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7월 13일
국립서울대안 발표와 반대운동
서울대학교 정문 전경.
1946년 7월 13일 미 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국립서울대안(국대안)을 발표했다. 경성대와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등을 통합한다는 내용이었다.
8월 22일 미 군정이 일부 학생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국립서울대 신설을 강행하자 좌익 교수와 학생들은 반대투쟁을 결의하며, 산발적인 반대시위를 벌여나갔다. 이들은 국대안이 고등교육기관을 축소시키며, 미국인을 총장 및 행정담당인사로 기용함으로써 운영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각 학교의 고유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들은 투쟁위를 조직하고 반대운동을 본격화했다. 타대학과 동맹휴학에 들어가는 등 사태가 악화되자 미 군정은 휴교조처를 취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래도 반대운동이 격화되자 미 군정은 이듬해 5월 12일 4,956명을 제적했고 380여명의 교수를 해직했다. 하지만 5월 말 미 군정이 국대안 수정 법령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자 8월 대부분의 학생을 복학시켜 국대안 반대운동은 1년 만에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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