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 날 아침 때 맞추어 하늘이 내린 새하얀 눈의 축복이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생활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론적 삶에 대해서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성경속에 깊숙이 파묻혀 보석처럼 빛나는 계명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복음 22장 40절)”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복음 13장 34-35절)”가 먼저 떠 오릅니다.
그리스(Greece) 사람들은 사랑을 몇 가지 종류로 구분하고 각기 다른 이름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Eros는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Storge는 가족 구성원 간에 느끼는 혈연적 사랑입니다. Phileo는 친구들 간에 느끼는 우정입니다. 그리고 Agape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숭고한 헌신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Agape적인 사랑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Agape적인 사랑의 전형적인 사례가 코린토 1서 13장 4-7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나이든 사람들에게 종교에 입문하는 동기를 물으면 대개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 라고 대답합니다. 종교에 입문하는 사람의 이런 사고는 신앙의 성스러움과 신비에 심취하여 일생을 오직 성직에 헌신하기로 작정한 성직자들에게는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기적인 동기에 불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초월적이고 심오하고 헌신적이기 때문에 무어라고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정의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선(善)행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지속적인 선행을 통하여 자선에 맛을 들이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머무는 하느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감리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John Wesley는 신앙에 관한 모토(motto)에서 선(善)을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Do all the good you can,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선(the good)을 실천하라.
By all the means you can,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In all the ways you can,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In all places you can,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At all the times you can,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활용하여,
To all people you can,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As long as you ever can,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중단 없이.
John Wesley의 선행권유 사전에는 오직 다다익선(多多益善)만 있을 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절제 적인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행은 희망, 자비, 믿음 인내, 포용, 활력, 관심, 기쁨, 박애, 절제, 헌신, 겸손, 검소등에 뿌리를 둔 일상 생활에서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건전한 존재론적 덕목들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선(善)이라는 단어가 아홉 번이나 등장하는 특별한 장구가 있습니다. 도덕경 제8장의 원문과 그 뜻을 아래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수선이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處衆人之所惡,故幾於道)
“거선지(居善地)
심선연(心善淵)
여선인(輿善仁)
언선신(言善信)
정선치(政善治)
사선능(事善能)
동선시(動善時)”
부유부쟁 고무우(夫唯不爭 故無尤)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시림들이 싫어하는 낮은데 머물기 때문에
물은 도에 가깝다고 하겠다.
“거처함에는 지역을 잘 선택해야 하고
마음에는 깊이가 중요하며
사귐에는 인자함이 (중요하고)
말에는 믿음이 중요하다.
정치에는 잘 다스려 짐을 으뜸으로 삼고
일처리에는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움직임에는 때를 잘 가려야 한다”
오직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무릇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는 것이다.
번역은 ‘노자의 그리스도교의 이해(김승혜 지음)에서 인용.
여기서 인용구안에 포함된 7가지 선(善)은 노자가 생존할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던 격언이라고 합니다. 노자가 말하는 물의 속성과 당시 격언이 내포하는 일곱가지 선(善)만 잘 지켜도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사회인으로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릅니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지금 남의 잘못을 낱낱이 들추어 내어 남을 탓하고 깎아 내리며 불평하는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사람을 똑똑한 사람으로 잘못 판단하여 경모의 대상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채근담에 자기반성을 하며 선(善)순환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사람과 남 탓하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부정적인 사람에 대해서 전자를 격려하고 후자를 경책하는 좋은 글귀가 있어 여기에 그 원문(채근담 147장을)을 소개합니다.
반기자촉사개성약석(反己者觸事皆成藥石)
우인자동념즉위과모(尤人者動念則爲戈矛)
일이벽중선지로(一以闢衆善之路) 일이준제악지원(一以濬諸惡之源) 상거소양의(相去宵壤矣)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겪어도 모두 좋은 약이 되지만, 남을 탓하는 사람은 생각이 움직일 때 마다 그것이 스스로를 해치는 흉기가 된다. 하나는 선의 길을 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되니, 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 번역은 ‘셰익스피어와 함께 읽는 채근담 (이병국,이태주 지음)’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선과악의 기로에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인가를 기준점으로 해서 생각하다 보면 결국은 사람의 행동은 선 쪽으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선(善)을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의 발현 이라고 볼 때 선을 행하는 것이 결국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할 때 타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솟아난다는 추론을 끝으로 성탄절아침 묵상을 마칩니다.
최근 연말 가족 모임에서 유아원에 다니는 필자의 손녀 딸이 무슨 말끝에 ‘아빠는 물 같은 사람이다.’ 라고 말하여 모임에 참석한 가족들이 한바탕 웃음 보를 터트린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글에서 노자가 말한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를 소주제로 삼아 사람이 생활속에서 사랑에 이르는 경로를 살펴봤습니다.
새해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준비하는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올 한해 제가 쓴 글을 읽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2023년 주님 성탄 대축일 아침 정해균 베르나르도 올림
첫댓글 한 해동안 좋은 글, 고맙습니다.
낙타의 길을따라 가는길에는 북극성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