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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21일 화요일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안셀모 주교 학자
말씀의 초대
사람들이 돌을 던지자 스테파노는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치며 숨을 거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생명의 빵이라며, 당신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7,51─8,1ㄱ
그 무렵 스테파노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말하였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5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서 스테파노는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앞에서 당당히 신앙을 증언합니다. 성경은 그를 두고 “성령이 충만하였다.”(사도 7,55)라고 전합니다. 그와 반대로 그를 박해하는 이들은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7,51)로 묘사됩니다. ‘목이 뻣뻣하다’는 것은 자기 생각에 갇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완고함을 뜻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는 것은 마음이 닫혀서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오늘 복음의 군중도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눈앞의 기적과 현세의 이익만을 구하며, 조상들이 받은 만나가 그저 배를 채우는 빵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표징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이들 또한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들은 결국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이들에게 ‘미움의 돌’을 던집니다.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졌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도 내 주변의 이들이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마음속으로 ‘미움의 돌’을 드는 순간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돌 대신 ‘생명의 빵’을 든다면 어떨까요? 누군가를 상처 주려고 들었던 그 손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사랑의 빵을 건네는 것, 이것이 “생명의 빵”(요한 6,35)이신 주님의 삶이며 우리에게 바라시는 길입니다. 우리는 지금 손에 무엇을 쥐고 있습니까? 돌입니까, 빵입니까? 누군가가 우리에게 돌을 던질지라도, 그 돌을 사랑의 열매인 빵으로 되돌려주는 우리가 되기를 청합시다.(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왜 모세가 만나를 주었다고 생각하면 계속 배가 고플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요한 6,32)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을 수 있도록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요한 6,30).
어제 보리 빵 다섯 개로 배불리 먹는 기적을 체험하고도, 그들은 자고 일어나니 또 다른 기적을 구걸합니다. 그러면서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들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모세는 우리 조상들에게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어 40년을 먹게 했다. 당신도 그 정도의 기적은 계속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치명적인 오류를 수정해 주십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요한 6,32).
왜 예수님은 굳이 만나를 준 주체가 모세가 아니라 '아버지'임을 강조하실까요? 그것은 우리가 먹는 양식의 '출처'를 어디라고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엄성'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삼위일체적 원리를 통해, 왜 우리가 세상의 빵을 먹으면서도 늘 허기에 시달리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갈증과 배고픔의 끝에는 단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 아무리 화려한 빵을 먹어도 마음은 늘 텅 비어 있습니다. 배고픔은 위장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의 문제입니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34년 동안 얼굴을 철가면(실제로는 벨벳 가면)으로 가린 채 살았던 이름 없는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1703년 바스티유 감옥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철저한 익명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국왕의 특별 명령으로 상상도 못 할 최고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매일 갈아입는 최고급 비단 옷, 은식기에 담긴 산해진미, 심지어 간수들은 그가 식사할 때마다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그는 평생을 지독한 우울과 고독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종종 식사를 거부하며 벽을 보고 오열했습니다. 왜일까요?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거울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도 없었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그가 루이 14세의 친형이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는 왕족의 빵을 먹었지만, 자신이 '왕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단 한 순간도 얻지 못했습니다. 정체성이 거세된 채 주어지는 최고의 성찬은 그에게 양식이 아니라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모욕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참된 해갈은 내가 '누구로부터 온 존재인가'를 발견할 때만 일어납니다. 정체성이 없는 포만감은 영혼을 굶겨 죽입니다. (출처: 장 크리스티앙 프티피스, 『철가면』)
세상 사람들은 빵을 먹으며 배가 부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자녀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인간은 빵을 먹을수록 비참해집니다. 그 빵이 나를 살리는 양식이 아니라, 나를 이 땅의 감옥에 묶어두는 족쇄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가 주는 젖을 먹고 자랍니다. 아기에게 어머니는 우주 전체이며 생명의 공급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아이는 평생 어머니의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자녀의 눈높이까지 내려와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사회적 존재로 서고, 자신의 존엄성을 하느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반드시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과해야 합니다.
현대 심리학의 '밀착된 관계(Enmeshment)' 이론에는 소름 끼치는 임상 사례가 많습니다. 35세가 되도록 직업도 없이 방 안에 갇혀 지내던 한 남성이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아빠는 밖에서 딴짓하느라 바쁘니 우리 아들은 엄마만 믿어라. 이 밥도 엄마가 너를 위해 직접 피땀 흘려 마련한 거야"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머니는 양식의 출처를 '아버지'와 단절시키고 오직 '자신'에게만 고정시켰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마다 무의식중에 '나는 엄마 없이는 밥 한 끼도 못 해결하는 무능한 존재'라는 저급한 자존감에 갇혔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갈 용기를 잃었고, 어머니의 치마폭이라는 좁은 세계의 중력에 묶여 영적으로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심리 치료사는 어머니에게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밥을 차려줄 때 반드시 이 밥은 아버지가 밖에서 전쟁 같은 사회와 싸워 벌어온 것임을 알려주십시오." 어머니가 처음으로 "얘야, 이 맛있는 반찬은 아빠가 가족을 위해 고생해서 사 온 거란다. 너는 저 거친 세상을 이기고 돌아온 위대한 아버지의 아들이야!"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자신의 출처가 집안의 엄마가 아니라 '거친 세상을 정복한 아버지'임을 인지하는 순간, 그의 자존감은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그는 6개월 만에 방을 나와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어머니는 젖을 주는 '통로'일 뿐, 그 젖을 가능하게 한 '원천'은 아버지임을 아는 것, 그것이 인간을 거인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출처: 살바도르 미누친, 『가족과 가족 치료』 임상 사례 재구성)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군중은 모세라는 '엄마'가 만나를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 수준, 즉 땅의 기적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그 빵은 내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살과 피를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즉, 우리의 수준으로 내려오신 '어머니'와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것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살과 피를 먹으면서 "예수라는 훌륭한 인간이 주는 빵이다"라고만 믿으면, 우리는 그저 '착한 인간'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시며 "아, 이 빵은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 당신 아들의 생명을 통해 보내주신 것이구나!"라고 믿을 때, 비로소 우리의 본성은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의 본성으로 격상됩니다. 성체성사는 '인간 예수'를 먹는 예식이 아니라, '예수라는 통로'를 통해 '아버지의 신성'을 수혈받는 신화(Deification)의 사건입니다.
표징이 단순한 기적과 다른 이유는, 그것이 보내신 분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때, 그 출처가 '나'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랑은 상대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지배'가 됩니다. 하지만 그 출처가 하느님임을 알려줄 때, 그 사랑은 상대를 하느님 자녀로 부활시키는 '표징'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식탁으로 초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우리가 성체를 영하며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가 나에게 주시는 신적인 생명이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의 자존감은 땅바닥에서 하늘로 치솟을 것입니다. 여기, 그 믿음의 고백으로 지옥을 천국으로 바꾼 한 성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 다미안 신부님이 나환우들의 섬 몰로카이에 들어갔을 때, 환우들은 자신들을 '버려진 쓰레기'라 생각하며 자학했습니다. 당시 벨기에 정부가 물자를 보냈지만, 환우들은 그것을 받을 때마다 "우리가 불쌍해서 적선하는 거지?"라며 냉소했습니다. 구호물자를 먹을수록 그들은 자신이 비참한 거지임을 재확인했을 뿐입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가르침의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는 성체를 집전하며 환우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이 빵은 벨기에 국왕이 동정심으로 보낸 것도 아니고, 제가 여러분이 가여워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이 빵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여러분'을 먹이기 위해 하늘에서 직접 내려주신 당신 아들의 살과 피입니다. 여러분은 버려진 나환자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식탁에 초대받은 고귀한 왕족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무엇을 먹는지 보라. 그대가 하느님의 빵을 먹는다면 그대는 하느님이 될 것이다. 모세가 아닌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빵을 먹는 자만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St. Augustine, Tractates on the Gospel of John, 25, 1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전에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오래된 물건을 가져오면 전문 감정가들이 평가해 주는 프로였습니다. 단순한 항아리인 줄 알았는데 조선시대의 유명한 ‘백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걸려있던 초상화인데 알고 보니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가 그린 선비의 ‘초상화’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판정이 나면 엄청난 가격이 정해지곤 했습니다. 반대로 고려시대의 청자인 줄 알고 애지중지했었는데 알고 보니 ‘모조품’인 경우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의 서예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위조품’인 경우도 있습니다. 진품명품은 전문 감정가의 판단이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명품과 짝퉁’이란 말도 있습니다. 명품과 짝퉁을 구분하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명품 가방은 비가 오면 가슴에 품고 걷는다고 합니다. 짝퉁 가방은 비가 오면 우산 대신 머리를 가리면서 걷는다고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옥석’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허영과 욕심 때문에 옥석을 구별하지 못하곤 합니다.
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면서, 교우들의 신앙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친교실을 만들어서 주일 미사 후에 식사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도서실을 만들어서 영적인 양식을 차려주기도 합니다. 카페를 만들어서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전례를 즐겁게 하려면 밴드를 전례 음악에 도입하기도 합니다. 교우들의 취미와 문학적인 소양을 돕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합니다. 좌석을 늘리기 위해서 장궤틀을 없애기도 합니다. 쉽고, 빠르고, 편리한 것이 과연 교우들의 영적인 성숙에 도움이 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다.’ 또 ‘때가 가까이 왔다.’ 하고 말하겠지만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신앙인은 무엇이 진짜 신앙인지, 무엇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명예도, 권력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사람들은 지배한다는 말과 다스린다는 말을 폭력으로 억압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착취하고, 빼앗아도 좋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배와 착취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신분, 계층, 세대, 이념, 피부, 성으로 차별하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목마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모두가 평화롭게 가진 것을 나누었고, 특히 가난한 이와 아픈 이를 돌보았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삶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페스탈로치는 신앙의 원천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아버지이시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죽음이 없다. 인류의 순수한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감사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 이것이 신앙의 원천이다.” 페스탈로치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간, 그리스도, 시인, 모든 것을 남에게 바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축복이 있을지어다. 그의 이름에 축복이 있을지어다.” 삶은 사름의 준말이고, 사름은 사르다의 명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삶은 사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 줌의 재로 남은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는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삶은 고난의 순간에도, 죽음에 이를지라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활의 꽃이 피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밥>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오직
밥만이
밥에
주리지 않을 테니
밥을 먹고
밥이 되어야
결코
밥에 주리지 않고
밥을 먹으나
밥이 되지 않으면
늘
밥에 주리겠지요
오늘의 성인
성 베우노 (Beuno)
활동년도 : +630년경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웨일스(Wales)
같은 이름 :
성녀 베네프리다(Wenefrida, 11월 3일)는 웨일스 지방 플린트셔(Flintshire)의 테인즈글에 살던 어느 부유한 사람의 딸이며, 성 베우노의 동생이다. 그녀는 오빠에게서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국왕 카라도그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함으로써 650년 6월 22일에 참수되었는데, 그녀의 머리가 성 베우노에 의하여 원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성녀 베네프리다는 덴비셔(Denbigshire)의 그위테린(Gwytherin) 수도원의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테노이(Tenoi) 원장을 승계하였으며, 15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다가 운명하였다.
성녀 베네프리다의 머리가 떨어져 피가 흐른 곳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구치고 있는데, 이곳을 ‘거룩한 우물’ 혹은 ‘성녀 베네프리다의 우물’이라고 부르며, 세기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기적을 목격하였다. 그녀는 비네프리다(Winefrida), 비니프레드(Winifred), 바네프리다(Wanefrida), 그웬프레위(Gwenfrewi) 등으로도 불린다.
성 콘라도 (Conrad)
활동년도 : 1818-1894년
신분 : 수사
지역 : 파르참(Parzham)
같은 이름 : 콘라두스, 콘라드, 콘래드
성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의 파르참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배우지 못한 시골 사람이지만 매우 신심이 깊었으며 아홉 자녀를 두었는데 콘라두스는 막내둥이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 속에서 성장하였다. 양친을 여읜 후 31세의 나이로 카푸친회 평수사로 입회하여 1852년에 서원을 발하였다. 그 후 그는 40년 동안 문지기 수사로서 봉사했는데, 순례자들의 무리가 끊임없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애덕과 인내를 실천하며 사도적 정열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었다. 그는 특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혜를 받았고 미래의 일을 알리는 은혜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사후 40년이 되는 1934년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성 안셀모(Anselm)
신분 : 대주교, 교회학자, 철학자
활동지역 :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 1033-1109년
같은이름 : 안셀름, 안셀무스, 안쎌모, 안쎌무스
1033년 겨울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Aosta)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안셀무스(Anselmus, 또는 안셀모)는 15살 되던 해에 수도원에 입회하려 하였으나 부친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1056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프랑스 동부의 부르고뉴(Bourgogne)로 공부하러 집을 떠났고, 1059년에는 노르망디(Normandie)의 베크(Bec)에 있는 베네딕토회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당시 수도원 원장은 란프랑쿠스(Lanfrancus)로 안셀무스는 그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1060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정식으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다.
1067년에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된 성 안셀무스는 제자인 동료 수도자들을 위해서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고, 윤리 교육과 종교 교육에 힘씀으로써 베크 수도원 학교를 명문 학교로 발전시켰다. 1078년에 수도원 원장이 된 그는 박학다식과 성덕에 대한 소문을 듣고 수많은 청년들이 베크 수도원으로 몰려들자 그들을 한곳에서 교육할 수 없어 프랑스와 영국 여러 곳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경계를 넘어 영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성 안셀무스는 란프랑쿠스가 사망한 뒤 영국 왕 윌리엄 2세(William II Rufus)에 의해 1093년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성 안셀무스는 이때부터 적지 않은 분쟁에 휩싸였다. 영국 국왕의 교회 직무에 대한 간섭에 반발하고 교황의 권위를 위해 투쟁하며 성직자들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국왕은 물론 다른 많은 주교들로부터도 배척을 받게 되었다.
안셀무스는 1093년까지 베크를 떠나지 않고 국왕 윌리엄 2세와 격렬한 논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결국 1097년 영국을 떠나 로마로 망명을 갔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7월 29일) 역시 윌리엄의 요구를 반대하자, 윌리엄은 안셀무스를 유배시키겠다고 위협하였으나 끝내는 안셀무스의 귀국을 허용하였다. 1098년 우르바누스 2세 교황의 요청에 따라 성 안셀무스는 바리(Bari)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며, 성령을 두고 벌인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필리오퀘'(filioque) 논쟁을 조정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1100년에 윌리엄 2세 국왕이 사망하자 안셀무스는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또 다시 윌리엄의 후계자인 헨리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하지 않아 1103년에 다시 로마로 망명길에 올랐다. 1102년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공의회에서 안셀무스는 노예 매매를 극렬히 비난하였다.
그는 영국 국왕을 상대로 하여 교회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 당시 그는 위대한 신학자요 '스콜라 학파의 아버지'란 칭호를 이미 얻고 있었다. 그는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아리스토텔리스파의 변증법에서 이용하는 이성주의를 신학에 성공적으로 도입시킨 첫 번째 인물이었다.
그는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개념에서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 “독어록”(獨語錄, Monologion)의 저자이다. 이 사상은 후대의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데카르트(Descartes) 그리고 헤겔(Hegel)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 안셀무스의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는 중세의 강생에 관한 신학 논문 중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대작이다. 그의 저서 중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De fide Trinitatis), “동정녀 잉태론”(De Conceptu Virginali), “진리론”(De Veritate) 그리고 400여 통의 편지와 기도 및 묵상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다.
그는 1109년 4월 21일 캔터베리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492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720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단테는 신곡의 천국 편에서 태양권 안에 있는 빛과 힘의 영들 가운데 안셀무스를 언급할 정도였다.
성 안셀무스의 상징은 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