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순 崔惠淳 (1900~1976)】 "김철(金澈) 부부 독립운동가로 활동"
최혜순(1900∼1974) 선생은 1931년 11월 제23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전라도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전남 도립병원 간호사 출신인 최 선생은 임정 국무위원이던 김철 선생과 결혼해 상하이에서 부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김철 선생은 임시의정원 3대 여성의원인 최혜순 선생의 남편이다. [신용하 교수 제공]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임정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인각단체대표회의를 소집했는데 이때 회계를 담당한 이가 최혜순 선생이다.
최혜순(崔惠淳)[1900~1976]은 전라남도 광주부 학강정(鶴岡町) 130[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태어났다.
전라도립병원 간호사 출신으로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이던 김철(金澈)과 결혼해 부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최혜순은 1922년 2월 8일 제10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大韓民國臨時議政院) 회의에서 여성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김마리아·양한나·방순희·김효숙·지경희·신정완 등과 함께 여성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11월 제23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전라도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1933년 2월까지 활동하였다. 1933년 상해한인애국부인회(上海韓人愛國婦人會) 집사장(執事長)으로 3.1운동 기념일에 민족적 역량을 집중하여 독립운동을 완성하자는 내용으로 '3.1기념' 전단을 배포하고, 8.29기념일에 '국치기념'이라는 제목으로 전단을 발행하고 배포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이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경영하며 1936년 3월 서판암(徐判岩)의 남경군관학교(南京軍官學校) 입교를 주선하고 국내와의 연락 및 독립 자금 마련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최혜순은 1976년 사망하였다.
묘소는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605-1에 있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