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손발 위생 검사가 있었습니다. 구멍 난 양말 때문에 실내화를 벗지 않아 맞았습니다.
중학교 때 통장 적금 못내 코피 터졌습니다.
가난, 참 서글픕니다.
몇 일 전 제대한 아들을 위해 차상위 신청하러 갔습니다.
국가장학금이 저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가난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모 형제 중 알바하는 자가 없는지 물어봅니다.
곧 저희는 선교지에 들어가야 하고, 아이들도 하겠지요.
다만 너희는 가난하니 알바해서 공부해야 한다. 이런 시선은 마음이 아픕니다.
남들처럼 공부하고, 여행도 다니고, 웃고 떠들고 꿈꿀 수 없는 것인가요?
찬란한 청년의 시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가난이란 딱 지표를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아이들이 ‘급식충’으로 따돌림을 당할 때,
한 시장이 전교생 무료 급식을 시작하였습니다.
교복 살 돈이 없을 때 전교생 교복 지원 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자영업자를 살리기 위해 지역 상품권을 활성화했습니다.
가난했기에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알고,
장애를 입었기에 장애인들의 마음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고아와 과부의 손을 만져 주셨듯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듯이,
예수님께서 환우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듯이,
서민들의 마음을 아는 자,
싸움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는 자,
분단된 민족에 전쟁이 아닌 평화를 매듭짓는 자,
불평등을 평등하게,
특권을 책임으로,
과거가 아닌 미래를 여는
그런 지도자를 소망합니다.
저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들이 웃을 수 있는 나라,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가능할까요?
대영제국 안에 모든 노예를 해방했던 윌리엄 월버퍼스처럼,
주님께서 그런 나라를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 주께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한 표를 분열이 아닌 화합과 꿈을 위해
주권자의 권리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