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티모 3,1-13; 루카 7,11-17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기원후 249년에서 251년까지 로마 데치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대대적으로 박해했습니다. 250년 1월, 성 파비아노 교황님이 순교한 후 약 14개월 동안 교황님이 없는 시기가 지속되었는데, 251년 4월에 고르넬리오 성인이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박해의 동기는 신자들이 이교신들에게 분향하라는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인데, 어떤 이들은 굴복하여 분향을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분향을 하지는 않았지만, 분향하였다는 증서를 관리들에게 받기 위해 돈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박해가 끝나자, 배교를 했던 교우 중에는 교회로 돌아오기를 희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노바시아누스라는 사제는 배교의 죄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고르넬리오 교황님이 이들을 일정한 보속을 통해 받아들이려 하자, 노바시아누스는 자신이 교황이라고 선언하며 고르넬리오 교황님을 맹렬히 비난하였습니다.
고르넬리오 교황님의 제안으로 251년 10월에 개최된 회의에서 교황님의 입장이 교회의 전통과 일치한다는 것을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갈루스 황제 박해 때 고르넬리오 교황님은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선종하셨고, 후에 순교자로 선포되셨습니다.
한편, 치프리아노 성인은 249년에 주교가 되셨는데, 주교가 되고 싶어했던 노바투스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고르넬리오 성인을 괴롭힌 건 노바시아누스였는데, 치프리아노 성인을 괴롭힌 건 노바투스였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이름도 비슷한 것 같아요?
치프리아노 주교님은 고르넬리오 교황님의 입장을 지지하였는데, 이로 인해 같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배교자를 받아들이는 문제였지만, 노바투스와 노바시아누스 모두 주교 선출 경합에서 패배한데 불만을 품고 조직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하여 두 성인을 괴롭혔습니다.
치프리아노 성인은 ‘주님의 기도 해설’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쓰시며 교회를 진리로 이끄셨고,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인 257년 체포되어 유배를 가셨습니다. 이교 신에게 제사를 지내라는 총독의 명령을 거부하심으로써 258년 9월 14일 순교하셨습니다.
어려움 중에 함께 교회의 일치를 지켜내신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 두 분의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9월 16일에 함께 기념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는 초대 교회의 교회 직분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감독’과 ‘봉사자’입니다. ‘감독’은 희랍어로 ‘에피스코푸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나중에 ‘주교’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봉사자’는 ‘디아코노스’인데요, 이 말은 나중에 ‘부제’를 뜻하게 되었고, 개신교에서 이 단어는 발전하여 ‘집사’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독서에는 안 나오지만, ‘원로’는 ‘프레스비테로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사제’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개신교에서는 ‘장로’를 뜻하는 말로 발전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인에서 과부의 외아들을 되살려 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부분에서는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해주시는데, 이처럼 남성을 위해 베푸신 기적과 여성을 위해 베푸신 기적을 연결하여 소개하는 것이 루카 복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열왕기 상권에는 사렙타에 사는 과부의 외아들을 엘리야가 다시 살리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1열왕 17), 예수님께서 나인의 과부의 외아들을 다시 살리셨을 때, 군중들에게는 엘리야 이야기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엘리야의 뒤를 잇는 예언자가 아니라, 그보다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루카 복음은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라고 표현하며 예수님께 “주님”이라는 칭호를 씁니다.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는 계속되는 박해와 내부의 분열이라는 어려움 중에도 주님의 교회를 훌륭히 지켜냈습니다. 두 성인께서 의지하신 것은 주님의 자비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들었던 ‘가엾은 마음’이, 당신들 시대의 죄인들에게도 드실 것이라는 확신이, 성인들께는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에게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전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주님께서 일치와 생명을 전해줄 것입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에게 말씀하시자, 죽은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일어나 앉아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실의와 좌절에 잠겨 있는 많은 젊은이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으로 인해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는 젊은이들, 군대에서,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젊은이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평화를 위해, 안전한 사회를 위해 더 기도하고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빠올로 베로네세,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 사이의 성 안토니오, 1565-1571년
출처: File:Sant’Antonio abate tra i Santi Cornelio e Cipriano - Veronese.jpg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