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배꽃 피고 지는 지심도의 봄
이른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서 거제의 장승포항 언덕 위에 올라갔다. 구름이 많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 가는 날이면 일출의 모습을 보기위해서 나선다. 언덕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바람이 분다.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면서 하늘을 보니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바로 그 때 구름 위에 태양이 올라온다. 해돋이의 모습이었다. 구름에 솟아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오는 것을 느낀다. 바다에서 솟는 태양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하늘에 떠 있는 하루의 시작이 참 기분을 좋게 만든다.
지심도에 가기 위해서 선착장에 갔다. 지심도에 가는 첫배가 8시에 있다. 5분전에 배를 오르니 정시가 되어서 장승포항을 출발했다. 바람이 그리 많이 불지는 않았지만 넓은 바다로 나가니 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배 위에서 사진을 담는 것을 포기하고 선실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선실에는 사십 여명의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장승포항에서 지심도까지는 5km정도 되는데 배로 15-2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지심도는 위에서 내려다 본 섬의 형상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只心島)'라 불리운다고 한다. 출발한지 20분 만에 선착장에 닿았고 우리들은 배에서 내렸다.
선착장에서 지심도의 지도를 살펴본 후에 지심도 트래킹에 나섰다.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서 동백숲속에 젖어 들었다. 중간에 주민들의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민박을 하거나 음식점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안절벽으로 가면서 동백터널을 통과했는데 지심도에는 동백터널이 곳곳에 있었다. 지심도 자가 발전소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동백수풀 속으로 난 길을 따라서 걸었다.
계절은 이미 봄의 문턱을 넘어서고 겨우내 참았던 봄꽃들은 하나 둘 앞을 다투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지심도의 동백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3월에 절정에 달하고 봄이 무르익는 4월이면 꽃잎을 감추는데 우리들의 세상에 겨울과 봄 사이 간절기의 공백을 아낌없이 메우고서 간다. 동백꽃은 완전히 피어났을 때는 선홍빛 자태를 뽐내는데 그 정렬적인 힘이 없어지면 선혈처럼 땅에 떨어져 꽃잎이 바닥에 누워있을 때 그 붉은 가슴속의 사랑도 함께 누워있는 것이다.
작년 여름에 제주도의 올렛길을 걸을 때는 바다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곳은 동백나무숲길을 걸으면서 나무와 함께한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아름드리도 많이 있고 막 솟아오르는 것도 있다. 사실 나에게 동백꽃하면 여수 오동도, 선운산 동백 그리고 서천 동백정의 동백이 생각이 났는데 이번 지심도를 걸으면서 내 생각은 우선 순위가 지심도 동백이 되었다.
동백나무는 밑에서 가지가 갈라져서 관목으로 되는 것이 많다. 나무껍질은 회백색이며 겹눈은 선상 긴 타원형이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다. 잎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잔 톱니가 있고 윤기가 있으며 털이 없다.
동백꽃은 이른 봄 가지 끝에 1개씩 달리고 붉은색이다.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져서 비스듬히 퍼지고, 수술은 많으며 꽃잎에 붙어서 떨어질 때 함께 떨어진다. 암술대는 3개로 갈라진다.
동백은 날씨의 변화에 의해서 우리가 사는 충청도에서도 자라나 꽃을 피우는 것을 보았다. 동백은 관상용으로 하며, 종자에서는 기름을 짠다. 동백꽃의 꽃말은 ‘신중·허세부리지 않음’이라고 한다.
지심도에는 빨갛게 물든 동백꽃이 섬 전체에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 섬을 동백섬이라 부른다. 지심도는 섬 전체가 군사보호지역으로 아직은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발걸음 떼어놓을 때 마다 동백꽃잎이 보인다. 동백나무가 이 섬에 가득한데 그 아래를 걷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지심도 이 섬 자체가 제주의 올레길이나 지리산의 둘레길 처럼 걸으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발되지 않고 파손되지 않은 자연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어 파괴가 될까 걱정이 되었다.
동백나무 숲속에 길이 생기면서 그 길을 시멘트포장을 하고 또 민박집으로 향하는 길을 계단으로 만들어놓아 자연의 원래의 모습을 잃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지심도에는 작은 밭이 있어 그곳에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그리 양은 많지 않겠지만 경운기도 있어 밭을 갈기도 했다.
흙냄새 풍기고 향기로운 바람이 불 때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은 걷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우거진 동백터널과 하늘을 뒤덮은 야생의 상록수림 속을 걸어갈 때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새봄의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 같다.
매화나무도 있어 하얀 꽃을 피운 모습이 참 예쁘다. 한참동안 동백꽃에 빠지고 매화향에 젖어들 때 시간이 정지되어있는 것 같았다. 섬에는 가족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았고 한 등산모임에서 배를 대절해서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섬도 너무 알려져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지심도에도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지심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해군기지였는데 당시 군사시설인 포진지 터와 탄약고 등 아픈 역사가 남아있어 그곳을 지나는 우리들을 씁쓸하게 한다.
소매물도 처럼 지심도에도 차가 다닐 만큼의 큰 도로가 없다. 겨우 어른 두세 명이 지나다닐 도로만 있는데 대신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가 마을과 선착장을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데 민박집에 오는 손님들의 짐을 실어나르는 모습을 보았다.
지심도는 면적 0.36㎢, 해안선 길이가 3.7㎞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해송, 후박나무, 동백나무, 해국, 곰솔, 송악 등 37종의 다양한 수목과 식물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전체 면적의 60%~70%를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어 동백섬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넓은 바다에는 자리돔, 학꽁치, 놀래기, 뽈락, 전복, 해삼 등 풍부한 어종이 있어 그곳을 찾는 낚시꾼들이 많이 있다.
동백꽃은 겨울부터 피어나지만 꽃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이맘때쯤의 3월이라고 한다. 동백꽃이 한겨울에도 피기 하지만, 날씨가 몹시 춥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꽃망울을 잘 터뜨리지 않는다. 찬바람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적당한 기온과 일조량이 연일 계속되는 3월이면, 겨우내 미처 터지지 못한 꽃망울들이 서로 뒤질세라 앞 다투어 꽃을 피워내어 관광객들의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지심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정해진 시간은 없는데 보통 2~3시간이면 여유롭게 섬을 둘러볼 수 있다. 8시부터 10시까지 돌아본 후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니 한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인데 아무리 새우를 뿌려도 물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춥기도 했지만 비가 내려서 촬영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10시 50분에 배에 올랐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는 배를 탄 것이 아니라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를 탄 것 같았다. 어른들은 걱정이 되는데 아이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솟아오른다.
지심도 동백
바람의 무게가
가벼워지던 날
장승포 앞바다는
무게를 털어낸 바람을 내어
파란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런저런 사연을 담고
온몸 흔들면서 달려가는 곳엔
벌써 초록빛 세상이 몸을 풀고
그 사이
두근거리는 세상
붉은 웃음을 내어
산으로 오르는 길을 보여 준다.
너에게로 가는 길에는
초록빛 터널이 수군거리고
봄빛 가득담은 동백꽃이
요염한 몸으로
가뭄에 잠긴 나를 유혹한다
지심도에
물오르지 않은 동백이 있더냐
하지만 너는
온몸으로 솟아올라
내 가슴속 아껴두었던 노란 빛을 빨아들이고
다시 나에게 달려들어
뜨거운 글씨를 쓰는 구나
온몸이 자지러지게
써 내려가는
검붉은 언어로
내 온몸은 마비되고
너는 어느덧
내 몸 속으로 달려들고 있다.
신열에 젖어든 날
바람은
내 몸에 깊은 길을 내고
네 가슴속에는
흔들리는 육자배기 가락을 섞어
새봄의 노래를 담는다.
질펀한 몸과 마음을 위하여
첫댓글 역시 선생님의 글은 맛이 있어요~~
ㅎㅎ 고맙습니다. 그냥 그냥 써 내려다는 거에요
도대체 그 섬에 동백이 얼마나 많길래~ 동백섬이라 불릴까? 찬바람 물러가고, 계절은 이미 겨울은 넘어 봄으로 향하는 데 거제에서도 붉은 빛이 짙다는 지심도! 선생님의 글과 사진을 통해 붉은 동백이 피고 지고... 아리고 묘한 멀미가 잊는듯 합니다.
동백을 만나면 취해오는 것을 느끼지요 그 안에 머무는 것이 붉은 빛이 되어서 자꾸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요
인간도 자연에서 났다지요. 그래서 그런지 자연과 하나되는 순간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는것 같아요. 가슴 설레는 여행, 그리고 동백과의 만남. 부럽습니다.
원추리님
가끔 여행을 하면서 꽃을 만나지요 꽃을 보면 마음도 꽃처럼 붉게 물들어요 이번 지심도 여행이 그러했답니다
늘 아름다운 곳에 가셔서 아름다운 마음을 품고 오시는 군요....좋은 사진, 좋은 글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