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에세이
전민재
필리핀에 간다고 했을 때 오랜만에 필리핀에 간다고 생각하니 기대되고 설렜다. 필리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그 기역들 덕에 필리핀이 더 기대됐다. 친구들이랑 가서 기대되기도 했다. 필리핀에 가서 좋은 추억들을 만들고 싶었다. 걱정되는 것들도 딱히 없었다.
필리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남을 100일이 기대되기도 했고 100일 동안 있어야 한다는 게 걱정스럽기도 했다. 처음 며칠을 지내보니 필리핀이 편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불만투성이였지만 날이 갈수록 내 불만을 줄었다 필리핀이 어쩌면 금산,한국보다도 편하게 느껴졌다 한국보다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재밋거리들을 계속해서 찾았지 평범한 것들에선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시도한 것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다 즐거웠고 의미가 있었다. 여기서 지내다 보니 짜증도 덜 나고 귀찮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바랬던 자유시간이 싫어졌다 필리핀에서 지내다 보니 심심한 것이 싫어졌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심심한 것이 싫어진 것은아마 홈스테이 때부터였다. 나는 홈스테이에 가서 자주 심심했다. 일도 별로 안 했고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마 그때부터 심심한 것이 싫어졌다. 심심한 것보다는 차라리 바쁘고, 아픈 게 나았다. 난 그 정도로 심심함이 실어졌다. 외출을 못 하는 주말이 제일 싫었다. 할 것도 없고 일정도 없어서 싫었다. 그걸 빼면 필리핀은 완벽했다. 필리핀의 환경, 사람, 자연이 다 좋았다. 특히 필리핀 사람들이 내가 바뀌는 데 가장 많이 도움을 준 거 같았다. 필리핀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다 즐거워 보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만족했다. 그 점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작은 걸 얻으면 더 큰 걸 원했다. 필리핀 사람들을 보고 이미 나는 충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또 필리핀 사람들은 모두에게 친절했다. 가끔 장난스럽기도 하고 그랬지만 필리핀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닮고 싶었다. 노력을 많이 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건 힘들었다. 처음에는 하고 싶었는데 안 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 모두가 받아 주신다. 그 덕에 용기가 났다. 처음으로 헬스장 직원 아저씨한테 헬스장에 갈 때마다 인사를 들어갈 때 나갈 때 2번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인사를 먼저 안 해도 그 아저씨는 손을 흔들어 주셨다. 빵집에 빵을 사러 가다가 눈을 마주치면 일사를 하고 학교 지프니를 타고 가면서 머리를 내밀고 가면 그 아저씨가 인사를 해주신다. 그리고 트라이시클 아저씨, 하발 아저씨, 피시방 아저씨, 아줌마, 시큐올에서 아이들이랑 놀던 아저씨 홈스테이 아빠, 이모 등등의 사람들이 나를 변하게 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필리핀 사람들이 그리울 거 같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용기가 없다. 한국에 가서 나 자신이 지금보다 더 밝아졌으면 좋겠다..
필리핀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운동이 정말 싫었다. 나는 주제로 운동을 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고 흥미를 찾을 수 있었다. 운동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시도해서 알 수 있었다. 아마 예전에 나였으면 개인프로젝트 주제를 운동으로 정하지도 않았을 거다. 나는 새로운 시도가 좋다. 약간의 모험 같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을 알 수 있고 그 시도가 실패로 이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시도는 흥미진진하다.
필리핀 예전에 나는 안 좋은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었다. 분만 많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무엇보다 싸가지도 없었다. 친구 관계도 좋지 않았다. 필리핀 이후에 나는 어디 가서 사람 됐다는 말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필리핀 이후에 나는 무엇보다 밝아졌다. 자신감이 생겼고 불만이 줄었다. 이후에 나는 무엇보다 즐겁게 살고 싶다.
지금보다 밝아지고 싶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거다
나의 100일간 필리핀 이동학습은 성공적이었다
홈스테이 에세이
전민재
홈스테이는 어떤 면에서 무섭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다. 처음 홈스테이를 가는 것이기도 했고 말도 잘 안 통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홈스테이에 가서 가족, 친구랑 재미있고 후회 없이 지내고 싶었다. 가기 3~4일 전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낼 만할까까? 파트너는 누굴까?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차피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에는 왜 가야 하는지 가지 않으면 안돼나가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선언식을 하고 홈스테이를 할 집으로 가보니 지낼 만해해 보였다. 첫날에는 설거지도 안 했다. 첫날이라고 쉬기만 했다. 옆집이랑 같이 돌을 옮기기만 했다. 처음에는 이게 홈스테이가 맞냐는 생각이 들었다 밥도 첫날이라고 비빔밥을 해주셨다. 뭔가 불편할 줄 알았는데 엄청 편했다. 룸메이튼 동연이랑 일을 하면 하기 싫은데 왜 일이 없으면 심심한가에 대해 이야기도 했다. 그래도 가족들이 첫날이라서 일을 안 시켰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둘째 날부터는 파파가 일을 가르쳐 주셨다. 닭 먹이를 주는 건 특히 재미있었다. 닭 먹이 동을 들고 있으면 모든 닭이 내 앞으로 온다. 재미있었다. 닭 먹이를 주고 나서 마당 청소를 한다. 낙엽을 쓸고 닭 물통을 갈아주고 밥을 먹는다. 다 먹으면 성적이지만 하면 자유시간이라고 해서 빨리 설거지하고 빨래했다. 빨래를 엄청 힘들게 했다. 방법이 엄청 신기했다. 하기 귀찮았다. 그리고 점심까지 자고 밥을 먹은 다음에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하러 가서 애들이랑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애들이랑 이야기하면서 우리 집이 밥이 엄청나게 잘 나오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휘동이네랑 바다를 갔다. 밀물일 때 가서 바다가 아주 얕았다 아무리 깊이 들어가도 허리 이상이 아니었다. 재미없었다. 비록 둘째 날 이지만 홈스테이에서 일을 조금이라도 한 거 같아서 기뻤다. 내일 더 열심히 하자는 생각하고 잤다.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밥이 진짜 맛있었다. 밥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투정을 못 할 만큼 맛있었다. 일은 어제랑 같았다. 그리고 자유시간에 파파랑 동연이랑 바나나 나무를 심었다. 파파가 나중에 한국 가서도 이나무를 기억하라고 했다. 그래서 기억하겠다고 했다. 파파가 다음에 코코넛 나무도 심자고 하셨다.
나중에, 한국에 가서 페북을 만들면 나중에 나무가 다 컸을 때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나중에 가서 페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일 차부터는 닭이 짜증이 났다. 닭 먹이를 주는 건 재미있는데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대서 시끄러웠다. 저녁은 휘동이네가 우리 집에 와서 홈스테이 이모가 신라면을 끓여주셨다. 홈스테이에 와서 하루에 3번씩은 본 것 같다. 나중에는 같이 일을 하러 가기도 했다.
그래도 같이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넷째 날은 홈스테이의 의미가 달라졌다. 모든 걸 포기하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니까 생활이 더더욱 재미있어졌다. 동연이랑 만든 떡볶이가 왜 맛이 없지 대신 한번 실수할 수도있지 그래도 맛이 있다는는 생각했다.
5~8일부터는 홈스테이 이모랑 동연이랑 모든 일이 다 끝나고 재미있게 영화랑 드라마를 봤다. 여기에서만 이태원 클라쓰, 이 연애는 불가항력, 20세기 소녀를 봤다.
가족, 동연이랑 보니까 재미있었다. 재미없을 거 같은 로맨스 장르였는데 홈스테이에 가서 가족들이랑 보니까 재미있었다. 그리고 홈스테이 이모가 남달랐다. 한국어를 엄청나게 잘하셨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으면 가끔 알아들으셨다. 예를 들어 내가 동연이한테 아노가 무슨 뜻인 줄 알이라고 물어봤는데 홈스테이 이모가 아노눈 왜라는 의미라고 알려주셨다. 또 우리가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어디에선가 오뚜기 3분 자장을 찾아오셔서 해주신다고 했다. 신기했다. 필리핀 국 2가지를 배웠다 한 개는 닭이 들어간 거 한 개는 돼지가 들어간 거였다. 신기했다. 맛도 신기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이 요리들을 해볼 것이다. 분명 이모는 쉽게 가르쳐 주셨는데 막상 내가 만들면 어려울 거 같다 일이 갈수록 줄었다. 일을 보여주기식으로만 했다. 죄송했다.
9~10일에는 틱톡 댄스 4개를 룰렛 돌려서 나오는 거를 페어웰 파티에서 하기로 했다. 띵띵 땅땅 이 나왔다. 한국에서 한다고 했으면 절대 안 했을 거 같은데 홈스테이 가족들이랑 하니까 재미있었고 신났다. 서로 웃으면서 춤을 출 수 있어서 좋았다.
페어웰 파티를 하고 마지막 날이 가니까 아쉬웠다. 처음에 왔을 때는 빨리 학교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조금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가보니 지낼 만했다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홈스테이 가족들이랑 집이 편해졌다. 처음에는 집 환경에 만족을 못 했는데 어차피 지내야 할 거재미있게 지내자는 마음으로 있다 보니 생활이 점점 편해졌다가 일찍 포기할걸 그랬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