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0. 22;30
잠결에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니 KBS 가요무대에서 내가 사랑하는 가수 양지은이
노래를 부르는 거다.
"♬ 물새 우는 고요한 강언덕에 그대와 둘이서 부르는 사랑노래,
흘러가는 저 강물 가는 곳이 그 어데뇨,
조각배에 사랑 싣고 사랑 찾아가지요,
물새 우는 고요한 강언덕에 그대와 둘이서 부르는 사랑노래 ~~♪
그녀는 수십 년 전 손석우 작사, 박시춘이 작곡하고 나애심과
백설희가 불렀던 '물새 우는 강 언덕'이라는 노래를 트로트의
꺾기 창법을 배제하고 담담하게 부른다.
미스트롯2 경연 중 1대 1 데스매치(Death match)에서 탈락하고
고향인 제주도로 가다가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우승을 걸머쥔 그녀 양지은의 노래를
나는 신미래의 레트로(Retrospect)풍 노래와 함께 참 좋아한다.
이어서 콧수염 기른 김경남 가수가
"♬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이 밤이 애절구료,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번지 없는 주막'이라는 노래를 구슬프게 부른다.
잠이 퍼뜩 달아났다.
나 젊었을 때 진천에는 술집이 꽤 많았다.
진천옥, 천진옥, 서울집, 서울옥, 영월식당, 평화식당 등 신작로와
골목을 막론하고 참 많았던 걸로 기억난다.
거기가 진천중학교 통학로에 있던 쇠전거리였지.
진천옥이었던가,
고향친구들과 술집 목로(木櫨)에서 막걸리가 가득 담긴 주전자를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불렀던 노래가 TV화면에서 계속 튀어나온다.
그 시절 불렀던 노래가 '꿈속의 사랑,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삼팔선의 봄, 애수의 소야곡, 짝사랑, 덕수궁 돌담길, 눈물을 감추고,
나 혼자만의 사랑'등이었던가.
대폿집의 목로(木櫨)에서, 때로는 가장 큰 방인 봉놋방 또는 골방에
둘러앉아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을 주고받고 노래를 불러가며
친구들과 우의를 다지고, 그렇게 나의 화류계 생활은 시작되었다.
이후 성장의 과정에서
주류는 막걸리에서 소주로 변했는데 특히 '참나무통 맑은 소주'를
좋아했다.
술 취향이 바뀌면서 청하~산사춘~화랑~소주로 이어지다가
어느 날부터는 소주와 맥주를 믹스한 '소맥'을 즐겼고,
또 어느 날부터는 쌀막걸리인 '장수막걸리'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
최근 위 내시경에서 선종이 아닌 악성물질이 발견되었고,
금주령(禁酒令)이 떨어진 지 벌써 2개월,
이제는 화류계 생활을 접어야 하는지 기로(岐路)에 섰다.
애주가로 명성을 떨쳤던 아버지에 버금가게 사랑하는 친구들,
지인들과 술과 담소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느닷없이 나에게 내린 금주령은 일종의 사망선고나 마찬가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4월 초 내시경 재검에서 별다른 특정이 없으면 한두 잔은 허용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해본다.
깊이 잠들었다가 잠이 깨었기에 다시 잠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서재로 들어와 볼륨을 낮추고 흘러간 옛 노래를 듣기 시작한다.
몰아치던 북풍이 사라진 고요한 겨울밤,
흘러나오는 작은 선율은 겨울밤을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만든다.
고요한 가운데 깨어 있고, 깨어 있는데 고요해지니 비로소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뜻인가.
까짓것 막걸리 한잔을 못 마시면 어떤가,
화류계 생활을 못하면 또 어떤가,
자조(自照) 섞인 생각을 하며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샛별이 달빛을 피해 영롱하게 반짝이며 또렷하게 내 마음에 다가와
박히는 밤,
나는 가수 양지은에 의해 한동안 망각(忘却)했던 옛날을 찾았다.
2023. 1. 3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