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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곧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 몸은 성전이다〔身即伸展〕
다석 유영모 선생님은 몸성히를 일순위로 강조를 했어요.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다섯 체조로 우리 49일 수련 모임에서도에 15분 동안 이 다섯 체조를 합니다.
어 지난번에 시범을 보였는데 사용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내 건강을 지키는 운동 안 하나는 꼭 챙겨서 해야 되거든요. 저는 오장운동을 기본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하는데, 이 손가락 치는 분이 뼈를 치는 거예요.
뼈를 치고 이 진동이 몸전체를 보거든요. 내 앞으로 이걸 해야 돼요. 이 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놓치지 않고 해서 건강을 지켰어어요. 그래서 예전에 아흔 한살이면 상당히 장수한 것이다. 아흔 한살 수명을 누렸고 그 다음에 그분은 밥에 대해서는 하루에 한 끼씩드셨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거 하려고 애를 쓰는데 어찌 됐건 이 밥 얘기가 이 성전과에 결부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여러분들이 이 신즉 신전에 대해서 확실한 이해를 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뭐 우리 우주가 생긴 지가 165년이라는데 우리 인생 살면 한 백 살 길어봤자 한 100살 사는데요. 아니 잠깐의 세월을 우리 생활 말년에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지구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되겠죠. 바로 그런 지혜를 신즉 신전이 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여러분 다석 선생님이 이 신즉 신전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는데 그냥 2개를 내가 골랐습니다.
그것를 한번 볼까요, 밥 먹고 자지 말고 밥 먹고 깨어나도록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은 재물이다. 바울은 너의 몸은 성전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줄 아는 사람만이 능히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 말이에요. 내 속에 계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을 먹는다는 것은 예배요 미사다.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재물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밥을 먹는다는 말이다. 목구멍으로 삼키는 밥이 아니겠죠?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그런 마음으로 밥을 먹으라는 거죠? 그 밑에 또 하나의 글이 있죠 맞습니까? 밥에 대한 또 다른 말씀이 있는데 이걸 우리가 잘 읽고 여러분들이 좀 새겨서 석줄정도로 요약을 해가지고 그걸 모아서 우리 찬송가를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게 제 뜻이에요.
여러분들 한번 이번 주에 생각하셔가지고 카톡방에 올려주시면 그냥 그걸 모아서 곡을 붙여가지고 하늘님이 붙이면 잘 붙일 것 같으니까 우리가 고백하는 내용을 가지고 찬송을 불러야지. 찬송가의 찬송들이 너무 옛날 곡도 많고 그러는데 좀 욕심을 좀 내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알찬 쌀을 쪽정이 같은 내가 먹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중생인 부족한 우리로서는 떳떳하게 먹을 수는 없다. 참으로 미안하기 그지없으나 그렇다고 안 먹을 수 없으니 먹는 것이다. 그러니 먹는 까닭은 구차한 생명을 연장하자고 먹는 것이 아니다. 몸삶을 연장해서는 무엇을 하겠는가? 아까운 밥만 썩일 뿐이다. 그보다는 이제라도 깨서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깨우치는 약으로 먹는 것이다. 사람이 얼나를 깨달은 참사람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먹는다. 그렇게 되면 조금이나마 쌀에 대하여 덜 미안하게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쌀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니 그곳에 욕심이 붙을 수가 없다. 식탐(食貪)의 욕심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깨는 약으로 먹는 것이다. 하느님께로 나아갈 길을 바로잡는 것이 인생의 사명이다.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밥을 먹어야 한다.
심오한 말씀이죠 동광원에 오셔서 다석 선생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내가 여러 번 들었던 것은 사람이 쌀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나요? 시옷 하나가 빠졌네. 살이 쪄요 나는 그냥 살이 쪄. 그리고 성장의 마지막 단계에서 시옷 하나가 또 떨어져 그럼 알. 알 속알, 얼이 된다.
그러니까 살만 찌면 알맹이가 없는 핏덩이 같은 그런 인생을 하는 것이다. 뭐 그런 말씀을 강조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쌀 살 알에서 얼 이렇게 순서가 되는 거죠?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삶이라는 걸, 삶 참 그러면 우리나라 말에서 동사가 미음이 붙으면 명사가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살다 그 살다에서 어간을 보면 사르다 사르다 뭐 불사르다 이런 거 있잖아요. 이게 내 기운을 이 에너지를 사르는 것 이게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몸이 하는 역할이잖아요. 불의 호흡은 그 마신 산소가 우리 안에서 불의 에너지로 탁 연소를 해요. 우리가 먹은 음식이 어때요? 거기서 에너지를 뽑아서 살라고 네 불의 에너지로 뭔가 역동적으로 내 안에서 대사 작용으로 하는 곳 그것이 있어서 우리가 이제 움직이고 이렇게 안고 뭐 생각하고 그런 것이죠.
네 그래서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고 돌리는 건데 다석선생은 우리는 네 에너지를 통해서 그 사료는 에너지를 통해서 힘을 불리고 얼을 돌리는 그게 사람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뭐예요? 내 안에서 뭔가 새로운 에너지가 도는 것이고 그 에너지를 통해서 우리는 삶을 돌리는 네 삶을 살아다 그게 이제에 우리 인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산다는 것은 뭐요?
불을 일으키는 거예요? 불을 일으킨 거야? 네 불 근데 이 불이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돼요. 원자력발전소로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전기를 발생시키고 그러지만 하나로 터져버리면 문제가 생기죠.
포탄이 돼, 핵 발전소가 제어를 못 해가지고 터져 버리면 후쿠시마 같은 일이 벌어져요. 체르노빌 같은 일이 벌어져 버려요. 인간의 재앙은 뭐예요?
제대로 사르지 못하는 데 있다. 그런 말씀이에요?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은 불을 일으키는 것이고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은 뭐예요? 하나님 주신 내 안에 그 양반 바탈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그 바탈을 잘 태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들이 참 많아요.
그 재능을 아끼지 말고 네 그걸 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아끼지 말고 아낌없이 네 잘 사용하라, 뭐 이런 말씀으로 삶에 대한 어떤 정리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말씀 하세요. 하루 한 끼를 내가먹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을 제대로 드리기 위해서 한끼 식사를 한다. 이제 두 끼는 어떤 식사냐면 예 하나님 앞에서 내 정신과 육체를 사르는 거예요.
입으로 안 들으려면 어때요? 내 몸 안에 있는 걸 태워야 되잖아요. 어 바탈를 태우는데 쓰기 위해서 사람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그 분은 한 끼 식사를 했어요.
「마음이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숨님도 그런 일 말씀하셨지만 먹는 즐거움이 있지만 안 먹는 기쁨이 있다고 그래서 그 기쁨이 오히려 그 맛을 알아서 안 먹는 시간이 오히려 더 기다려지는 그런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명의 죽음을 먹는 아 그런 시간이죠.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장례식이다. 음식이 사실은 식사라는 게 근데 그것을 과다하게 탐한다. 아 이것은 역효과가 납니다 .적게 먹어서 오늘날 사람들이 죽어가는 건 아닐 거예요,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지. 생명의 장례식을 좀 줄이고 내 자신의 어떤 정신과 육체를 새롭게 하는 살아있는 제사로서의 어떤 식사 그걸다석은 제자들에게 강조하시는데 한 한때 한 끼를 해보니까.
어 활동량이 많아서 그러는데 너무 갑자기 해서 그런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 김흥호 선생님한테 한 끼 식사 좀 해보려고 그랬더니 아 너무 힘들다고 그랬더니 그 양반은 그랬어요? 나한테 5끼 먹어도 괜찮다고 밥값만 제대로 하라고 나는 그 말할수록 고맙게 생각했는데 한편 생각하면은 내 근기를 그렇게밖에 못 보셨나 뭐 이런 생각도에 해 봅니다. 네 신즉신전 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그게 최고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해요, 물질의 덩어리로서의 내가 아니라 육체의 덩어리가 아니라 존재의 극점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어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그 신전, 그 성전이 바로 나라고하는 거, 바울 사도도 고린도서에도 말씀하셨지만에 이런 말씀을 하신 분들이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이 시대에 우리가 잘 유지하는 거죠?
아무런 일이 아니고 음식을 정말 산제사로 드릴 수 있는 거기에 길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일식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계시더라고 또 지난번에 저 지리산에 즐거운님이 초대를 한 분이 하나 있어 그분은 타국분인데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않고 있습니다. 물만 요리는 차만 마시고 그럼 그거 알아보니깐 네 그런 분들이 있더라고요.
이게 어 그러니까 꼭 먹는 것만이 어떤 에너지 cal만이 인간을 식사를 규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 하마터면 시에서에 그 어 김광석 장로님 얘기를 써놨는데 이 김광석 장로님은 태안사 그 절 바로 그 앞동에 대지주였어요. 지주였는데 옛날 부자들은 미덕이 하나 있지. 사랑채를 손님방으로 해서 이렇게 제공하는 거, 밥도 먹여 먹여주는 거 그게 이제 그 마을에 또는 그 집에 그때 찾아온 손님들에 대한 예우였죠.
그래서 큰 부자는 사랑채가 커요. 묵어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그 사랑체에 이현필 선생님이에 묵게 됐어요.
근데 주인이니까 그 손님 대접 겸해서 이제 제자들을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에 참석을 했는데에 그날 사람이라고도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짐승의 짐승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지성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영혼을 가지고 하늘에 불을 받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 세 가지 사람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장로님이 감격이 왔다.
어떻게 하면 하늘에 불을 받은 사람이 될까요 그래서 그날 밤에 말씀을 듣고 다음날 출가를 했어요 그래서 조카를 불러 갖고 그 다음 날이 모심는 날이었대요. 모심는다는 것은 농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내 살림은 니가 맡아서 해라 하고 다음날 이현필 선생님 따라서 출가를 했다는 거예요?
베드로나 이런 분들이 배 버린 것하고는 차원이 다를 이야기야. 그 지주의 재산 하고 비교를 할 수 있겠어요.출가하고서 평생을 집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아들이 그쪽에 부군수야. 아버지 모시려고 무던히 노력을 했는데 끝까지그 길을 가셨어요.
김광석 장로 그분이 나한테 얘기를 했어, 그래서 지리산 저 속에 머리 끝에 끝에 어디 움막은 사라졌고 그 텃자리만 있더라고요? 그곳을 내가 찾아갔는데 지리산 그 어디야 견두산은 그 산꼭대가 일제시대 때 심사참배 피해서 어 산꼭대기에 있었어요. 그 집터에 가보면은 빈상만 두 개가 있는데 거기서 혹시 한 십리되나? 지리산 등산길을 가는데 거기서 그 누가 떡 한덩이를 주니까 그 장로님에게 떡을 주고 싶다고 그떡을 품에안고 갔어요.
그런데 그 양반은 신발도 안 신잖아 세상에 엄동설한 한겨울에 눈이 빠진 그 지리산 눈산을 걸어서 십리를 가니까 몸이 얼지 않겠어요? 근데 아까 찬송을 부르면서 가셨는데 김광석 장로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렸데, 내가 혼자 외롭게 있으니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시는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 있으니깐 거적데기 문이 딱 열리면서 이 선생님이 딱 들어오시더라고요. 그냥 쓰러지듯이 떡을 줬어요. 장로님은 그 애기 하실 때마다 울어! 그 사랑으로 평생을 그렇게 사신 것 같아요. 그리고 나는 밥을 안 먹고 금식하고 있었는데 라면을 하나를 풀어갖고 그래가지고 미숫가루를 한 숫갈 타세요. 그것이 끝이야. 저게 몇 칼로리나 될까.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분에게 내가 관운장 같다고 표현했어요, 대추 빚으로 아이고 그냥 그렇지. 영양학자들이 말하는 cal 참 별거아니구나 어. 아무리 좋은 걸 많이 먹어도 근심하고 내가 원한에 사무처 있고 그러면 살로 갑니까? 네 어떻게 저 그 미숫가루 한숟가락을 라면을 풀어놓고 뭐 반찬도 없이 그거 뭐꼬, 어떻게 저런 얼굴이 될 수 있을까?
근데 내가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딱 보니까 그 태안사 절위에 있거든, 갑산 그 위에 있는데, 주지스님이 오후 아침마다 상좌를 보내면서 문안드리고 초 갖다 드리고 이렇게 챙겨주셨습니다. 네 영양이 아니라 그 모든 어떤 탄진치를 다 내놓는 사람은 달을 봐도 달이 에너지고 앞산에 소나무들이 다 저 분의 밥이겠네.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세상을 버리고 다 출가한 사람으로서 누리는 어떤 그런 기쁨이 있어요.
네 진짜 밥을 못 드시는 분이 저분이구나 그런 충격적인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드실 때마다 내 앞에다 갖다 놓고 아이 같이 먹지, 같이 같이 먹자고 그러는데 나도 자존심이 있지. 얼마나 먹고 싶어, 며칠 굶으면 그 냄새조차도 향기롭잖아요.
네 안먹는 기쁨, 기쁨과 함께 안먹는 고통도 있어, 이게 유혹이 크잖아요, 그래서 먹고 안 먹고에 대한 거 그 집착만 내려놔도 진짜 마음을 얻는데,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겠다. 그런 교훈을 김광석 장로님께 받았고 그 양반이 그 힘은 또 어디서 왔을까 그 이현필 선생님에 옆구리 끼고 그 지리산을 그 맨발로 걸어갔다, 아 그 산이 굉장히 그 뭐랄까? 어 이 거친 산이거든요.
거기까지 신발신고 걸어가는데도 굉장히 시들었는데 한겨울에 눈쌓인 길을 그렇게 걸어가서 떡한덩이 가져다 주면다 얼마나 충격적인 경험을 했어! 그 사랑으로 그 양반은 이 지구에서의 삶을 잘 건너가셨고 모든 걸 밥으로 먹을 수 있는 경지까지 가셨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남원 동광원에서 세상을 뜨고 운명하셨는데 내 가 살아가면서 참 뭔가 교훈과 감동을 나에게 주신 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뭐 이번 주 중에 석줄 정도만 그냥 떠오르는 대로 뭐 지을려면 떠오르는 대로 써서 우리 카톡방 채널에 카톡방에서 올려주시면 좋겠다. 송옥현 권사님처럼 어 내가 뭐 이제 나이가 드셔가지고 건만증도 왔다 갔다 하시는데 어 사람 이런 아름다운 그럴 수 있으세요? 이게 바람 덕분에 열매는 영글고 다 아는 얘기죠?
땡볕 덕분에 이 감들이 단 맛이 나고, 모르는 말을 없어! 별들 덕분에 잡초는 꿈을 꾸고 그 정신이 살아계시니. 우리들 영혼이 뭔가 내놓는 우리 언어들을 아 우리의 노래를 좀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이걸 이 표현을 하고 있거든요 거의 그래서 교우들이 만난 노래를 노예배 시간을 막 불러요.
찬송가만 한두 곡 부르고 가는 게 아니라 어 그래서 우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게에 지난번에 지금 여기 교회에 가 가지고 느꼈어요 여기 목사님 덕분에 눈을 떴네! 이런 구절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