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다 버린 껌’만큼이나 처량한 존재가 또 있을까. 특히 길거리에 버려져 도로에 붙어버린 껌딱지들의 신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기물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껌딱지가 과학의 힘을 빌면 다양한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 ⓒ wikimedia
그런데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껌딱지에 과학이 접목되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껌딱지를 가공하여 휴대폰 케이스나 스케이트보드의 바퀴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껌을 유용한 제품으로 업사이클
껌은 원래 나무의 수지나 수액으로 만들어졌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유향나무(mastic tree)의 수지로 츄잉껌을 만들었고, 마야에서는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을 끓인 천연고무인 ‘치클(chicle)’로 껌을 만들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껌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늘어나자 저렴한 플라스틱인 ‘폴리비닐아세테이트(poly vinyl acetate)’를 대량 생산하여 껌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폴리비닐아세테이트로 만든 껌에 당분과 향, 그리고 색소를 첨가한 것이 우리가 현재 씹는 껌인 것이다.
문제는 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길거리에서도 씹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길바닥 이곳저곳에 껌딱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길바닥에 달라붙은 껌은 처치 곤란일 뿐 아니라,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 플라스틱 오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
길바닥에 달라붙은 껌이라고 해서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전 세계에서 매년 10여 만 톤의 껌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껌이 자연적으로 분해되려면 5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껌딱지는 환경오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이 껌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커지게 되자, 전 세계의 껌 제조업체들은 달라붙지 않는 껌이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껌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의 재활용 전문기업인 ‘검드롭(Gum Drop)’ 역시 껌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회사다.
스케이트보드 바퀴와 껌은 같은 플라스틱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업사이클 활용이 가능하다 ⓒ free image
환경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한 ‘애너 밸러스(Anna Ballus)’가 설립한 기업인 검드롭은 길바닥에 붙은 껌을 재활용하여 다양한 용도의 플라스틱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장화와 휴대폰 케이스, 그리고 일회용 포크 등이 껌딱지를 이용한 재활용품이다.
검드롭의 이같은 껌을 활용한 재활용 사례는 또다른 개발 사례를 낳으며 긍정적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프랑스의 디자인 스쿨에 재학 중이던 ‘휴고 모피팃(Hugo Maupetit)’과 ‘비비안 피셔(Vivian Fischer)’가 공동으로 개발한 스케이트보드용 바퀴다.
휴고와 비비안은 검드롭의 개발 사례를 연구하다가 버려지는 껌과 스케이트보드용 바퀴의 재질이 유사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버려지는 껌들의 색깔은 다양한데, 이렇게 알록달록한 색깔의 껌을 가공했을 때 스케이트보드용 바퀴의 색깔로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은 즉시 ‘검콜렉트(Gum Collect)’라는 껌딱지 수거 캠페인을 시작했다. 길거리와 공원 등에 껌 수거판을 설치한 후 다 씹은 껌을 수거판에 붙여서 버리면, 이를 수거하여 공장으로 이송한다. 모아진 껌들은 깨끗하게 세척된 후, 분쇄와 혼합 과정을 거쳐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이후에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을 작은 공처럼 가공하여 다양한 스케이트보드용 바퀴를 제작한다. 현재 검콜렉트 캠페인을 통해 제작된 스케이트보드용 바퀴는 경도와 크기에 따라 총 12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업사이클을 위해 적용된 친환경 촉매 기술
버려진 껌을 재활용한 검드롭의 휴대폰 케이스나 검콜렉트의 스케이트보드용 바퀴는 모두 폐플라스틱의 업사이클 공정을 활용하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말은 재활용이지만, 사실 폐 루프 공정은 재활용인 리사이클(recycle)보다 업사이클(upcycle)에 가깝다.
리사이클은 재활용하는 물건을 원래의 용도로 다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폐지를 모아 다시 재생지나 휴지의 재료로 쓰거나, 빈 깡통을 재질별로 분류하여 고철이나 알루미늄 등의 소재로 환원시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리사이클인 것이다.
반면에 업사이클은 버려지는 물건에 창의력과 디자인을 더하여 완전히 새롭고도 높은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버려지는 껌을 가공하여 휴대폰 케이스나 스케이트보드용 바퀴를 만드는 것은 전혀 새로운 제품을 제조하는 것인 만큼, 업사이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버려진 껌이 업사이클 공정을 통해 스케이트보드 바퀴로 재탄생하는 과정 ⓒ Hugo Maupetit & Vivian Fischer
폐플라스틱의 업사이클이 가능한 이유는 수거한 껌딱지들을 분해할 수 있는 촉매제가 개발된 덕분이다. 이 촉매제는 버려진 껌을 DMT(dimethyl terephthalate)와 MEG(monoethylene glycol)과 같은 두 개의 기본 단량체로 분해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후 분해된 DMT와 MEG 단량체를 정제하여 염료와 같은 첨가물을 제거한다. 이렇게 정제된 DMT와 MEG는 다시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로 전환하는데, 이 PET가 바로 우리가 평상 시에 음료수 통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재료인 것이다.
다시 말해 수거된 껌딱지를 분해하여 플라스틱 재료로 사용하는 PET 알갱이로 만들고, PET 알갱이들은 플라스틱 용기 제조사로 공급되어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업계가 버려진 껌을 플라스틱으로 재생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별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도 순환과정을 완성시켰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이런 재생 과정을 거치려면 열과 압력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이 필수적이었지만, 이를 촉매로 대체하여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도 재생이 가능한 신개념 친환경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