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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신서정시
제5회 의제헌·김명배문학상 경과 보고 / 운영위원장 양수창 시인
2022년은 김명배시인께서 우리 곁을 떠난지 어느덧 6년이 된다. 박목월시인의 제자이면서 고향 천안을 사랑하여 평생 천안을 떠나지 않고 시창작에 전념하면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를 창립하여 초대 지부장을 맡아 천안에 문학의 토양이 정착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많은 후학들을 키워 문단에 진출시킨 김명배시인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전국에 널리 알리며, 전국의 유능한 시인들을 찾아 더 좋은 시를 창작하고 활동하도록 격려하고 후원하는 사업을 통해 김명배시인의 평생의 유업을 이어가려고 의제헌 김명배문학상을 제정하여 어느덧 제5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만큼 의제헌 김명배문학상이 전국에 알려졌고 많은 문인들이 이에 호응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제5회 의제헌 김명배문학상 공모에는 우편 및 택배 접수 61명, 이메일 접수 6명, 합계 67명이 응모하였다. 시집 및 시조집 66권, 평론 2편, 2년내 발표작 10편 이상 응모는 6명으로 집계 되었다.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100편(시80편, 시조20편)으로 2차 예심 없이 본심 심사위원 3명에게 작품을 넘겨 수상자를 선정하도록 하였다. 본심 심사위원장은 제4회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배우식시인이 연이어 맡았고, 심사위원 2명은 제3회 의제헌 김명배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김선아시인과 제4회 의제헌 김명배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겨리시인이 맡아 수고하였다. 심사위원을 저명한 분들을 위촉하면 좋겠지만, 의제헌 김명배문학상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협력하여 심사해 주실 분에게 심사를 의뢰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의해 김명배시인의 제자인 배우식시인과 수상자 가운데 대상을 수상한 두 분에게 심사를 위촉한 것이다.
응모한 전체 작품을 1차 예심을 위하여 살펴보면서 지금까지 이전에 응모되었던 작품들의 수준에 비해 금년 제5회에 응모한 작품 전체의 평균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본심 심사위원 3명의 공통적인 의견은 대상을 선정하기에 는 좀 아쉽다는 지적이었다. 심사위원회에서 기대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에 심사숙고하여 상의한 끝에 제5회에는 대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리고, 대신 3명의 우수한 작품을 각각 3편씩 선정하여 작품상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심사방법은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 100편에 저자의 이름을 지우고 일련 코드번호를 부여하여 작품을 넘겼고 3명의 심사위원은 100편 가운데 A등급 3편, B등급 5편, C등급 15편 합계23편씩 선정하도록 하였다.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는 가운데 오직 작품성만을 살펴 심사위원은 심사표를 작성하여 운영위원장에게 보내왔고, A등급은 30점, B등급은 20점, C등급은 10점으로 점수전환하여 작품별 점수합계와 시인별 점수합계를 하여 세 명의 심사표를 한 장의 심사표에 나타나도록하여 심사위원 세 명에게 다시 보내어, 최고점과 차점자를 대상과 작품상 수상자로 결정하려 했으나, 대상 수상자를 결정하기에 충족되지 못하다는 의견으로 대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대신 기준 점수 이상의 점수를 획득한 세 명에게 작품상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작품상을 수상하시는 세 분 모두에게 기쁜 마음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김명배시인의 시를 다룬 평론 2편이 응모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앞으로 김명배시인의 작품을 연구하고 살펴서 충분한 평가를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많은 평론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를 바란다. 운영위원장이 1차 예심을 보면서 살핀 평론 2편은 두 명의 응모자께서 많은 수고가 보이지만 아쉬운 점은 평론이 갖추어야 할 구성 요건에서 미흡함을 보이며 시해설 수준에 머물러 아쉬움을 갖게 하였다. 앞으로 평론을 응모하실 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은, 김명배시인의 작품만 살펴서 평자의 의견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평론가 혹은 시인들의 책이나 평론 등을 인용하여 비교하고 연구검토하여 평론을 완성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시상식 일정은 10월10일(월)에 시상하기로 잠정 결정하고 시상식을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장소가 미정된 가운데 일자 역시 유동적이다. 2022년 5월 6일에 순천향대학교 부설 천안병원 정문 입구 부근에 김명배시비를 설치하였다. 김명배시인의 미망인이신 이진학여사께서 김명배시비 설치를 위해 오랫동안 고심하시다가 순천향대학 천안병원의 협조를 얻어 시비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에 시상식 일정에 맞추어 시비 제막식을 겸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시비가 있는 지역 가까운 곳에서 시상식을 하려고 장소를 알아보고 있어서 장소와 정확한 일정이 결정되면 다시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제5회 ‘의제헌 김명배문학상’ 심사평 / 심사위원장 배우식 시인
의제헌 김명배 문학상은 올해로 제5회임에도 그동안의 명성과 권위에 힘입어 전국의 수많은 시인들로부터 응모가 쇄도하여 뜨거운 시적 열정을 느끼게 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을 분리해서 심사했고,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00편이었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이름대신 코드번호로 된 작품들을 3인의 본심 심사위원이 각자 A, B, C로 점수를 주어 심사작성표를 작성한 후에 주최측이 최종 합산하여 심사를 진행하는 등 만전을 기하였다.
시는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의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사물의 현상을 쓰는 것임에도 그렇지 못한 작품들이 다수여서 아쉬움이 컸다. 심사위원들은 소재의 참신성, 언어의 명징성과 운용, 적절한 의미의 함축, 전개 방식의 정교함 그리고 주제의 선명성,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 등 시적 역량에 중점을 두고 심사하였고 1차로 49편의 작품을 선별하여 검토하였다. 이 작품 중에서 개성이 돋보이고 서정적 울림이 높은 작품을 중심으로 다시 9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그 결과 심사위원들은 아쉽게도 의제헌 김명배 문학상 대상작은 선정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겼다. 의제헌 김명배 문학상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그에 따른 작품 수준 또한 높아져야 한다는 기대감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오래 논의한 심사위원들은 조수일 시인의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돌린다는 형용」, 「秀美 감자」와 최태랑 시인의 「저어새」, 「가방」, 「사금파리」 그리고 김욱진 시인의 「그 바람에」, 「무료급식소」, 「거울 보는 새」를 의제헌 김명배 문학상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기대와 더불어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 시단의 큰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의제헌 김명배 문학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용기와 격려와 고마움을 전한다. 다음 기회에는 더 풍성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 명단: 본심 배우식, 김선아, 김겨리, 예심 양수창>
◉대 상 수상자: 없음
◉작품상 수상자: 조수일 시인
전남 나주 출생
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
2017년 ‘열린시학’등단
제3회 기독공보 신춘 수상
제 10회 동서문학상 시부문 은상
제 4회 항공문학상 시부문 최우수상
제 4회 등대문학상 시부문 최우수상
제 1회 송수권문학상 신인상
응모시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2022년 1월)
수상소감 / 조수일
광활한 시의 세계에 겁 없이 첫발을 들여 놓은 지 근 20여 년 만에
로망이던 첫 시집을 묶어 세상에 내놓고 아침이 오는지 밤이 내리는지
모를 만큼 달뜬 시간을 보내던 제게
날아든 수상 소식은 거짓말 같은 마법의 순간이었습니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연락두절의 답답한 시간을 지켜 내시고 이멜로
급히 전갈을 주신 운영위원장님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주저앉아 오래 울 뻔했습니다
많고 많은 응모 시집 가운데 제 시집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운영위원장님께 고개 숙여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천안은 낯설지 않은 기꺼운 지명이었습니다 아이가 5년의 대학시절을 보낸 곳이니까요
천안의 향토문학을 위해 혼신을 다 하신 김명배 시인님의 족적을 기리는 제자들의 애틋한 마음이 모인 운영위원회와
유족이신 이진학 사모님의 숭고한 마음이 큰 감동의 물결로 밀려왔습니다
꿈을 꿀 수는 있으나 실현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테니까요
제 시의 프로필에 숭고한 김명배 선생님의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작품상 수상이라는
한 줄을 얹게 되어 무한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천안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향토문학의 줄기를 세우신 선생님의 큰 마음을 늘 새기며
정진하는 시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늘 나를 돌아보아 주시는 크신 분께도 머리칼로 발을 닦은 발 아래의 여인처럼 감사를 드립니다
▣수상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외 2 / 조수일
어제의 시간을 모과의 오후라 부를래요
홀로 폭삭, 익어버렸으니까요
그림자를 벗어 놓고 떠나온 남녘의 어느 바닷가였어요 간간히 드나드는 바람이 유일한 여행자, 쓸쓸히 낡아갈 일만 남은 저물녘에 덧씌우는 당신의 방식을 힘껏 비켜서고 싶었어요 시야 밖, 홀로 영글어 오래오래 매달린 가을볕의 샛노란 꿈이 나였으면
타인의 시간으로 비행을 일삼는 나는 더는 꽃일 수 없는 야생일까요 수직의 통증처럼 우르르 떨어지는 낙과가 당신일까요 갈변이다가 파묻혀 벌레 슬어가는 최후일까 봐 훌쩍도 거렸어요 높이 걸려 염탐을 일삼는 당신은 꿈의 꼭짓점, 끝내 발굴되지 않는 향기로운 꽃무덤이고 싶었던 나는 이유 없이 줄곧 어두워가는 그늘이었으므로, 암각이었으므로 그 점에 이어져 있었어요
뚝뚝, 파발처럼 나를 선회하는 한 무리 구름은 오랜 내일이니까요
돌린다는 형용,
그가 나를 긋고 갔네 긁힌 가슴팍에서 핏물이 배어났네 이마 위로 초승달이 떠오르고 막다른 골목 같은 허기가 몰려왔네 기울어 사선으로 고개를 떨군 낯빛을 읽을 수 없어 빛을 거두어야 할 시간임을 나는 직감했네 기도처럼 읊조려도 비대칭의 나는 자꾸만 넘어졌네
자판 위 팽이처럼 도느라 색을 잃었네 어지럼증이 일어 기억에 없는 질문이 방울방울 흘렀네 얼굴 없는 아침이면 꽃들은 다투어 피고 혈통 모를 새들이 구슬피 울다 갔네 해진 부리들이 낱장처럼 나를 넘겼네 베낄 대상을 잃어 대기권 밖 이름 없는 행성처럼 유랑을 했네 부스러진 암석처럼 흩어진 비명들, 흥정도 하기 전에 거절당한 구슬픈 날들이었네
낯선 당신의 시간을 거두고 말래요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 들어 열기 오르는 땡볕을 만들고 말래요 그 아래를 휘파람 날리며 빙빙 도는 여 전사 어때요?
저기 흉터가 피워낸 꽃숭어리 떼 흰 달처럼 떠오르는 걸요
목격되지 않은 형용의 군무처럼
秀美 감자
배달되어온 박스를 열자 일제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흰 알몸들
빵, 터진 웃음에 아버지의 문맹이 눈을 뜨네요
秀美라 불러주세요
이름을 얻은 우수한 종족의 품종인걸요
뛰어난 사람이 되라고 서른 살 젊은 아버지는
마을회관 칠판에 빼어날 秀, 상형문자 어원을 그려 넣었지요
삐침의 집합소 같은 형태가 우스워
어린 나는 흰 감자꽃처럼 웃었어요
교과서 속 수염 긴 세종대왕과
까만 타래 머리를 올린 사임당을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빼어난 사람이 되는지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말은 목에 걸린 가시였어요
들지 않는 햇볕에 발이 시려도
마음속에 꽃이 핀 나는 울지 않았어요
그 삐침으로 버텨낸 시간이 생의 중심을 이루었어요
秀는 일어서는 아침이고 아버지의 뚝심이었을까요
군홧발 같은 그림자가 밟고 지날 때마다
비명이 터져 영혼을 빠뜨릴 뻔했으나
위대한 이름처럼 살아야 했던 난
나타나는 결점이 반전될 때마다
튼실한 감자알처럼 굵어져 갔어요
꽃의 폐활량을 지나는 새털구름처럼
여백 많은 秀美로 남을래요
◉작품상 수상자 : 최태랑 시인
목포출생
2012년 <시와정신>등단
2017년『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시집
2019년『도시로 간 낙타』시집
2017년 <전국계간지 작품상> 수상
응모시집 / 도시로 간 낙타(2019년 9월)
수상소감 / 최태랑
-든든한 저어새의 부리로-
전 세계가 역병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순간 기쁨보다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수없이 물속을 휘저어 먹이를 잡는 저어새, 부리 젓기로 갈급한 공복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시가 목마르고 고팠습니다. 깃털 하나라도 키워 높이 날고 싶었거든요. 앞으로 보이지 않는 은유를 찾아 문장을 조각조각 갈라서 창시할겁니다. 물에 빠진 낮달이라도 건져다 창문 앞에 걸어두고 새로운 계시록을 쓸 겁니다.
저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언제나 자국이 남도록 꾹꾹 밟고 가라고 격려 주시는 이재무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억 저편에서 바라보고 있는 아내에게도 그림자라도 남기를 기도합니다.
▣수상작▣
저어새 외 2 / 최태랑
저것은
낯설지 않는 생의 수단이다
물때를 맞춰 도착한 전동차
문이 열리자
선글라스 남자가 바닥을 저어 나온다
생존이 키워준 완벽한 숙련
환전기 앞에 가서 카드를 넣자
댕그랑 오백 원 동전이 나온다
동전이 그만 바닥에 떨어져
댕그르 굴러 납작 엎드렸다
주워 주려다 그냥 두었다
지팡이가 바닥을 더듬는다
부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천지창조의 그분 손가락처럼
공중급유기 노즐처럼 기가 막히게
지팡이 끝이 동전을 덥석 물었다
허리를 굽혀 주머니에 넣고 고의춤을 여민다
촉이 몸을 끌고
길의 척추를 더듬어
물길 사나운 횡단보도를 휘적휘적 저어간다
가방
몇 달째 방 먼지만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는 물소
걸핏하면 손잡고 나가자 조른다
봄볕 느슨한 날 물소를 깨워 그 속에
꾹꾹 꿈을 눌러 담고
슬픔도 구겨 넣고
황량한 들판이 기다리는 우루무치로 떠난다
더딘 연착이 지루해
다리 올려놓고 엉덩이로 깔고 앉아도
묵묵히 무거운 몸 받아준다
발목에 발통을 달고 여행 농사를 짓느라
사나흘에서 한 보름씩 광야를 누비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무색옷 속으로 들어가
꼬리표 단채 와불처럼 누워 있다
사금파리
어릴 적 나와 같이 외가 더부살이하던 누이는
부엌일 하다 말고 이 나간 파란 꽃무늬 사발을 아무도 모르게 쪽문 밖으로 냅다 던져버렸다 그릇 찾기에 혈안이 되었지만 나는 일부러 부엌 너머 풀숲으로 가지 않았다 한밤이면 별빛이 풀숲 사발 조각에 담겼다 돌아가는 걸 보았다
그릇 조각을 감춘 숲은 누이의 비밀을 품은 풀벌레 소리를 들려주었다 책보 들고 학교 가는 나를 보는 누이의 입가는 언제나 봄이었다 돌아오면 무얼 배웠니,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을 엄마처럼 꼭꼭 물었다 또래 친구들이 밖에서 놀 때면 부엌에서 혼자 깨금발을 하며 부러움을 달랬다
내가 고향을 떠난 후 누이는 갯고랑에서 칠게를 잡다가 아버지를 삼킨 바다에 쓸러 갔다 수년 후 찾아간 동네 아이들 손에 들려 있는 파란 꽃무늬 사금파리, 누이 얼굴이었다
◉작품상 수상자 : 김욱진 시인
경북 문경 출생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003년 <시문학> 등단
2018년 제 49회 한민족통일문예제전 우수상 수상
2020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시집: “비슬산 사계”, “행복 채널”, “참, 조용한 혁명”, “수상한 시국”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역임
거주지: 대구광역시
응모시집: 수상한 시국(2020년 9월)
▣수상 소감 / 김욱진▣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습니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도 그렇고, 문학상도 그렇습니다. 저 멀리 충청도 천안 땅에서 뿌리내린 김명배 문학상이 대구에 살고 있는 저에게까지 와 닿을 줄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저마다 끼리끼리 주고받는 수상한 이 시국에 말이지요. 참, 올곧게 문학 활동해온 분의 정신을 기리는 문학상이다 싶은 생각에 절로 고개 숙여졌습니다.
이 허공 속으로 무수히 왔다 가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게 진짜인 양 우리는 길들여진 그 상들에 무심코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 상이 그 상입니다. 여기, 지금,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직 모를 뿐입니다. 나라는 상 하나를 꼭 움켜쥐고, 이게 진짜야! 착각하며 시라는 이름으로 초라하게 발표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란 무엇이고, 시를 왜 쓰고 어떻게 써야하며, 그 시를 누가 쓰는가에 대해 부단히 묻고 물었습니다.
일찍이 김명배 시인께서는 「작별」이라는 시편에서 “…그런 뒤에 떠나겠습니다. /한평생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걸 물어 /보려 떠나야겠습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작별이라서 /똑딱똑딱 발자국 소리는 아니 내겠습니다.”라고 답하셨더군요.
그렇습니다. 여기, 지금, 나는 늘 새 것입니다. 머물되 머문 바 없이 머물고 있는 몸뚱어리가 그렇고 생각이 그렇고 느낌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주 한 모퉁이 나의 시가 그렇습니다. 저의 시답잖은 시편들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김명배 문학상 공모에 동참하신 모든 분들과의 시절 인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치열한 문학 토론을 함께하고 있는 시마루 동인 회원님들과 잠시나마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수상작▣
그 바람에 외 2 / 김욱진
은행들이 다 털렸다
졸지에 알거지 신세가 되어버린 은행들은
길바닥에 나앉았고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구린내가 났다
누구 소행인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줄도산 당한 은행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바람에
은행 주가는 폭락했고
빚쟁이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짓뭉개듯
은행 짓밟고 지나갔고
바람은 그냥 빚잔치 한 판
속 시원하게 벌인 듯 지나갔다
그 바람에
빚진 늦가을 바람은
큰길가 신호등 언저리 보도블록 위
은행 신용불량자 딱지처럼 딱 붙어있는
일수대출 광고지 직빵 전화번호부터
슬그머니 떼어내고 있었다
무료급식소
수성못 둑을 돌다 보면
둑 가에 죽 둘러서서
새우깡을 새우처럼 방생하는 이들이 있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눈치코치 없는 꼬맹이 물고기들도 다 안다
온종일 북적이는 무료급식소
새우깡 몇 물속으로 던져주면
금세 새우들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어디선가 그 냄새 맡고 몰려온 물고기들은
새우 한 마리 먼저 낚아채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개중엔
동네 건달 행세하며
떼 지어 몰려다니는 패거리족도 있고
새끼 입에 들어가는 새우
꼬리 깡 물고 뜯어먹는 얌체족도 있지만
그래도 부지기수는
자식새끼 먹여 살릴 땟거리 구하려고
한평생 헤엄치며 돌아다닌 나 많은 물고기들
물 한 모금으로 아침 때우고
오늘은 어딜 가서 밥값을 하나
허구한 날 고민했을 이상화 시비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귀동냥만 실컷 하고 허기진 듯
물 위로 힐끔 고개 내밀다
찰칵, 착각
밥때인 줄 알고
소복 모여드는 수성못 둑 가
거울 보는 새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경구 한 줄 적힌 수돗가 거울 앞
참새 한 마리 날아와 앉아
두리번두리번 살피다
거울 뚫어지라 유심히 들여다본다
여기, 지금, 나는 누구인가
묻고 있는, 참
새는 나를 보더니
놀란 듯 민망한 듯
발가락 오므리고 쫑쫑 수돗가로 걸어가
똑똑 떨어지는 물 한 방울
콕콕 쪼아 먹고
거울 밖으로 훨훨 날아오른다
나는 새다
나는 새다
그러는 새, 나는
새는 수도꼭지만 멍하니 쳐다보다
거울 속으로 돌아갔다
안팎 없는 저, 허공
한 무더기 새는 또 어디로 돌아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