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그렇다할지라도
유럽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유럽은 사랑스럽고 그립다
박신형, 유럽과 매년 한번씩은 인사하고 싶은 사람. 교환학생으로, 갑자기 친구가 오라해서, 그리고 인턴쉽하느라 자주 드나들며 살아도 보고 여행도 하면서 유럽이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남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 책을 냈다. 그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외친다.
Everybody Holiday, Everybody My Day!
늘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홀리데이인 듯 홀리데이 아닌 홀리데이 같은 날들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보내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저 말은 어쩌면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할런지도 모른다. 나만하더라도 처음 몇 장을 넘기면서 음.. 어.. 뭐지?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 아닌가? 라는 의문에 그냥 반납해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도서관의 책들은 어지간하면 한번의 리뉴가 성사된다. 그런데 간혹 울트라 엄청 매우 인기있는 책일 경우 그 한번의 리뉴조차도 허락치 않는다. 이 책이 그 허락치 않음에 속했다. 뭔데? 왜 허락치 않지? 하는 마음에 반납의 유혹을 떨치고 후닥 읽어버리면서 26년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이걸 보니 네가 생각났어라는 말은 참으로 생뚱맞지만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무언가로 인해 얼마나 귀엽고 따스한지"
정말 그랬다.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유럽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이렇게 귀엽고 따스해질 수도 있겠구나를 신형씨는 알려주었다.
"출발과 도착이 함께하고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곳. 공항. 기차역. 버스정류장에 가면 유난히 사람구경이 재미나다"면서 파리 중앙역 사진을 떡허니 보여주는데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유럽배낭기차여행의 첫 출발지였던 파리역사의 웅장함에 넋이 나간 26년전의 내가 떠올랐다.
"엉뚱한 트램을 타는 바람에 낯선 그곳에서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는 그녀의 말에, 영국 브라이튼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며 이방인의 느낌을 한껏 고조시킨 그날의 나도 마주할 수 있었다.
"함께 하는 여행도 가슴 떨리고 즐겁지만 혼자하는 여행 역시 너무나도 두근거리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들려줄 때는 나홀로 런던브릿지, 웨스터민스터사원, 트라팔가광장 등 런던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던 때로 가 있었다.
"이름마저도 참 예쁜 살고 싶은, 살아보고 싶은 곳"이라는 프라하에선, 마트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다른 나라와 달리 레스토랑에 가서 우아하게 칼질하고, 그냥 길을 가다 만난 프라하사람의 친절로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무료 숙박을 해결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피어올랐다.
"리스본 주황빛 하늘"을 듣노라니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팍팍한 길을, 버스타고 한참을 가서 지구땅끝마을이라 불리우는 곳에 기어이 발을 내딛었던 그때의 아찔함이 떠올랐다.
"올 가을의 하이델베르크는 어떨지 궁금해져 안부를 묻는다. 그곳의 올해 가을은 어떤가요?" 라는 깜찍한 물음에 나도 숟가락 얹어본다. 칸트가 늘 같은 시간에 정확하게 산책했다는 Karl Theodor Bruke(칼 데오도르 다리), 잘 있니? 칸트가 앉았다는 벤치에 나도 앉아 봤었는데 너도 여적 잘 지내지? 수줍게 안부를 물어본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스코틀랜드에 도착했는데 다음날 아침 보았던 첫인상은 잘 생겼다"고 말한 에든버러에 난 반대로 런던에서 저녁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새벽 6시에 도착했더랬다. 에든버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고풍스럽군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 쿠엥카라는 예쁘고도 어마어마한 마을이 있다는데. 남부지방 말라가 해변에선 캔버스그림을 그리면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것을 원없이 해봤다는데. 바르셀로나 가우디 까사바뜨요 건물 옥상에서 마법과 같은 밤을 선사해준다는 매직나이트에도 빠져봤다는데. 26년전의 나도 스페인여행을 했지만 이 세가지는 못해봤다, 아쉽게도.
"가을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나의 일년은 언제나 가을 겨울 봄 여름의 순서. 그러니 가을이 되면 나만의 한해가 밝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다는 그녀처럼 나도, 내가 태어난 가을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런데 지구반대편으로 오면서 한여름에 크리스마스가 있는 나라인지라 생일 계절이 달라져 버렸다. 봄이 가을이고 가을이 봄이다. 뭔말이지?
"하이델베르크 구 시가지를 따라 걷다보면 오래돼 보이는 책방하나. 서점에서 책을 읽는 남자는 섹시하다. 늦은밤, 서재에서 노란 작은 불을 켜놓고 책을 읽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는 생각만 해도 사랑한다 고백하고 싶으니" 오마나! '독서의 위안'의 송호성님을 뵈면 금사빠가 될 확률 백퍼다. 난 구십퍼. 성격 내지는 인격이랑 외모도 좀 보는지라 책만 들고 있다고 다 사랑하진 않는다는. 이것도 뭔말?
"어느 가을날, 생일 선물로 탔던 에펠탑 앞 회전목마. 3분간의 황홀했던 순간. 동생에게 3분간의 꿈같은 시간을 선물해주며 언젠가 네 소중한 사람에게 3분을 꼭 선물해 주라고 말했다. 그 사람 역시 또 누군가에게 3분을 선물하고 그렇게 하나둘, 이 선물이 온 세상에 퍼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신형씨처럼 이민와서 도움을 받아 고마움을 표시하려 은혜를 갚겠다 했더니 나한테 갚지 말고 새로이 오는 사람한테 도움을 줘서 대신 갚으라고 말해준 왕언니 덕분에 나도 그렇게 이민사회에 선물을 대물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도 유럽은 나에게 너무너무 소중하고 예뻐서 자꾸자꾸 보고 싶고 여기저기에 추억들과 기억들이 가득하고, 곳곳에 나의 유치한 상상들이 가득하다. 나는 아직도 유럽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그립다."
그리우냐? 나도 그립다.
유럽이 너와 내게 들려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 가을날 참으로 풍성하다.
♡ 늘 도서관 관계자분들과 한글도서목록을 수고로이 올려주시는 평상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
1년에 52권 열여섯번째 읽은 책
유럽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2021년 4월 23일 쇠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