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밥뉴스]"나도 내 자식 가르칠 땐 화나" 수학자의 뜻밖 교육법
중앙일보2021.08.16. 오전 6:00
부모의 길을 묻습니다. 부모가 되는 순간, 우리는 부모가 무엇인지 모르고 부모의 삶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부모가 그랬듯, 우리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에 허덕여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부모 되기는 나, 그리고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랑할 것인가, 과연 우리는 이 엄청난 작업을 평생에 걸쳐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답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밥상머리 뉴스, 오밥뉴스는 걱정 많은 부모를 위해 매주 월요일,『미래부모를 말하다』를 전해드립니다. 첫회는 금종해(64)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입니다.
금종해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대한수학회장)가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계산과 수학은 다르다
“크기가 없는 점을 어떻게 찍어요? 두께가 없는 선을 어떻게 그어요?”
말문이 턱 막혔다. 일찌감치 수학포기자의 삶을 살았던 탓일 수도 있다. 그저 점과 점 사이를 이어 선을 그으면 선분이 된다고 배운 기억이 올라왔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금종해 교수가 던졌다.
지난 6월 29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에 있는 고등과학원 5층 교수실.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대한수학회장이기도 한 그는, 기자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사이 “수학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라며 수학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 교수는 웃었다. “수학자들은 계산을 안좋아한다”고 했다. 계산과 수학은 엄연히 다르단 얘기다. 수학은 그럼 무엇이냐는 우문(愚問)에 그가 말했다. “일반인의 눈엔 수학을 잘 한다고 하면 계산을 생각하죠. 그런데 주어진 계산만을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수학을 만드는 일을 해요. 수학자는 마치 화가, 시인이랑 같아요. 아무도 모르는 식을 만들고, 증명 과정엔 소위 '창의성'으로 불리는 상상력을 보태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일을 합니다.”
조각가가 본인의 마음 속에 그려놓은 조각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수없이 많은 돌가루를 맞아야 하는 것처럼, 수학도 똑같다고 했다.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는데” 뇌를 실험장비로 쓴다고 했다. “학교수학에선 맛보기 어려운 희열도 있다”며 “학생들도 깊이 생각해보는 경험을 수학이나 다른 과목을 통해 한 번이라도 해보길 바란다”는 이야기로 자연스레 대화는 수학공부로 이어졌다.
군산 바닷가에서 ‘짱어’ 잡던 아이
그는 대수기하학 분야 석학으로 꼽힌다. 연구실 책장엔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들이 꽂혀있다. 그가 집필한 교과서들이다. 대입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 문제도 그의 손에서 나왔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군인인 아버지 영향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지만 군산에서 컸다. 3남1녀 중 둘째로 동네에선 싸움도 지지 않는 고집센 아이로 통했다. 바닷물이 빠져 뻘밭이 드러나면 동생들과 짱어(붕장어), 망둥어, 게를 잡으러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참고서'를 본 건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비치한 전과목이 다 있는 '동아전과'였다.
그의 삶을 바꿔놓은 중학교 2학년
금종해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대한수학회장)가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해지도록 바닷가를 쏘다녔지만 자신은 있었다. 공부는 ‘하기만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시험을 치르고 들어간 군산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친구가 수학 문제를 들고왔다. ‘어려우니 좀 알려달라’는 거였다. 생각해 풀어야 하다보니 수학 교과서도 들춰보고, 필요한 내용도 공부해가며 '친구 문제'를 풀어줬다. 한두번 하다보니 물어보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수학문제 잘 풀면 ‘와 멋있다' 소리를 들으니 수학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선 검사를 꿈꿨다. 부모님은 법대나 상대, 의대를 가길 바랐지만 정작 그의 진로는 다르게 틀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선생님이 그를 불렀다. “수학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수학자를 해봐라.” 수학자란 직업이 있는줄도 몰랐던 그는 ‘어? 학교 수학선생님을 하란 이야긴가?’ 생각했다. 남들이 그에게 “수학 잘 한다”고 하고, 그 덕에 열심히 하다보니 애착이 붙었다. 기질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가 안풀리면 며칠씩 매달렸다. 그러면서 그의 삶은 수학자로 굳어졌다.
시험 수학을 못해도 수학자는 된다
금종해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대한수학회장)가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금 교수는 ‘시험보는 수학’과 ‘수학’을 분리해 말했다. “시험에 등장하는 수학을 잘 한다고 훌륭한 수학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노상 계산을 틀려도 아이디어가 좋아 유명 수학자가 된 수학자도 있거든요. 계산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할 줄 몰라서 틀리는게 아니라 생각이 앞서가서 부주의로 틀리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세계적인 수학자들에게 물어보면 학창시절 외려 '수학시험'을 잘 못봤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교수로 미국 명문대 교수가 된 분 역시 시험보는 수학을 못 했다고 해요.” 강단에서 만난 수많은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보탰다. 선행학습으로 달려 온 아이들이 정작 대학에 와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부지기수로 봤다고 했다.
수학은 즐거움…배움의 즐거움을 찾는 법
아이가 수학을 좋아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이른 사교육’을 반대한다고 했다. 너무 일찍부터 사교육을 통해 선행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끝도 없이 계속 '못 푸는 문제'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문제를 위한 문제’를 내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런 경우엔 아이들의 자존감만 떨어뜨리게 된다는 얘기다. 그는 “수학은 사고하는 능력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최적의 솔루션은 무엇인가, 내가 해결과정을 찾아가는 데 빠뜨린 것은 없는지, 중복시킨 것은 없는지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학문이지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수학교육 제도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아이들이 수학이 어렵다고 하니, 교과서 두께를 점점 줄인다’는 것이다. 그는 “가르칠 것은 가르쳐서 수학을 배울 기회를 없애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재도 시험을 본다고 하면 스트레스가 되는데, 평가에 방점을 두지 않고 시험은 쉽게 내되 가르침에 무게를 두면 된다는 의미였다. 그는 “수학과 과학은 좋아하는 학생보다 싫어하는 학생이 더 많다”며 “학부모들은 수학이 어려워서 좋은 대학 못 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교육 수준을 내리면, 다시 끌어올리기가 어렵다. 국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금종해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대한수학회장)가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수학자도 자기 자식 가르칠 땐 화가 나요.”
그에겐 장성한 아들이 둘있다. 큰 아들은 경제학을, 작은 아들은 산업심리학을 전공했다. “모두 수학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환했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어떻게 가르쳤나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말하자면 '방임형' 아빠였는데, '자주는 아니고 더러' 수학공부를 봐줬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화가 날 때가 있어요. 내가 설명해준 것도 같고 제대로 배웠으면 알만한데,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모르면 화가 나더라”며 웃었다. 금 교수는 “그래도 공부는 자기가 하겠다고 마음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방법”이라며 “사실 공부는 혼자하는 거라는 생각이 강해서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알려줬지만 붙들고 앉아서 가르쳐준 적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산업 혁명시대엔 ‘공부 잘 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그의 생각은 어떨까. 금 교수는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태도와 마음가짐”이라며 “공부를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국 잘하게 되고 성공한다”고 답했다.
금종해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대한수학회장)가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금종해 교수가 전하는 '수학 잘 하는 팁'
‘실용적 이유’를 자주 대지 마라
공부는 그냥 하는 것이지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결국 수학을 아주 단순하게 실용적인 용도로 치부하게 된다. 왜 이걸 배우는지, 수학 자체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이나 재미에 빠져서 해야 한다. 가령 -3을 설명할 때, 3원을 빚진 것이다,처럼 설명해선 안 된다.
-3 ✕-4를 두고 -3원을 네번 빚져서 12라고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수학의 연산 규칙을 현실적인 의미로 자꾸 해석해주려고 하면 수학이 싫어진다.
수학공부,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갖는 과정이다
문제 하나를 풀어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땐 ‘아, 이런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구나’를 알아야 한다. 벽돌을 한장 한장 쌓는 식으로 공부해야 실력이 는다. 하나라도 확실히 하면, 비슷한 문제는 안풀어봤어도 풀 수 있다. 수학공부는 자기자신에게 확신을 갖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내 생각이 옳다. 심지어 참고서도 틀릴 수도 있다’라는 확신을 갖고 하게 되면 배움의 즐거움이 생긴다. 새로움을 배우는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