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이식수술 후 30년간 건강하게 생활하신 분의 이야기 소개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1979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 당시 이식수술을 하더라도 5년 정도 살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고, 가족으로부터 신장을 받아 수술 후 현재까지 30년간을 건강하게 살아온 김창세 씨가 수술하였던 연세의료원의 의료진에게 보낸 감사의 글입니다.
연세의료원에서는 김창세 씨의 장기이식 30주년을 맞아 12월 1일 세브란스 은명 대강당에서 병원장, 장기이식센터장, 당당교수 등 의료진과 장기이식환우 300여명이 참석하여 성대한 기념식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김창세씨가 수술후 30년을 넘긴 분 들을 대신하여 의료진에게 감사인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김창세 는 1970년대 기상청에 입사한 후 발병하였고 이어서 수술도 하였으며 기상서기관까지 승진하여 기상청의 여러부서에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하였으며, 현재 62세로서 건강하게 등산도하는 등 일상생활을 모두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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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사 의 글
안녕하십니까?
오늘 연세의료원 장기이식 30주년 기념행사를 축하드리며 기념식을 위하여 이렇게 성대한 자리를 마련하여 주신 이철 세브란스 병원장님 그리고 장기이식 센터장 김 순일 선생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79년 11월에 이곳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박기일 교수 팀 으로부터 신장이식수술을 받고 현재까지 건강하게 살아오고 있는 김 창세 입니다.
저의 병이 만성신부전이라고 처음 알게 된 것은 1979년 7월경 감기와 약간의 호흡곤란 증세로 모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진료를 받은 후였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한 결과 신장기능이 10%이하로 떨어져 담당 의사선생님은 혈액투석을 권하였습니다.
저는 곧바로 혈액투석을 위한 손목 혈관수술을 받았고 그 후 주 2회 인공신장실에서 혈액투석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만해도 혈액투석을 하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일로서 얼마 못가서 생을 마감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들을 꼭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신장이식을 하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담당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신장이식을 해도 5년 살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저의 가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저의 가족은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어느 곳으로 갈까 망설이던 중에 저를 잘 아는 친척 한 분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추천하였습니다. 곧바로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박기일 교수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하였습니다.
교수님은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잘 받고 사후관리만 잘 하면 자기수명까지 살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저의 가족은 뛸 듯이 기뻤으며 곧바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입원을 하였습니다.
당시 우리 식구는 부모님과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가 있었는데 신장 제공자를 결정하기위하여 온 식구가 혈액형 검사를 하였으나 저와 같은 O형인 사람은 여동생 뿐 이었습니다. 저의 가족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이24세, 아직 미혼인 여동생에게 수술을 요청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동생은 오빠를 살려야겠다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흔쾌히 신장을 제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장이식수술을 하기위한 각종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11월 8일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때가 제 나이 서른 두살 이었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이제 모든 것이 잘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난 순간부터 사후관리 라는 새로운 진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술 후 상당기간 무균실에 있었으며 외부인과 면회도 엄격히 통제되었고 의료진은 환자의 섭취량 소변량 혈압 체중 등 을 철저히 점검 했습니다.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매일 매일 신장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 졸였던 시간, 검사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였던 때와 의사, 간호사선생님의 정성어린 진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저의가족과 저는 퇴원을 한 후에도 의사선생님의 주의사항을 100% 실천 하려고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아마 오늘 참석하신 여러 환우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과정과 우여곡절을 겪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수술 후 진료와 요양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어느 날 저에게 또 다른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복용하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고관절의 연골이 괴사되는 병이 저에게 찾아와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에서 81년 5월경 오른쪽 인공 고관절 수술을, 89년 10월경에는 왼쪽 수술을 받았으며 다행히도 예후가 좋아 지금은 아무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생각해보면 저의가족과 저는 모 대학병원에서 상담한 것처럼 이곳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이식수술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말씀하셨다면 저는 아마 수술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술전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환자와 보호자가 신뢰감과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여 무사히 수술을 받게 해주신 박기일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우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신장이식 환자들을 돌보면서 관리와 진료를 해 오신 이식외과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가족과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의료진 여러분들은 저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의 정성과 땀으로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데 제가 관리를 소홀히 하여 건강을 잃으면 저를 위하여 애를 써주신 여러분들께 얼마나 누가 되겠습니까?
건강하게 살면서 가족이나 사회를 위하여 보람된 일을 하는 것이 그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신장이식수술을 한 날은 저에게는 제2의 생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의생일은 제 부모님의 몸을 빌려 하나님이 저를 태어나도록 하셨다면 제2의생일은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의 의술을 빌려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고도 정성스러운 진료를 꾸준히 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저와 여러 환우님이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신 세브란스병원 의료진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앞으로 연세의료원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 년 12 월 1 일
김 창 세
첫댓글 안녕하세요? 건강한 생활을 하고 계신 김선생님! 다만 한때 고관절만 안좋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러저러한 절절한 사연 금시초문이고 정말로 다시한번 축하와 축복을 드리면서 건강한 나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조운희 드림.
묵묵히 지켜온 건강관리가 오늘날의 김창세님께 영광을 주셧네요,,,건강한즐거운 삶이 될수잇도록 같이 즐거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족의 사랑과 연세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건강을 되찾아 건강하게 살고계시는 김선생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물론 오빠에게 신장을 제공한 동생도 건강하게 사시겠지요...
감동적인 의료 드라마의 주인공이 귀하시라니 정말 반갑고 못 뵐 분을 다시 뵈옵는 것 같아 감개가 무량합니다. 참으로 장하시고 용기있는 삶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환우들에게 큰 희망이 되실 것 같습니다. 더욱 건강하게 장수하셔서 해마다 이 귀한 간증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경원
모든 회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어머님과 여동생! 역시 여성은 강했군요? 더욱 건강하세요. 이봉재
김창세 선생님의 끈임없는 투병생활에 격려드리며 앞으로도 꾸준히 건투하시어 건강하게 백수누리싶시요 그리고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부드럽고 인간미 넘치는 김선생님의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남은 세월도 건강하게 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글을 올려주신 남회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