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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 - 부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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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한복 입은 로미오와 줄리엣, 달빛 아래를 걷다
鳳山 추천 0 조회 29 09.02.14 02:4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S#1 세익스피어, 한복을 입다

 

어제 일을 마치고 국립극장에 갔습니다. 입춘이라지만 여전히 차가운 냉감각이 볼에 느껴지는 요즘, 국립창극단에서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기 위해서였죠.

 

언제부터인가 창극을 좋아하는 팬이 되었습니다. 학부시절 연극수업을 들으며 일본의 노와 가부끼, 인형극인 분라쿠, 중국의 경극까지 공부해 본적이 있지만, 내 나라 창극의 형식에 대해서는 매우 무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작년 어머니를 모시고 보았던 창극 <청>을 보고, 현대적인 무대디자인과 드라마적 구성에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우리의 전통을 재해석하면, 이렇게 좋은 문화상품이 될수 있다는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어준 사건이었죠.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도 젊은 감각으로 만든 현대창극입니다. <청>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국악 실내악단이 실제 라이브 연주를 한다는 거죠.

 

세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중세 이탈리아 베로나 지역에 사는 몬테규와 캐퓰릿 가문은 대대로 원수사이인 집안이죠.

 

이런 원초적인 불가항력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이제 한국적 배경으로 옮겨집니다. 몬태규 집안의 로미오와 캐플릿 집안의 줄리엣이 아니라 함양 귀족의 문태규 집안의 문로묘와 남원의 귀족인 최불립의 딸 최주리입니다. 로미오는 로묘, 줄리엣은 주리가 된 셈이죠. 비슷하게 지어진 이름이 기발합니다.

 

때는 음력 7월 15일 백중날, 무르익은 과일을 따고 곡식을 거둬 천신제를 지낸다는 명절, 가정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재수굿판이 벌어집니다. 이 굿판을 보기 위해 몰래 잠입한 문태규의 아들 로묘와 최불립의 딸 주리는 답교 놀이(다리밟기) 중 우연하게 만나 사랑에 빠지죠.

 

 

재미있는 건 이 답교놀이 마당에서 배우들이 무대밖으로 나와 관객들을 끌고 들어갑니다. 풍물과 연희패, 꼭두각시 놀음, 탈춤이 어루어지는 그곳으로 관객들을 데려가 실제로 춤도 추고 연인들을 불러다 '실제 사랑고백'도 할 기회도 줍니다. 저 또한 불려나가서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주리님이 제 머리 위를 오랜동안 밟고 올라계셨어요.(예술감독을 맡으신 유영대 선생님이 생일파티 화끈하게 했다고 웃으셨습니다)

 

한국의 창극이 세계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 민족의 호흡으로 만들어진 창이란 표현방식과 관객과 함께 서양의 폐쇄된 무대가 아닌, 열린 마당으로 민중을 초대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는 장을 제공하는 연희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양 중세도 거리가극이 있었고 중국또한 비슷한 형식이 있었지만, 문제는 극의 재현에서 느끼게 되는 섬세한 차이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리내 살냄새 풍기는 정취를 어떻게 서양사람들이 해석할 수 있는 상품으로 포장하는가에 있습니다. 여기엔 여러가지 입장과 태도가 있지요. 전통을 헤친다에서 원형을 손상시킨다에 이르기까지, 입장의 정도도 꽤 만만치는 않습니다.

 

창극을 현대의 관객들에게 소개하려면 지금 동시대의 언어로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야 합니다. 쉬운 작업이 아니죠. 번역은 시대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고전이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해서 반드시 당대의 웃음의 코드, 눈물의 코드를 찾아야 합니다. 전통이란 결국 시대의 아픔과 환희를 그려내는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마케팅을 하면서 항상 배우는 건, 상품을 팔고 싶다면 그 나라를 철저하게 연구하는 겁니다. 단지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요......라고 백날 부르짖어봐야 쳐다봐 주지 않습니다. 왜냐면 소비자가 그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고, 배울 기회가 없었던 상태라면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일 뿐, 그들에겐 단지 이국적인 산물 이상으로는 해석이 안되거든요. 여러분이 존경하는 극작가 세익스피어의 연극작품. 초기에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귀족과 왕이 아닙니다.

 

시장에서 판놀이하고 장사하는 장사꾼들, 여염집 아가씨들(이들은 신분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극장에 갔지요) 술취한 취객에서 부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던 연희였다는 점을 자꾸 잊기 쉽습니다. 왜냐면 세익스피어의 극이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고급문화로 승격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창극도 이런 진화의 과정을 겪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세익스피어의 비극중에서 특히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사랑이란 화두를 다루는 건, 동서양에 상관없는 우리의 이야기이고 사랑과 연애의 불가능성은 모두가 한번쯤 시리게 경험하게 되는 사건이기 때문일겁니다.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양의 연극과 줄거리와 내용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걸 새롭게 해석하면서 우리문화의 핵심적 코드를 사용하기에 극에서 느껴지는 신선함 느낌과 문화적 충격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극의 후반부로 가면서 후경에 끊임없이 소나기가 내리도록 처리한 무대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청춘의 화양연화, 그 속에서 사랑을 꽃 피우고자 하나, 가문의 반목과 지역간의 파벌싸움이 삽입되면서 우리의 사랑은 결코 단 둘의 문제가 아닌걸, 경험하는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닐테지요. 소나기를 맞으며 로묘와 주리의 죽음을 전통의 씻김굿 제의로 변형시킨건 또 다른 극의 매력이었습니다.

 

 

극을 보면서 굉장히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극 중의 대사처리들이 매우 정교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세익스피어 원전을 그대로 놓고 이걸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으로 꼼꼼하게 옮겼더군요. 창극 형식으로 재현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적 비극성이 더욱 강렬한 것은 젊은 날 한번쯤은 아팠을 그 시린 사랑의 상처를 구설진 우리 내 소리로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예전 임권택 감독님의 <서편제>란 영화가 판소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유발시켰죠. 저도 그 영화를 보고서야 서편제의 '제'란 개념이 발성의 방식이란 뜻을 갖는다는 걸 알게되었으니까요. 서편제와 동편제 북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산 하나만 넘어도 소리를 해석하고 만드는 방식이 달랐던 참 구성지고 창의적인 민족이었습니다. 잊지마세요.

 

창극보다 오페라, 뮤지컬에 익숙한 우리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혜화동엔 정극은 사라지고 뮤지컬의 옷을 입은 작품들이 부지기수로 늘었습니다. 속도전을 연상케하는 뮤지컬은 자본주의의 속도에 걸맞는 문화적 산물이지만, 결국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호흡은 점점 더 빨라져서 성찰할 시간도, 긴 호흡을 해볼 여유도 잃어버린게 사실이죠. 창극이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의 도정위에서 세계에 알려질 수 있는 우리만의 유전자가 있음을 배웁니다. 창극으로 피어난 로묘와 주리, 그 사랑에 헌화하며......세계속으로 뻣어가길

 

 

김애라 - Midnight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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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2.14 23:34

    첫댓글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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