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풍수지리설을 무슨 신앙처럼 믿지는 않는다.
다만 건축공학도로서 합리적인 선에서 이해하는 편이다.
집의 좌향에 대한 풍수적 해석 중에 '배산임수'라는 말이 있다.
좌향을 정할 때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다.
즉 북풍을 막아 줄 언덕이나 산이 건물의 뒤편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집 앞으론 농토가 펼쳐지고 거기에 물을 충분히 공급할 개울이 흘러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북풍이란 말은 우리나라가 겨울이 되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찬바람이 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마을의 지세가 여기에 꼭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거주하는 한옥의 배산은 북쪽이 아닌 동쪽에 가깝다. 집터가 어쩔 수 없이 서향이다.
이런 상황에서 풍수대로 좌향을 남쪽으로 잡으면 집터가 옹색해져 제대로 집을 지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배산임수란 어떤 특정한 방향을 말하기보단 집터의 보편타당한 형국을 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풍수로 만 집터를 따진다면 평지에 들어설 도시는 해석불능에 빠진다. 굳이 풍수에 끼워 맞추려고 억지춘향을 부릴 이유가 없다.
요즘은 배산이 없어도 주택의 기능이 충분한 난방을 가지므로 배산에 매일 필요가 없는 시대다.
굳이 혈맥을 들먹거리며 미신 같은 소리에 잠식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난 안산의 중요성은 여전히 실효적이라 본다.
안산이 무엇인가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정면의 산이나 주변 지세를 말함이다.
도시의 아파트라면 전면에 대한 조망권이 여기에 속한다. 안타깝게도 아파트에 가려 답답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다행이 전망이 뚫려서 가깝든 멀든 산을 바라볼 수 있다면 축복받은 집이다.
백오십 평 남짓하는 작은 대지에서 집의 면적과 정원을 빼고 나면 안마당은 기껏해야 이십 평 남짓하다.
거기다가 담장까지 둘러쳐졌으니 마당에 서있어도 답답하단 생각이 든다.
이럴 때 멀리 안산이 바라다 뵌다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안산과 함께 집 앞으로 펼쳐진 들과 마을까지 눈에 들어온다.
안산은 집안에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생각들을 제공해 준다.
정원에 심어놓은 수목들이 점점 자라면서 안산이 자꾸만 가려진다.
그렇다고 수목을 당장 베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궁여지책으로 가지를 쳐들고 버팀목을 받쳐 놓았다.
그러자 멀리 안산이 다시 내게로 왔다.
집안에만 몰입하다 보면 자칫 멀리 또는 가깝게 보이는 안산이나 앞산이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시야에서 가려질 수 있다.
정기적으로 집안에서 바깥 풍경에 대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지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 온 다음 날 안산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운무라도 끼면 더욱 신비롭다.
비록 확 트인 시선이 아니어도 안산이 주는 즐거움은 많다.
개인주택에 살면서 안산이 잘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보이는 장소라면 늘 안산이 잘 보이도록
집안을 가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