먹고싶다고 할 때는 메추리를 보내어 신물이 날 때까지 고기를 먹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힘들고 어렵기는 했지만 눈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사랑을 보고 몸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감사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고백처럼 매순간 기적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살아남ㅇ르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르신 것처럼 여호와의 손이 짧지 않으심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2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민수기 11장 21~23절) 그런데 이들이 그 40년의 광야 길을 마치고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에 더 이상 만나도 하늘에서 내리지 않고, 반석에서 나오는 물도 마시지 못 했습니다. 대신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시내에 물이 흐르고, 손발을 걷어 부치고 땀 흘려 농사를 짓고 곡식을 수확해서 먹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이는 우리가 직접 수고해서 얻은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도 이제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방나라처럼 우리도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적이 사라졌으니 이제 하나님도 필요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이 끝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총이 사라졌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랑도 멈춘적이 없고, 기적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수고하였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할 힘과 능력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기적이 다른 모양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안에 기적을 베푸시고, 그들이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 그게 기적입니다. 시냇가에 물이 흐르는 것, 그게 기적입니다. 수고한 이마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과 우리의 마음을 시훤하게 해주는 맑은 공기, 그게 기적입니다. 사 41:18을 보십시오.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우리는 사실 항상 기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광대한 우주 속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항성들이 있지만 물이 있고 공기가 있는 곳은 지구밖에 없습니다. 우주 과학자들이 달나라에 금성까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탐사를 하지만 물 한 방울 없습니다.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없습니다. 언젠가 물이 흐른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으면 대서특필 입니다. 물이 있다는 것, 공기가 있다는 것은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근거입니다. 그렇다면 한 생명이 지금 호흡을 하고 있고 살아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다면 그게 기적 아니겠습니까? 우주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그야말로 신비하기만 한 기적 덩어리입니다. 유일하게 생명체가 사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일상에서 기적을 느끼는 사람은 모든 것이 기적이고, 일상에서 기적을 못 느끼는 사람은 어떤 기적도 없다. 다시 말하면 일상에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큰 감사 이지만 , 일상에 감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큰 것을 주어도 감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아가면서 물을 못 느끼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면서 은총을 모르고 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기적을 느끼고 감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호흡기를 입에 달고 사는 환자들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 인지, 그리고 평상시 우리는 방귀를 펑펑 아무렇게나 꾸고 코를 잡고 도망가지만 수술실의 환자들은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마음 것 배설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게 다 기적입니다. 성경은 말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가 무엇입니까? in all circumstances 모든 상황, 모든 형편에서, 일상의 모든 일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감사합니까?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께 먼저 감사해야합니다. 시편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이 착하시고 사랑이 많으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만일 법대로 사실대로하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요즘 정치 검찰 행태를 보십시오, 법대로 한다고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죽이지 않습니까? 법대로 하면 여당 야당, 기소하는 검찰, 재판관 모두 살아남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 얼마나 착하시고 사랑이 많은지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136 ;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큰 빛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와 죽음의 어둠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으니 이 예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다양한 빛들,모든 창조의 근본 이며 모든 생명탄생 존재의 근원적 소스인 빛을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빛이 없으면 식물도 동물도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영국이나 유럽 어디를 가도 잔디밭에 해 빛만 비취면 비키니 차림으로 누워 일광역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낮에 뭣들 하는가 하였지만 나중에 보니 날씨가 늘 흐리고 비가 오는 그런 나라에서는 해 빛이 귀해서 모든 옷을 벗고 해 빛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해 빛을 날마다 보며 산다는 것 큰 감사 제목 중에 하나입니다. 맑은 공기 마음 것 들이쉴 수 있는 것 감사, 좋은 물을 마음 것 마실 수 있는 것 감사. 씻고 마음대로 샤워할 수 있는 것 감사. 아프리카에는 흙탕물을 먹고 세균에 감염 되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기가 잘 들어와서 마음껏 쓸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인지. 전기 한번 나가보세요. 냉장고 음식 다 상하고, 캄캄한 밤에 촛불을 켜야 합니다. 전기 차단되면 올 스톱 해서 생활이 마비됩니다. 전에는 자주 있었는데 요즘은 몇 년을 지내도 전기 나간 적이 없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누울 곳 있고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도 감사. 추어지면 화장실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을 생각할 때 나는 따듯하게 쉴 곳이 있음이 감사됩니다. 밤이 오면 집도 없는 추운 바람 맞으며 산에서 잠을 청하는 바닷가 바피를 생각하면 잠자리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자, 큰 소리로 아멘 해봅시다. 해 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아멘, 날마다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사시사철 헤어지지 않는 신발과 옷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봄 가을 풍성한 오곡 백화, 과일를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근심걱정 없이 가족들, 자져들 보호해주심에 감사. 아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 여러분, 하나님은 머리칼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내일 일 염려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합시다. 아멘! 신명기 4:7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신을 모신 민족이 어디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정말 우리는 하나님 잘 믿었습니다. 그 세상에 수많은 신중에서 어떻게 딴 길로 가지 않고 최고의 하나님을 만나서 이런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아멘! 서로 축하 합시다. 하나님을 잘 만났습니다. 아멘! 몇일 전에 임재범 집사님이 기쁜 소식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하은이가 하나님의 은혜로 서울 모 교회에 전도사로 일하게 되고, 내년 일월부터 숙식도 제공하고 대학원 학비도 제공하는 은혜를 입었다고. 아빠가 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재범 집사님 가정에 주의 종이 나왔으니 큰 감사라고 축하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내가 많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더 가까이 감사 제목은 재범 집사님 자신이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경찰이라는 직업도 그렇지만 사실적 접근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판단하고 정죄하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가정 문제도 아내 자녀들과 관계 문제 직장에서 동료들과의 문제, 교회의 문제, 다 맞지만 사실적 접근은 답이 없습니다. 푸른 초장교회에 와서 잠시 좋았지만 또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예리하게 분석해서 사실적 접근을 하다보니 20가지 이상 많은 문제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 저는 아닌 줄 알았더니 저도 기소를 당한 것을 알았습니다. 안 걸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내는 스스로도 쳐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하나님께서 눈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랑의 관점으로 보는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당장에는 틀려도 사랑만이 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한 단계 성숙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달라지니 양아 집사님과의 부부 관계도 좋아지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은혜가 쌓여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 기도 응답들 감사하지만 가장 큰 감사는 우리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큰 감사입니다. 저도 올해 감사제목이 많습니다. 거창하게 추수감사 행사는 안 하지만 모든 게 은혜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중국 양들이 많이 돌아가고 대면 성경 공부도 못하고 예배도 잘 못 드리게 되었지만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며 우즈알 형제 한 사람을 성경공부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감사입니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로 인해서 마이너스 성장하는 가운데 기업마다 어렵지만 주영 정공을 지켜주시고 매월 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입니다. 김효주 선교사님 코로나로 인해 비자 문제로 잠시 귀국하였지만 믿음의 좋은 동역자로 함께 근호 형제도 돕고 또 고현옥 형제님도 함께 말씀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이 큰 감사입니다. 정상국 목사님 사모 먼저 보내고 어려운 시기에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영적 교제하며 섬길 수 있어서 감사입니다. 지난주부터는 독서 모임도 시작해서 새로운 희망과 새 힘도 얻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새벽 꾸준한 산 기도, 영어 공부, 독서도 할 수 있어서 감사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 15권을 마침내 다 읽었습니다. 장장 2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오래 전부터 한번 읽버봐야지 하면서도 그 양이 엄두가나지 않아 읽지 못했던 장편 로마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읽고나니 오랜 기간 읽은 것도 놀랍고, 또한 포기치 않고 ending에 이른 나의 인내심에도 스스로 놀라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재미는 없었습니다. 로마의 창시자 로무르스로부터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전쟁이야기,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이야기들을 계속 읽어주는 데는 사실 인내심이 필요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인내심을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재미없더라도 점심 저녁 먹고 커피 마시면서 몇 페이지씩 욕심내지 않고 읽다보니 마침내 끝을 보았습니다. 다 읽고나서 저는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습니다. 왜 모든 길은 로마라고 했는지? 왜 로마는 하루아침 에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왜 로마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는지? 왜 그런 로마가 망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물망처럼 연결 된 가도의 도로망, 방호벽, 정복 속주국의 로마 화. 그 범위가 독일 , 프랑스. 헝가리 처코 터기 스페인 영국,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미쳤고 그 당시 도로와 방벽이 아직도 곳곳에 있고, 옛날 로마의 가도는 지금 유럽 어디를 가도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만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로마가 세계를 제패한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속주 국들에 대한 포용성 관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적을 정복하고도 죽이거나 궤멸시키지 않고 포용하고 수용했다. 다 종교도 인정했습니다. 속주국 사람들도 로마인이 될 수 있었고, 속주 출신 황제도 나오고, 나중에는 야만족 출신 로마 군사령관도 나왔습니다. 마치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오고, 동양인 상 원 하원 의원이 나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로마는 과연 세계를 담을 수 있는 큰 그릇 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로마의 멸망 원인도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멸망의 원인과 시점을 찾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세계를 포용하고 다 받아들이다보니 정작 로마는 누구의 의해서 멸망했기보다 그렇게 세계화 되면서 점점 특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로마의 흔적은 지금도 세계도처에 남아 여전히 정신 유산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로마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하루아침에 망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세계를 품고, 세계 속으로 스며들었다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로마에 의해서 기독교는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로마는 또 기독교를 국교 화 했습니다. 로마를 통해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주적인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세계를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소금과 같이 세계 속에 녹아져 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품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세상에 스며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개인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세상 속으로 스며들며 세상을 살리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결론적으로 감사는 특별한 것만이 아닙니다. 기적도 알고 보면 일상인 것처럼 감사도 알고 보면 모든 일상의 일들이 다 감사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을 뿐입니다. 특별한 일은 특별한 일대로 감사하지만 앞으로는 일상의 모든 일들을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행복하고 또 그 행복을 나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
첫댓글 목사님 전에 목포대 04학번이었던 베드로형제입니다. 사죄의 말씀드릴 길 찾다 이렇게라도 남겨야 할 거 같습니다. 전에 푸른초장교회에서 숙박할 때 자다가 그때까지 끊지 못한 죄로 인해 부끄러운 일 했던 일을 고백하고 목사님 사모님이나 아무튼 그저 용서를 구하고 위 말씀처럼 급히 사화해야 할 거 같아서요. 양해를 구하고 용기를 내서 말씀드립니다. 정말 정말 죄송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저의 상태가 회개(죄를 끊는 일)가 안된 이러 저런 죄 가운데 있던 상태라서 그런 죄들을 스스로의 결단과 믿음의 노력으로 끊어야 주님이 일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을요. (저의 죄의 열매만 맺어지던 당시가 정말 고통스럽고 정신이 없었더랬습니다.) 그런 저의 책임과 의지의 역할을 비양심적으로 덮는 핑계로 주님이 하십니다 라는 말을 아무리 주문처럼 읇조려도 성령님의 일하신 열매는 맺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라도 반갑기도 한데요 메일 보내기가 안되어 갑작스럽게 이곳에 이렇게 남기어 죄송합니다.
그저 죄송하고 정말 죄송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귀하고 좋은 일들 많으시길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