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의 편지는 테드 창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저번 편지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가보겠습니다.
연금술사에게 세가지 이야기를 들은 상인은 카이로에 있는 또다른 시간의 문으로 향하지요. 바그다드에서 카이로를 향하는 대상과 함께 출발한 상인은 예순번의 새벽을 맞은 후 순조롭게 카이로에 도착하게 됩니다.
카이로에 도착한 상인은 드디어 세월의 문을 통과하여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과거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지금의 자신이 해야할 역할이 있으리라는 희망에 기대어, 바그다드로 가는 대상과 함께 사막을 건너는 긴 여정에 다시 나서게됩니다.
3. 사막을 건너다.
여러분은 사막을 가 본적 있으신가요? 이렇게 묻는 저도 막상 사막을 가본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가득 붐비는 주말 카페에 앉아있는 지금도 마음 한켠에는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일이 밀려들 월요일을 생각하면 여유롭던 마음도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낙타처럼 삭막해지지요.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과거의 기억들도 저를 누르고 있습니다. 일상에 묻혀있던 상처들이 문득 떠올라 분노로 숨이 막히고,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된 선택을 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멍하니 시선을 들어 벽을 노려보기도 합니다.
제 발 밑이 모두 모래입니다. 단단하게만 보이던 길이 모래로 무너져 내립니다. 같이 걷던 사람들, 누구보다 소중한 이들조차 미처 이별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헤드폰 틈으로 소음이 윙윙거리며 밀려들고 얼음잔을 가득 채운 아이스 커피로도 도저히 갈증이 풀리지 않습니다.
일상 속에서 사막을 만나게 되는 사람이 비단 저 뿐만이 아니겠지요. 가만히 멈춰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러분께도 모래바람 소리가 들려올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이 사막을 어떻게 건너야 할까요? 상인은 이 사막을 어떻게 건너갔을까요?
20년을 속죄와 회개로 살아온 상인은 알라가 주신 기회라 믿고 과거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절실함으로 여행에 나섭니다. 하지만 오는내내 평안했던 사막은 올때와는 달리 가장 절실한 순간에는 그에게 쉽사리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날씨는 변덕을 부리고 질병이 창궐하지요. 그리고 모래폭풍이 불어옵니다. 예정된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상인은 결사적인 행동에 나섭니다. 일행을 설득하고 설득이 통하지않자 말도 안되는 가격에 낙타를 사서 홀로 길을 나서지요.
그리고, 그는 실패합니다. 우리가 그러하듯, 아무리 절실하게 원하고 결사적인 용기를 내어보아도, 그 모든 노력이 성과없는 헛수고가 되어버립니다. 마음을 바짝바짝 죄어오는 절망 속에서도 그저 대상과 함께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무력감이 밀려들지요. 상인은 자신의 절망과 무력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든 장미 이파리가 하나씩 떨어지듯 제 희망은 날이 갈수록 이울어갔습니다.”
네, 상인처럼 저 또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미 예전에 떠나간 곳에 뒤늦게 도착했지요. 이미 과거는 지나갔고 소중한 것들은 사라졌습니다. 상처는 그 자리에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있지요. 그리고 저는, 상인은, 그 자리에서, “기억과 비통함에 사로잡힌 채”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전갈을 받습니다.
두 문장입니다. 단 두 문장이지요.
과거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단지 두 문장으로 무엇이 바뀔까요? 일들은 이미 일어났고 무엇을 해도 돌이킬 수 없는데 말이지요. 우리는 각자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게 더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아오며 받아본 질문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지금까지의 인생은 한마디로 어땠나요?”
저는 그 질문 앞에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이렇게 불쑥 대답했습니다.
“그랬어야만 했어.”
제 입에서 나온 저 대답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말을 해놓고도 무슨 의미인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그 의미를 찾다가 기억 뒤로 묻어두었지요. 지금, 이 이야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이,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질문 앞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저 대답이 제 자신을 용서하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무기력한 자신을 혐오했습니다. 그 무기력함은 상황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도 상처는 지워지지 않더군요.
상인은 단 두 문장의 전갈을 받고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저는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저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도 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제 죄책감이 저를 짓눌러왔고 다른 식으로 행동하지 않은 자신을 비난해왔습니다. 하지만 저를 사랑하는 사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미 저를 용서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께 그랬듯이 말이죠.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위로를 줄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날이 이울어가는 희망을 그저 바라보며 사막을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배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절실함이, 아무런 성과없이 스러져가는 듯 보이는 그 모든 노력이 어느 지점에서 꽃피우게 될지 모릅니다. 우연히 책 한 구석에서 삶을 흔들어 다시 바라보게 만들 문장을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주간 이어온 편지를 이쯤에서 끝내야 겠네요. 다음 편지는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크레이지 군단"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이 함께하시길.
첫댓글 그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