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제의 단어로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금수저’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사람을 가리키고,
‘흙수저’는 돈도 배경도 변변치 않아서 기댈 곳이 없는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모의 배경이고 부모의 배경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학력이 높으면 자녀의 학력이 높고,
아버지의 직업이 의사 판사 변호사이면 자녀의 직업도
의사, 판사,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높고, 아버지의 직업이
단순 노무직이면 자녀의 직업도 그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금수저가 우리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판검사가 되고, 이들이 대기업을 이끌어가게 되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가는 주도층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관료가 되고 정치인이 되어서 앞으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고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각종 정책들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고생을 해본 적이 없어서,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머리는 있되 뜨거운 가슴이 없는 이 사람들이 앞으로
이끌어갈 우리 사회의 미래가 두렵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국민의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정치인들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소통
부재와 뻔뻔함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하나같이 엘리트들 아닙니까?
뜨거운 가슴이 없는 엘리트들 아닙니까?
그런데 각 당에서는 지금 이러한 사람들을 더 뽑으려고
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없어서
이 모양이 된 것은 아니질 않습니까?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 모두가 서민의 대변인이 되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서민의 대표가 반드시 서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서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최소한 서민의 맥박소리는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정치인을 뽑을 때 잘난 사람위주로 뽑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슴이 없는 잘난 사람은 대부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조직을 장악하면 조직원 전체가 힘들어지는 법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번 선거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이런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