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산땅은 합천 북쪽에 있다.
동쪽 토곡산, 남쪽 마령산, 북쪽 1,000미터의 고봉 오도산, 두무산이 나란히 섰다.
산제, 반포, 광산천이 협곡을 따라
마을 곳곳을 적시며 흐른다.
묘산의 생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구한말 심묘면이 묘산면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21개 부락
사통팔달 중심, 교통 요충지 교동
오도산 밑 산지미로 유래 터 산제
오도산 길목 창원 황씨 집성 가야
반석 위로 물 흐르는 터 유래 반포
지관이 여덟 번째 찾은 명당 팔심
새를 닮은 마을 터라 유래 된 봉곡
봉곡동 안밖에 앉았구나 봉곡 2구
화성산 밑 양지 바른 너른 들 광산
집 짓고 살 만한 터로 유래된 관기
산이 마을 안은 고운터 유래 웅기
중용지덕, 살기 좋은터 유래 중촌
노태산 뜻 따라 공정동으로 공곡
려말 유백통 공이 터잡은 가산리
어느 군수가 창고를 지었던 곳 창촌
도자기 굽던 터 구디기 유래된 도옥
두모산 자락 아랫 기슭 남향터 안성
들이 넓어 들마로 불려진 유래 평촌
달윤산이 사방을 막아 볕 좋은 화양
두무산 자락 기슭 소나무 전설 나곡
토곡산 물길이 양쪽으로 가른 거산
두무산 끝자락 앉은 경치 좋은 계동
유년시절, 마을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농자천하지대본을
몸소 실천했다.
삶에 수단이래야 철따라 이어지는
농법으로 논농사 밭농사가 고작이다.
비좁은 농토와 소작농으로
씨뿌려 가꾼 노력의 댓가는
턱없이 모자라 이듬해 봄이면 허기진
배를 움켜쥐는 궁핍한 삶이 이어졌다.
70년대 초중반 산업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궁핍했던 살림살이가 차츰 변화의 물꼬를 튼다.
도농 소득격차 극복,
앞선 도시문화의 향유,
교육 등으로 젊은 세대들이
농촌을 떠나면서 농촌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면서 급기야는
마을 공동화로 이어진다.
그러나, IMF, 세계 경기 위축,
유럽발 금융위기 등으로 젊은이들이 직장에서 내몰리면서
농촌은 그들의 삶의 터로 차츰 활기를 찾는다. 연령대 구분없이 삶을 옮긴다.
고향의 아련한 추억 때문일까. 여름이면 평상에 누워 부채질하며 더위를 식혔고,
겨울이면 군불을 지펴 긴긴밤을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지샜던 일도 ... 향수를 자극한 이유는 아닐까 .
이맘때면 마을앞은 온통 연초록이다. 살랑이는 바람에 제 몸 맡겨 흔들리는 볏닢,
뒷밭엔 고구마, 고추, 콩팥으로 넘쳐났다.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구불구불 쌓은 돌담,
여름이면 아이스케키를 팔던 아저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참새가 숨어 살던 초가지붕도
문명의 시간이 지나면서 모습을 잃었다.
빨리 빨리에 길들여진 세상사가 원망스럽다,
고향 사람들, 소 울음으로 이른 새벽을 연다. 흙에 정직함을 믿고 욕심없이 살았다.
정직에 길들여져 묵묵히 키웠냈던 벼 한 포기, 한 톨의 곡식도 지나침을 금기시 했다.
편해가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느린 삶,
굳이 빠른 길을 찾지 않는 우직함도 세월의 무게만큼 늙어 간다.
평범한 삶의 진리를 순응하는 사람들.
속절없이 가버린
내 어릴 적 삶터를 지키는 사람들.
등굽은 묘산 사람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