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백암, 1980년 5월
상품 파는 영업을 하다 보면 가끔 공짜로 서비스 상품을 줘야 할 때도 있다. 본사 특판영업부에서 국가정보부서인 안기부로부터 어떤 물품의 제작을 극비리에 의뢰받아 왔다.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덕분에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시절인 1980년에는 중정의 이름이 안기부(안전기획부)로 바뀌었는데, 안기부 산하 전파 감시소에서 자기들이 사용할 콘솔 2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간첩 등 불순 세력의 무선통신을 도청하는 전파 감시소가 경기도 용인 동쪽 ‘백암’이라는 곳에 있는데, 100명의 도청 요원이 도서관 열람실 같은 칸막이 속에서 근무하는 2개의 큰 감청실 중앙에 설치해서 요원들의 근무 상태를 감시하며 필요한 감청 신호를 보고받는 중앙통제실에 설치할 콘솔(console) 장비이다.
콘솔당 통제되는 50개의 칸막이별 채널은 LED 램프로 구분하고, 해당 채널과 수동 절체 장치로 연결하며, 도청 중인 전파의 음성신호를 함께 들으면서 동시에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면 되는 수준으로 배선은 좀 복잡하지만, 회로는 개발이랄 것도 없이 간단한 장비였다.
다만 콘솔 한 대의 길이가 가로 3m, 세로 1.5m로 피아노 두 대를 연결한 크기여서, 기구류 가공 제작이 전자회로 조립시험보다 더 문제였다.
대부분 연구원이 맡기를 꺼리는 제품인데, 마침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후배인 신입사원 K가 있어서 그에게 맡기고 코치만 해주면서 제작했다.
1980년 5월 15일경 제작이 완료된 콘솔 2대를 작은 트럭 두 대에 나눠 싣고 연구원 3명과 함께 안기부가 알려준 장소로 납품 설치를 하러 2박 3일의 출장을 떠났다.
용인 동쪽 양지 IC 근처에서 안면 있는 안기부 직원 K 선생의 마중을 받고, 남쪽으로 시골길을 30분쯤 들어가니, 야산으로 둘러싸인 꽤 넓은 평지가 나오고 높은 담장 너머로 각종 안테나가 보였다.
정문에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안으로 들어가니 운동장 땅바닥에 하늘을 향해 설치된 지름 십여 미터의, 그물망 접시처럼 생긴, 파라볼라 안테나(Parabolic Antenna)가 눈에 띄었다.
중앙통제실에 콘솔을 하역하여 제자리에 놓고 보니, 유리창 너머 양쪽 감청실은 아직 칸막이 설치가 안 된 채 바닥 마감 작업만 되어 있었다.
출발할 때는 콘솔 장비에 감청실에서 끌어온 케이블을 연결하여 작동 확인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민가에서 민박하며 다음 날 하루 만에 끝내고 토요일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K 선생이 모셔온 상사로 보이는 P 선생의 요구로, 감청실 마루 플로어링 보드 밑의 플로어 덕트에 배선 작업까지 해줘야 했다.
결국, 일요일인 18일도 모자라 월요일인 19일 오후까지 작업하여 겨우 마쳤다.
민박집에서 전남 광주시에 무슨 큰일이 났다는 말은 들었지만 피곤해 잠자기 바빴던 터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안기부 선생님들 표정과 행동이 좀 수상하게 변하긴 했었다.
안기부 차량으로 양지까지 나왔는데, 시외버스 막차 시간이 지난 뒤였다. 다행히 용인 가는 빈 트럭이 한 대 와서 짐칸에 4명이 올라타고 올 수 있었다.
밤중에 트럭 짐칸에 쪼그려 앉아 실려 오는 피곤한 귓전에 논에서 떼창으로 부르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용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개골개골 들려왔다.
학교 후배인 콘솔 담당자 K는 귀사 후 두어 달 뒤에 사표를 내고 고향 진주로 내려갔다.
그곳 양지 IC 근처에 육군 휴양소가 있는데, 우리 회사로 통신장교 대상의 2시간짜리 ‘안테나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내가 강사로 지정되어서 원고를 타이핑 치고 도표나 그림도 오려 넣어 30쪽이 넘는 ‘안테나 이론과 실무’라는 교재를 만들어서 100부 인쇄했다.
가보니 위관급 장교가 대부분인데, 영관급까지 40여 명이 칠판 있는 교실에서 학생들처럼 집체 교육을 받았다.
강의를 마치고 오는 길에 강사료를 봉투에 넣어줘서 아주 기분이 좋았는데, 열심히 듣고 질문도 하던 장교들 반응이 괜찮았던지 그 후에 한 번 더 다녀왔다.
10. 에필로그
1983년 이후에 나는 산업용 무전기와 가정용 무선전화기인 코드레스폰(Cordless Phone) 및 당시는 셀룰러폰(Cellular Phone)이라 불리던 휴대용 무선전화기 개발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연로한 독자로 입대 6개월 만에 이등병으로 의가사 제대하여 다른 친구들보다 2년쯤 일찍 사회에 진출한 관계로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러나 방위산업체 연구소에서 군 통신 장비 국산화 개발에 참여한 덕분에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자주국방에 깊이 공헌했다고 자부한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